어느 남자소설가가 남자들에게 바치는 글
[백가흠의 눈] 일부는 결국 전부의 얼굴이다
나는 주로 인권침해, 피해의식, 가학, 위선과 폭력이 넘쳐나는 덜 자란 남자들 이야기를 써왔다. 이런 남자들이 주류인 사회는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민낯이라고 생각했다. 일부 개인의 특수성이 문제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이런 문학적 주제도 가능한 것이다.
남성이 가진 여성에 대한 그릇된 판타지가 이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파멸로 이끌고 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야만 한다. 며칠 전 발생한 ‘강남 살인사건’은 기사 제목부터 왜곡이 심하다. 거의 모든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달린 ‘묻지 마 살인’은 이 사회의 진실한 문제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수사팀과 언론은 이 사건이 한 정신분열환자 개인의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에 발로한 사건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반복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을 오랫동안 목도해온 터다. 아무런 해결책도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공포는 여성에겐 이미 일반적인 일이다.
여성에 대한 연쇄살인,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과 수사기관은 가해자 개인의 일탈과 정신이상으로 치부해버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남성적인 시각에서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무엇이 두려워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왜곡되고 잘못된 인식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공론화하고 진위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남성의 인식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
강남역에 몰린 피해자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와 추모는 이 사건이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고 남성들의 문제임을 피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성들은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자신의 안전과 죽음과 동일시하며 두려움과 안타까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남성도 가해자를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해야만 어떤 변화를 모색할 수가 있다.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말자’라는 일베 회원이 강남역에 보낸 화환에서, 기사 댓글에 달린 피해자와 여성에 대한 증오와 혐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을 접하고서는 환멸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이는 일부이겠지만 결국 전부다. 이것이 현재 남성의 실체이니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자. 그래야만 반성이 가능하다.
이건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그러니 여성을 향한 증오범죄를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대부분 남성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허나 문제 해결의 어려움은 그런 사고에서 비롯된다. 대상을 특정화하면 일반화시킬 수 없다. 어떤 특정한 부류나 개인의 문제로 놓고서는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 문제의식과 책임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통감해야지만 남성으로서 어떤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여성들에게 남성이 사죄할 길은 여성을 향한 증오범죄와 폭력을 막는 것뿐이다. 여성의 인권 보호·안전정책과 강력한 법의 집행과 테두리를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사회문제화하고 공론화해야만 한다. 두렵기 때문에 문제를 가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여성의 입장과 시각에서 여성의 말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만이 지금 한국의 남성이 여성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여성은 먼저 때리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을 혐오한다고 해서 화장실에 만난 모르는 남성을 칼로 찔러 죽이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을 강간하지 않는다. 여성은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여성은 평화로운 존재다. 적어도 평화로워야 할 세상의 반, 전부를 망가뜨린 남성이 반성으로 여성에게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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