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얼굴에 침을 뱉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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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얼굴에 침을 뱉으마!

필리핀 12 264

내가 수년 전부터 주목해서 관찰해온 세대가 있다...

6.25전쟁 이후로 대한민국이 가장 큰 혼란에 빠졌던

1997년의 IMF 사태 때 초, 중, 고, 대학생이었던 세대이다...

 

현재 30~40대의 나이로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이 세대의 특징은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반면

사회적으로는 무척 개인주의적이라고 어느 사회학자가 분석한 바 있다...

 

이른바 IMF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 세대는

묵묵히 시키는 일만 해왔던 자신의 부모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무참하게 내쫓기고

단란했던 가정이 경제적 궁핍으로 파탄 나는 일을

생생하게 겪은 세대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한창 예민한 성장기에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게 한이 되었다...

그래서 자기 것을 지키려는 욕구는 강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매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다소 모순된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그 사회학자의 주된 분석틀이다...

 

나는 그 사회학자의 분석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IMF 세대가 이중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만든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세대 중 특정 부류가

꽤 우려스러운 사회적 행동을 하는 게 포착되었다...

몇몇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사회 정의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인터넷, 사이버 공간의 폐해를 잘 안다...

그래서 인터넷도 최소한으로 하고 SNS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인터넷의 최대 폐해는, 자기 검열의 부재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는 자체 검열을 통해

어느 정도 순화된 언어와 행동을 한다...

 

만약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거나   

손찌검을 한다면 그 사람은 즉시 왕따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력이 있는 사람은

다음부터는 그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안 그랬다가는 당장 퇴출된다는 걸 본인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자체 검열 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글들이 너무나 많다...

인격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글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아니면 일부러 왜곡하는 글들도 무수히 많다...

 

진실을 잘 알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이나 집단이

그런 왜곡을 일일이 찾아내서 바로잡지 않는 이상,

그러한 왜곡은 시간이 지나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지껄이는 건,

대한민국방의 몇몇 꼴뚜기들 때문이 아니다...

최근 모 개그맨이

삼풍백화점 사고 최후의 생존자를 비하하는 방송을 했다...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고 그 생존자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그 개그맨은 즉시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고

생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30초를 기다렸느니 3시간을 기다렸느니 하는,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가 화제가 되더니

웃기려고 한 말이니 이제 그만 용서하고 고소를 취하해라

라는 말까지 나돈다고 한다...

 

삼풍백화점이 어떤 사고였는가?

당시 대한민국의 총제적 부실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었던가?

빨리 빨리로 상징되는 이른바 고속성장의 신화 속에서

멀쩡해야 할 한강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벌어졌던 게

불과 수년 전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나 유지하고 있는 것은

특정 정치인이 잘하고 특정 기업주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독재 권력의 살인적 억압과

악덕 기업들의 폭력적 착취 속에서도

묵묵히 일만 해오다가

다리 끊겨서 빠져 죽고

건물 무너져서 깔려 죽고

직장 짤려서 가정 파탄 나고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온 대다수 국민들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라

나는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박근혜를 애틋하게 여기는

일부 노인 분들은 차라리 애잔하다...

 

그런데, IMF 세대는

어느 정도 민주화된 세상을 살아온 세대들이다...

독재나 착취와는 거리가 먼 세대이다...

이전 세대보다는 밝고 건전해야 할 세대이다...

 

대다수의 30~40대는 건전하고 상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 일테면 삼풍백화점 최후 생존자에게

이제 그만 용서하고 고소 취하해라고 말하는 자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생존자는 그야말로 죽다가 살아나온 사람이다...

그런 생존자를 개그맨은 웃기기 위해서비하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웃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없는 자리에서는 대통령도 욕한다는데,

웃기기 위해서 삼풍백화점 생존자를 소재로 삼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개그맨은 웃기는 게 직업이다...

즉, 남을 웃겨야 돈을 버는 사람이다...

개그맨은 자신의 수입,

즉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삼풍백화점 생존자,

즉 자신보다 상대적 약자를 비하한 것이다...

 

일반인이 대통령을 욕하는 건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라 좀 잘 이끌라는 표현의 오버일 뿐이다...

대통령 개인은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그런 비난은 대통령 자리에 있는 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상대적 약자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짓밟는 행동은

사회 정의 차원에서 마땅히 비난 받을 짓이다...

글구 그러한 상황에서 용서를 하고 말고는

오롯이 피해 당사자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생존자가 무려 17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느꼈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그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인가?

   

IMF 세대들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차원의 고통으로 인해

무척 힘든 성장기를 보낸 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고 나니

사회적 발언도 하고 싶고 자기주장도 펴고 싶은 것도 이해가 간다...

 

아픈 성장기에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았고

혼자서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에 대한

서운함이나 억울함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회 정의라는 게 있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라는 게 있다...

아니,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도

최소한의 자기 검열이라는 것도 있다...

 

삼풍백화점 최후 생존자에게

이제 그만 용서하고 고소 취하하라고 하는 이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네가 정말 욕해야 할 사람은

튼튼한 다리 짓고 건물 올리는데 써야 할

국민들 세금 삥땅쳐서 부실공사 하는 바람에

무고한 사람들 죽게 만든

바로 그 놈들이라고...

12 Comments
sarnia 2015.05.07 13:01  
아주 용기있게 잘 쓰셨습니다.
여기 그 나이 또래 (내가 일가론 40 대 중반) 면서 그런 성향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분도 있는데,
일단 그 분들이 나와서 반론을 펴봤으면 좋겠군요.
그 세대, 그 분들이 이런 도발적(?) 인 문제제기에 정면돌파로 맞 설 용기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필리핀 2015.05.08 10:06  
정면돌파가 아니라,

제대로 된 논리라도 갖추었으면 좋겠어요...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기분으로 글 쓰는 분들 보면

참 깝깝해요...
지장보살 2015.05.07 13:16  
x세대라고
IMF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이지요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만
그 X세대와 바로 그밑에 세대
그러니까 지금 30대 초중반 세대들 그리고 20대 후반세대인데
노무현 대통령시절 학교다닌 친구들 보면
불만들이 참 많더군요
타당한 불만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 불만이 쌓인 친구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느낌탓도 있을거고
세대차도 있겠지요
상당히 반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의식이 결여된듯 보입니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요

그즈음엔 제가 한국을 떠나온 지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시절에
교육정책이 잘못돼서 손해가 막심했다고
욕하던 후배가 있었지요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만
그 얘길 듣고 보니 좀 어이가 없더라구요

한국의 교육정책이란게
어제 다르고 내일 달라지는 정책이라

그것만 따지면 정말 손해가 막심했던 세대는
제 세대였거든요 ㅎㅎㅎ

교육정책인란게 본인 당사자만 바뀐게 아니라
동세대가 다 당하는거라
어차피 같은 동세대와 경쟁하는거라

말이 손해지 결국 본인의 능력 탓이라 봅니다 전

각설하고 왜 그렇게 엉뚱한 곳에 화를 내는지 이해 불가인 세대이기도 하고
짠한 마음도 드는 세대이지만
필리핀님의 글처럼 저도 참 어리석은 세대라고 봅니다

화를 내야 할 대상은 IMF를 겪게한 자들이고
무고한 이들을 허망하게 죽게 만든이들이고

더 큰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눈감아 주면서
니들도 같은 자라고

차라리 화끈하게 먹어도 크게 먹는 놈들이 일도 잘할거라는 착각에 빠져
주구장창 밀어주는 어리석음이지요

정치인들에게
잘못하면 언제든 갈아치운다는 메세지를 던져줘야 하는데
무슨짓을 해도 밀어준다라는 믿음을 준다는 게
얼마나 해악인지
인지들을 못합니다

그래서  그 어리석음을 탓하면 빨갱이라 하네요
그저 허허 웃지요 뭐
jindalrea 2015.05.07 18:55  
따끔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1996년 12월 26일..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춘 듯 합니다. 그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커지는 요즘입니다.
필리핀 2015.05.08 10:13  
노인들의 박정희 향수병은

박정희가 통치하던 시기가 자신들 인생의 황금기였기 때문에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리지요...

노무현에 대해 반감을 가진 세대는

그 시절이 자기가 제일 불행하던 시기인데,

마땅히 화풀이 할 대상을 찾지 못해 그런 거구요...

박정희 향수병이나 노무현 반감이나

따지고 보면 참으로 단순무식한 생각들이죠...
영등놀이 2015.05.07 13:43  
좋은글 잘 봤습니다.
언제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가가야
바로 그놈들의 본질을 일반 민초들이 알아갈지 한심한 세태입니다.

그래도 역사는 조금씩 이나마 진보한다는
명제를 믿어야 할까요 ?
저도 역시 허허로이 웃으며 한세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필리핀 2015.05.08 10:14  
그래도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비하면

참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입니다... ^^
Robbine 2015.05.07 18:04  
동의합니다.
여기서 지겹게 본 벌레들의 의견(세월호 지겹다. 이제 그만 다른 문제 이야기하고 발전적인 이야기 하자)도 그와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흔히 한국인들의 냄비근성이라고도 표현되지요. 뭔가를 끈질기게 붙잡고 끝까지 진위를 가리는 일은 늘 중간에서 흐지부지 되는거 같더라구요. 좋은게 좋은거다란 사고구조도 한 몫 하는거 같고요. 하지만 이해당사자도 아니면서 옆에서 이제 그만해라 하는 헛소리 하는건 단연 imf세대 뿐만은 아닌듯 해요.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끝까지 주장하면 자신들의 정신적 피로도가 올라감과 동시에 그 일을 그 정도에서 마무리짓지 않는 피해당사자를 사회부적응자 내지는 성격파탄자 쯤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근데 제목이 ㅋㅋㅋ
싸르니아님이 국립묘지 방문 이야기 해주실 때 언제 한 번 가서 해볼까 하며 떠올린 제목이 저거였는데 이렇게 보게되니 반갑네요 ㅋㅋ
필리핀 2015.05.08 10:15  
세월호 이야기 지겹다고 해서

살짝 소재를 바꾸어봤어요~ ㅎ

근데 침 뱉으러 국립묘지까지 가기엔

시간 아깝지 않아요? ^^
Robbine 2015.05.08 16:18  
혹시 가게 되면 말이지요 ㅋㅋ
못생김 2015.05.07 18:59  
제가 81년생이라 정확히 그 세대에 포함되어 있는데 필리핀님과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신 문제들...... 직접 그런 분들 겪어보면 속터지죠.

제 또래에서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신이 믿고싶은데로 보고싶은데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입니다. 혹은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보이구요. 자신의 말만 하느라 상대방이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봤어요.

공론화된 문제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할 때조차 자신의 기준에서 유익하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이들도 꽤 됩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적이라는 평가도 있나봐요.

그리고 Robbine님의 이쯤에서 그만하자~하며 결론없이 흐지부지 끝나는 일은 저도 경험했었는데 그럴 때 저는 남들보다 예민하고 뒷끝이 길고 집요해서 그런가보다 했어요.ㅎㅎ
필리핀 2015.05.08 10:17  
근본적으로는 교육이 문제라고 봐요...

공교육도 그렇고 사교육도 그렇고

스스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주입식으로 기억하게 만드니...

그러다 일베 같은데 빠지면

괴물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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