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님 질문에 두 달이 지나서야 드리는 답변
이막동 선생의 종천법 도입을 주제로 한 종묘여행기를 올렸을 때 로빈님께서 이런 요청을 했었다. 이 선생이 훈민정음을 제작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달라는 거였다. 답변을 미뤄온 이유는 이런 주제가 이성적 토론보다는 감정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유쾌한 대민방에서 약간의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오늘 마음을 바꿨다.
봄에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얻어들은 이야기로는 훈민정음 탄생의 비화가 그다지 비밀도 아니고 새로운 학설도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조선지배사상과 문헌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진보진영이 아닌 뉴라이트 논객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대부 계급에 의한 광범위한 폭압적 지배구조가 완결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막동 선생에 대한 집중공격 역시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과 경제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었다.
그 폭압적 지배구조의 핵심이 조선의 시민계급인 양인들을 의도적으로 사대부의 사유재산인 노비로 몰락시키기 위한 종천법이라는 점은 지난 번 여행기에서 이미 말했었다, 종천법이란 양인 또는 사대부와 노비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무조건 노비로 정하고 그 신분을 영구세속한다는 법을 말한다. 이 법은 왕실과 사대부의 야합에 의해 세종조에 반포되었다.
희한한 일은, 몇 년 전 노론권력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던 진보진영 논객들은 어찌된 일인지 이막동 선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이었다. 반론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수를 빼았겼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뿐이다. 적어도 세종, 즉 이막동 선생 문제에 대해서는 반론할 자료도 의지도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래서야 되겠나? 적이 먼저 주장했더라도 맞는 것은 맞다고 해주는 게 도리 아닌가?
물론 뉴라이트의 깊은 의도는 짐작이 간다. 조선의 성리학과 그 성리학적 사상의 토대를 마련한 왕조 전기의 우상화되다시피한 왕들을 직접 공격함으로써 조선이 어차피 근대국가로 진입한 일본에 의해 망해야 할 나라였다는 논리적 근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 일 것이다. 설마 그럴까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 그들은 조선이 만일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근대국가로 진입하는 물리적 정신적 자료들을 물려받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던 국사학계가 아니라 외국 연구자들에 의해 진작부터 이막동 선생의 오명을 드러나게 한 종천법 문제는 둘째치고서라도, 이막동 선생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던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불과 몇 년 전 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들이다. 쓸데없는 정치가십 이외에는 관심있는 분야가 거의 없는 것 같은 한국언론에는 이런 움직임들이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모르고 넘어갔을 뿐이다.
세밀한 진실의 추구는 학자들이나 해당분야 활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영논리나 당파간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금기와 우상을 무너뜨리는 연구자들의 용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런 노력들에 의해 사물의 다른 면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종천법 이야기를 여행기를 빌려 이미 입밖으로 내뱉은 마당에 훈민정음 제작의 진짜 배경이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리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예민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부분이기 때문에 읽는 분들에 따라 거부감을 들 수는 있겠지만 신빙성이 압도적인만큼 마냥 모른 척하거나 부정하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 같다.
싸르니아가 몇 주 전 어느 글에서 (아마 나향욱 관련 글일 것이다) 아래와 같은 훈민정음 해례를 농담처럼 써 올린 적이 있다.
나랏말쌈이 중국과는 전혀 달라
문자와 발음이 서로 사맛디 아니할 쌔
어리석은 사신마다 중국어 발음이 시원찮아 천자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곤하니
사신들이 바른 발음을 배우고 싶어도 표음과 기호가 없으니 배울 도리가 없었도다.
내가 이를 한심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개의 발음기호를 만들어 반포하노니
명나라에 가는 사신마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연습하여
대국의 관리와 중국어로 소통함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싸르니아는 이막동 선생의 훈민정음 제작의 진짜 이유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기 위해서는 14 세기 후반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국어학계와 국사학계 내부에서는 이미 옛날부터 훈민장음 창제 이유가 명태조 홍무제의 한자음 개신에 따른 조선관리에 대한 강력한 발음교정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다고 보여진다.
원로국어학자 이숭녕이 최초로 문제제기했는데, 그는 훈민정음 창제과정이 명나라 등장과 홍무정운의 제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그의 연구결과를 실토하고 있다. (이거 굉장히 오래 된 이야긴데 왜 국어시간에 이런 사실은 안 가르쳐 주었을까?)
아울러 그는 “훈민정음 창제는 결코 민족적 자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성리학 음운학, 가장 중요하게는 외교적 필요성에 입각한 것” 이라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렸다.
그러니까 역사학자들 뿐 아니라 국어학자들도 이미 옛날부터 훈민정음이 중국정부의 명령에 의해 제작된 발음기호였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만든 국정교과서로 국어와 국사를 배운 싸르니아만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국어학자 이숭녕은 원로가 되어서야 “지금까지 훈민정음 제정 배경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었고, 오직 비판없는 찬사만이 난무해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진실을 추구하려는 학구적 자세보다는 민족주의와 영웅사관같은 학문외적인 압력이 온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바람에 대학자 조차 은퇴하고 나서야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에서 바른소리라는 의미는 다른 게 아니라 철저하게 중국어 발음을 올바르게 내기 위한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음운학적 설명은 지루하고 복잡하므로 여기서 할 필요가 없겠다. 전문적인 훈민정음 연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것 까지 이야기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중국어와 중세 음운학을 모르고서는 읽어봤자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잘 안된다.
세종실록을 정밀 연구한 사학자 정다함의 논문 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명황제 홍무제가 올바른 조선 조정에 정확한 중국어 구사를 요구함에 따라 당시 이막동 정부가 어떻게 이를 수용하고 훈민정음 개발에 착수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 논문을 검색하면 전문을 볼 수 있는데 상당히 긴 논문이다.
"홍무제는 '홍무정운' 을 정하여 명의 새로운 음운 표준을 제시하는가 하면, 表箋의 모범적인 양식을 정하여 천하에 반포하였다. 이에 따라서 조선의 사신과 역관들은 명의 漢語를 올바로 구사해야 했고, 명에 보내는 외교문서도 명의 漢吏文의 격식에 따라 작성해야 했다. 실제로 조선이 보낸 표전의 자구를 명 태조가 트집을 잡아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역관뿐만 아니라 문과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자들을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여 한어 및 한이문을 배우게 하고, 양반층의 연소총민한 의관자제, 생원, 진사, 문신들에게 이를 익히게 하는 제도와 관행이 훈민정음 창제 이전인 세종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마련되었다. 나아가서 명이 제시한 한어의 표준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한어의 소리를 나타낼 수 있는 표음문자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때문에 중국 음운학의 원리를 터득하고 이를 응용하고 보완하여 한자의 표준음을 나타낼 수 있는 표음문자 체계를 고안하게 되었다. 당연히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홍무정운' 의 譯訓이었다. 또한 한어습독관들이 홍무정운의 표준 한어 발음을 언문 즉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익히게 된다."
해당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는 해도 이런 이야기들이 당시의 사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는 문외한인 싸르니아 독자로서는 확증하기 어렵다.
조선어와는 달리 성조 등 발음이 복잡한 중국어를 발음기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던 학자는 신숙주 였다고 한다. 이막동 선생은 왕이기 이전에 중국 음운학의 영향을 받은 언어학자였던 것 같은데, 신숙주의 홍무정운 역훈을 검색하시면 의문과 관련된 자료들을 읽어보실 수 있다. 국어학자 이돈주 교수의 논문 ‘신숙주와 훈민정음’도 읽어볼 만 하다.
앞에 언급한 대로 파란글씨로 인용한 정다함 교수의 논문 < 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漢吏文, 訓民正音> 은 상당히 분량이 많은데, 음운학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들어 있다. 읽기가 지루하고 어려운 글이지만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기 바란다.
박정희가 역사학자 이병도의 영향을 받아 영웅사관을 확립하고 그 영웅사관에 따라 과대평가한 인물이 이막동 선생인 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사학의 시조이자 그 자신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한 친일사학자 이병도는 그의 계보인 식민지찬양론자들에 의해 국지적 배신을 당하고 있는 형국인데, 이 논쟁이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한 부분 때문이다.
이병도가 추켜세운 이막동 선생 공격의 선봉이 비주류 진보사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병도의 계보에 속하는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진보진영은 이막동 선생 재평가연구의 주도권 선점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그 학문적 게으름을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이막동 선생 영웅만들기에 조연으로 등장했던 악역 최만리는 명태조 주원장 (홍무제) 의 명령에 따라 홍무정운을 연구하는 학술조직 집현전 부제학으로 있었으면서 이막동 선생이 별도로 조직한 TF 팀으로 표음문자를 개발하여 일방적으로 반포하자 이에 반발했던 인물이다.
스스로가 왕 이전에 뛰어난 음운학자였던 이막동 선생과의 일종의 주도권 다툼이었던 것 으로 추정된다. 잘못 알려지기로는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게 아니라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훈민정음이 제작되고 반포됐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반포'를 반대한 것이고, 혼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팀원이었던 정창손 하위지 등 여섯 명의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이막동-신숙주 계의 독주에 반기를 들고 권력투쟁을 벌였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
역사를 가장 사실에 가까운 신빙성있는 해석들을 토대로 재조명하다보면 리더에 열광하고, 역사를 존경과 감동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세종을 가리켜 이막동 선생이라고 했다고 해서 그게 무슨 한국인 전체를 모독하는 행동인 양 오해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영웅이나 롤모델은 분명히 존재한다. 영웅이나 롤모델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참 중요한데 아무래도 이막동 선생은 전반적인 재평가가 필요한 분 같다. 오래 전에 말했지만 분야 전문가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한 채 그들이 공식적으로 나불대는 소리들만 철썩같이 믿으면 안된다. 그런 모습을 보고 그들은 속으로 우리를 "개-돼지'라고 비아냥 거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떠나 싸르니아가 이막동 선생에게 고마운 점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동기야 어찌됐든 훈민정음 창제가 결과적 선으로 귀착되어 6 백 년이 지난 오늘을 살고 있는 싸르니아도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표음문자로 거듭난 훈민정음의 발음기호들을 도구삼아 이렇게 재잘재잘 자판을 두들기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막동 선생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