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기 어려운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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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기 어려운 죄책감

sarnia 7 288

광주민주화운동 35 주년에
대민방에 처음 올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

1982 년 4 월 어느 날,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처음 따라 불렀던 순간이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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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대민방에 등장하는 주장들이 다채롭다. 어제는 글 읽다가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렇게 웃어보기는 처음 인 것 같다. 6. 29 선언을 한국 국민들이 이어받아야 할 정신적 사건으로 헌법전문에 넣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나서다.


그 분 주장에 따르면 6.29 선언이 한국에 민주화를 가능케 한 전국적 규모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주의 근본 이념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 분은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는데, 대통령 직선제는 이념이 아니라 선거제도다. 민주주의 그 자체가 이념이라면 이념일 수 있는데 아마도 그 분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는 무엇일까?


주권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자유와 존엄일것이다민주주의라는 이념도, 그 민주주의가 동반하는 제도도, 제도로 운영되는 한 단위인 국가도, 그 존재목적은 한 가지다.


주권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자유와 존엄울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그것들이 존재한다. 즉 원칙적으로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그 반대가 아니라는 이 간단한 원리를 깨닫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엄청 헤멘다. 1972 년 부터 1979 년까지 이 땅을 지배했던 파시스트 정권이 뿌려놓은 고약한 국가지상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헌법전문에 3.1 운동과 4. 19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는 두 가지다.


우선 제도적 단위로서의 대한민국의 법통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는데, 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 1 운동이 일어난 지 43 일 만인 1919 년 4 13 일에 수립됐다.  3.1 운동은 나라의 주권과 독립을 선언한 반제국주의 국제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4. 19 혁명은 주권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짖밟은 국가폭력에 저항하여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되돌려 놓는 사건이다. 막연히 반독재반 이승만 정권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6.29 선언이란 무엇일까?


6 29 선언을 헌법정신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신 분은 아마도 6. 10  항쟁과 6. 29 선언이 서로 손에 손잡고 화합하면 보수와 진보가 화해라도 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모양새처럼 보이는 게 그럴듯해서 그렇게 하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헌법정신에 4. 19 정신이 기왕에 들어갔으니 다른 거 새로 넣을 필요없이 4. 19 정신과 함께 4. 26  이승만 하야정신을 함께 넣자고 해도 좋지 않을까


기왕에 3. 1 운동이 들어갔으니 3. 1 정신과 함께 일왕 히로히토의 8.15 항복정신도 함께 넣자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광주민주화운동 35 주년이다


1979  년과 1980 . 대한민국에서 이 두 해를 살았던 사람들 가슴 깊은 곳에는 아직도 깊게 패인 상처가 남아 있다. 그 상처는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 상식을 바탕으로 한 예상을 뒤엎은 사태에 대한 공포심과 좌절감에서 비롯됐다.


당시 사람들은, 박정희가 피살당하고 18 년 간에 걸친 군사독재가 종식된 그 시점에 절대로 군부가 다시 등장해서 헌정을 유린하리리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근데 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온 국민이 눈을 번연히 뜨고 있는 가운데 무려 15 개월에 걸친 기나 긴 시간을 무상하게 흘려보내며 일어났다.


15 개월 이라함은 하나회를 주축으로 한 유신친위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1979  년 12 12 일 부터 전두환이 제 12 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1 3 월 3 일까지의 그 참담했던 시간들을 말한다.    


이는 마치 먼 바다도 아닌 섬 앞바다에서 무려 90 분에 걸친 기나 긴 세월을 두고 바다에 가라앉았던 세월호에서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출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상상조차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처럼 똑같은 상황이 그 해에도 발생했던 것이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는 다른 게 아니다. 평생을 지울 수 없는 부채감과 죄책감이 그것이다.


그 무거운 부채감과 죄책감은 희생자의 유가족이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따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지속되는 인간의, 인간다운,, 원초적 감정 같은 거다


그런 각별한 감정은 먼저 간 희생자들을 향한동시대를 함께 숨쉬며 살아왔던 인간으로서의 양심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마음 아닐까 한다.


그냥암꺼나 방에 필리핀님이 퇴계의 사단칠정론을 올리셨는데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옳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마음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필요이상으로 폄훼하는 막말을, 특정 지역 사람들을 bullying 하는 도구로 삼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가리키며 팔자고치나요같은 비아냥을 할 수 있다는 것은그 사람이 나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5. 18 광주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한 세기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사건 이후 시민운동이 조직화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과학적인 감시와 견제기능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민민주주의사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80 5 월정국의 총체적 패배와 그 패배의 결정적 희생양이 된 광주의 처절한 비극은 


이후 생성될 시민운동의 맹아였던 당시 학생운동을 대오각성하게했고, 당시의 청소년세대 거의 전부를 일깨우며 거의 한 세대에 걸쳐 강력하게 연대하게 함으로써, 이 나라를 문명시민사회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데 값진 밑거름이 됐다.


결코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즉 환원 불가능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야만과 문명 사이에 놓인 다리를 건너 탈출할 수 있게 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7 Comments
참새하루 2015.05.15 12:25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 회상해봅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sarnia님 말씀처럼
죄책감이 먼저 듭니다

오래 오래
가슴속에 맺힌 무언가가 뭉클하고
다시 솟아나네요

이 음악들을 들으니
주마등처럼 잊혀지냈던
얼굴들 이름들이 떠오르네요

열사로 불렸던 그 시대의 희생자들...

가까이 기억나는 얼굴은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제 과 친구 하나가 시위하다가
투옥된후 고문을 받고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휴학후 강에 투신 자살하였습니다

참 아까운 젊은 청춘들이
그 지랄같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뿌렸지요

그  희생들이 오늘날 철없는 젊은 세대들이
누리는 민주주의 밑거름이 되었음 알기나 할까요...
필리핀 2015.05.15 12:56  
1979년의 15개월과 2014년의 90분을 비교하신 것... 절묘하네요...

저는 1979년~1980년에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당시 대구의 문학청년들이 자주 모이던 다방이 있었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면 교복 상의를 쑤셔넣은 책가방을 구멍가게에 맡겨놓고

그 다방의 말석에 다소곳이 앉아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주옥 같은 말씀(지금 생각하면 개똥철학^^)을 들으며

문학에의 푸른 꿈을 키우던 시절이었는데요...

햇살이 난분분 쏟아지던 어느 봄날, 그날도 우리들...

아직 정식 작가는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대한민국 최고 작가였던

더벅머리 문학지망생 몇몇이 그 다방 구석자리에서

김민기와 양희은과 트윈폴리오의 노래를 들으며

구름과자(뭔지 아시나요?)를 맛나게 먹고 있었는데요...

시인이자 대구 모 신문사 기자로 있던 선배 하나가

창백해진 낯빛으로 들어오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광주에서 비극이 발생했다..."고 하시더니

한동안 눈만 껌뻑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잠시 후 마음을 진정시킨 그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때까지 제가 읽었던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도 끔찍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도록

그날 그 선배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

신문과 TV에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자신들 입맛대로 역사와 진실을 조작해대는

소수 기득권 계층의 선전선동에 놀아나서

뭐가 똥이고 뭐가 오줌인지도 제대로 못 가리는 치들을 보면

참으로 딱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요...

(이런 걸 측은지심이라고 하나요??? ^^;;;)
snsqncj 2015.05.15 13:05  
'그 사람이 나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워하면 안되는 것이겠지요.
감사합니다.
thaimiho 2015.05.15 14:34  
호치민 박물관 가보면  미군들이 죽인 사진들로 가득,,,그전에 왜 왜 베트남 떠난 이 사람들이  씨암렙 호수물 위에 국적 불명으로 사는 베트민들의 실상이야기 없다 왜 그들이 떠나야했나,,아직도 그들은 떠돌이,,,,  진실???  글쎄???? 글세??? 우린 눈에 나타나는 그것만 본다..그속에 숨긴  숨겨진 숨겨진 진실은 모르고....
배낭딸랑 2015.05.15 20:41  
그때 그시절..정말 아팠던 시대....글을 읽으며
눈물이 흐릅니다.
분명히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시대가 바뀐거 같은데도
아직도 바뀐 느낌은 없는것 같은....
저만 느끼는것은 아닐듯합니다.
bottle 2015.05.15 23:48  
대한민국방이 이런 게시판이었나요? ... 여행 커뮤니티에서 좀 그렇습니다.
jindalrea 2015.05.16 00:30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오늘따라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영령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앳된 얼굴에 못감은 눈.. 우리 님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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