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 일단 진정들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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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들 하셨습니다. 봄은 아니지만 잠시 봄 노래 들으시면서 마음들 가라 앉히시고요^^.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방금 글 다 읽어보았습니다. 진흙탕 싸움을 하더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 개인을 바라보지 말고 상대의 논리와 주장에만 주목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공격과 반론대상은 상대방의 주장이지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툭하면 옆 집에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고 글 보면 그 사람 인격 다 나온다고 말들은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예단일 뿐이지요. 몇 십 년을 친구 동료로 지낸 사람도 잘 모르는 판국에 일면식도 없는 상대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인격이나 사상에 대해 평가를 하겠습니까? 웃기는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상대방 개인에 대한 언급같은 거 일체하지 않습니다. 제가 성격이 짱이거나 예의가 쿨하기 때문이 아니라 토론 상대방 인격을 따로 연구하고 평가하는 것은 원래 의도했던 과제도 아니고 제 관심사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토론에 필요한 정보는 더더욱 아니고요.
연평도 사건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저 넘은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바다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이 불 저 불 쑤신다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해외동포 비하발언’이기 이전에 토론 상대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표현이지요.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 일단 토론이 시작됐으면 발언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돼 있는 것 입니다. 사는 지역에 따라 발언할 수 있는 내용에 제한조건이 따라붙는 것도 아니구요. 그 사건은 남북한 두 나라간에 벌어진 군사적인 사건이기 이전에 국제정치적인 사건입니다. 보편적 인권과 평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어디에 살고 있던 나름 해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 입니다.
토론은 선언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배워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주장은 없습니다. 궤변이든 개똥철학이든 나름의 논리와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주장이 등장했다고 칩시다. 내가 그 주장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증오심을 느꼈다고 칩시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의 반론을 펴면 그만입니다. 설득력 있는 반론은 우선 상대방의 글 요지와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반박할 대항정보를 언어로 조직할 수 있는 논리적인 무기를 발견한 뒤 상대의 주장의 근거를 하나 하나 해체시켜 나갈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건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리듯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나름 어려운 검색과 공부 등 부지런한 노력을 해야 가능한 것이죠. 지지자건 반대자건 독자들은 이런 역동적인 교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상이나 이념의 차이에 관계없이 사회의 어느 분야나 서로간의 이런 자극과 논쟁에 의해 발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의 과정 없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마나한 결론만을 내 놓는 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령 10 분 이상 포뮬라를 이용해 장고해야 풀 수 있는 수학문제를 옆 사람의 시험지에서 답만 베껴다가 써 낸다고 해서 교수가 점수를 줄 리 없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저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누가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선 정보들을 열람합니다.
최근의 예로 저는 12 월 중순 한반도 사태와 관련해서 벌인 미국의 행동들 중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에 주목했습니다. 불룸버그 통신을 통해 1970 년대 키신저 국무부와 당시 주한 미 대사가 NLL이 불법임을 인정한 외교문서를 슬며시 공개하고, 굳이 개인자격임을 강조하며 연방정부 관리가 아닌 주지사를 CNN 앵커까지 대동하고 평양으로 가게 한 사건들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전히 변화하고 있다는 정황증거들이지요. 그러면서도 공식라인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통제하도록 중국을 압박한다는 기사들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으니 대중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어느 분은 정보가 개방된 시대에는 선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저는 전혀 생각이 다릅니다. 정보의 대부분은 발생하는 게 아니라 해석되는 거고 한편으론 제작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정보가 개방된 현상자체에 안심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개방된 정보를 분류하고 선택하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 이지요. 지금 정보를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제작해온 제1세계 정부 군사조직 다국적기업이 폭풍을 맞은 듯 혼비백산한 사건이 하나 있지요. 쥴리앙 어싼지 사건입니다.
긴 설명하려고 들어온 자리 아닌데 또 이야기가 길어지려고 하네요. 제 나쁜 버릇 입니다.
암튼 제 포스팅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었다면 제 불찰입니다. 근데 모든 논쟁이라는 게 처음에는 정보 해석자의 주관으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사회 역사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는 어느 사태를 가치중립으로 바라볼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해석의 관점에 따라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관점에 편견이 개입돼 있다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가면서 극복되는 경우가 도그마나 주관적 선입견을 먼저 버린 뒤에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경우보다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 정보도 없이 버려지지도 않는 편견을 버리려고 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비교해 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해석의 관점을 당파성에의 미련에 영향 받지 않고 진솔하게 수용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토론참가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동기야 어찌됐든 이 자리에 나와서 발언을 하신 모든 분들을 존경합니다. 아니 존경까지는 뭐하고 그냥…… 좋아합니다. 제가 우리나라 속담 (속담 맞나요) 중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 는 말 입니다. 참 못나고 비겁한 철학에서 나온 말이지요. 속담은 아니지만 또 하나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 입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곤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 정도인가요? 그런데 다양한 이익집단의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최선의 상태를 이루며 유지해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침묵하는 다수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안타깝게도 참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사람들, 흩어져 있는 에너지와 상호교감을 조직하고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일단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과감한 공개발언과 행동을 통해 검증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새 세상을 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뭐, 태사랑 대한민국방에 글 많이 올린다고 새 세상이 열리는 건 아니겠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 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방 패널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하셨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윽 활기차고 서로를 긴장시키는 유용한 토론마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제 개인적인 바람은 딱딱한 정치 군사 이야기도 좋지만, 대한민국의 여행지-여행문화 등과 관련된 멋지고 설득력 있는 포스팅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방 패널 여러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