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바가지
이 선거에서 두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제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됐다는 사실이고 (제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된 건 1985 년 2 .12 총선 이후 두 번 째)
둘째는 알버타 주 유권자들이 무려 44 년 간 집권해 온 보수당 (Progressive Conservative)을 하루아침에 몰락시켰다는것 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다수당 (majority)이 되어 집권한 당은 놀랍게도 가장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 (NDP) 입니다.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신민주당이라고 부릅니다.
알버타주는 캐나다에서 가장 보수적인 주 입니다.
따라서 알버타 주에서 NDP가 집권했다는 것은, 마치 대구-경북에서 통합진보당이 압승했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됩니다. 두 당이 비슷한 성향이라는 게 아니라 정서상 그렇다는 겁니다.
수도 에드먼튼에서는 전 선거구에서 통합진보당이 당선됐고, 캘거리에서도 이 좌파정당이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왜 캐나다의 대구-경북에서 통합진보당이 압승 했을까요?
여기에는 요즘 갑자기 어려워 진 경제사정이 그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반토막난 에너지가격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알버타 주는 에너지산업 덕택에 지금까지 독보적인 부를 누려온 주 (Province) 입니다.
몇 년 전에는 쌓여만가는 돈다발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300 만 전 주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일인당 400 불 씩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 나도 400 불을 받았습니다. 와이프도 400 불을 받았습니다. 그 해 고등학생이었던 아이도 400 불을 받았습니다. 옆 집에 사는 인도사람네는 3 대가 모여 사는지 가족이 열 한 명 인데, 그 집 젖먹이까지 포함해서 모두 4 천 4 백 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랬던 주가 요즘은 형편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아직 주민들이 끼니를 굶는다거나 길거리에 나 앉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재정을 편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알버타 주는 완전무상의료혜택을 제공하면서 소득에 관계없이 의료보험료조차 전액 면제되고 있는 주 입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유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들도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석유대신 흙을 파서 의사 월급을 주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그 돈을 메워야 하는데,
현재 집권 보수당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앞으로 연소득 5 만 불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의료보험을 약간 내게 하고 7 만 불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내게하고, 10 만 불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좀 많이 내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망조가 들려니까 정신이 약간 나갔는지 교통범칙금을 인상하고 캠핑장 사용료를 올려 적자를 메우는데 보태쓰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제 선거에서 입승을 거둔 통합진보당,, 아니 NDP 는 다음과 같은 공약을 했습니다.
“알버타주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고있는 모든 주민들은 의료보혐료를 계속 안 내도 되며, 누진소득세제를 개편하여 고소득자들에게 더 세금을 내게하고,Corporate Tax (법인세) 와 Corporate Income Tax (법인소득세) 를 2 퍼센트 더 걷어서 모자란 재정을 충당하겠어요.”
이렇게 공약을 내 건 NDP가 말그대로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돈 거둬서 계산 맟츨 수 있겠는지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44 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알버타주를 보면서,
아, 그래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부족주의나 패거리 정서에 따라 투표하는 것 보단 한 차원 높은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하면 어쨌든 변화가 가능하지만 부죽주의나 패거리 정서에 따라 투표하면 호남당 영남당 정치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진정한 주권자역할이 아닌 패거리당 들러리 노릇밖엔 할 수가 없는 것이니까 말이죠.
이번에 알버타 주 총선에 투표권을 가진 한국계가,, 글쎄요, 만 명이라고 치고, 그 중 투표권을 행사한 한인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NDP 에 투표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는 말 입니다.
근데 캘거리의 한 선거구에서는 좀 다른 투표성향이 나온 것 같은데요. 그 선거구에서 30 대 초반의 한국계 후보가 들장미당 (Wild Rose) 으로 출마했기 때문입니다.
들장미라고 하니까 무슨 야쿠자 조직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야쿠자 조직은 아니구요. 한국의 새누리당보다 조금 오른쪽에 가 있는 우익정당입니다.
이 선거구에 사는 한인들이 같은 한국계라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이 우익정당의 한인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게 과연 올바른 투표자세인지, 이런 논란이 현지에서 많았다는 점도 아울러 알려드립니다.
이게 과연 한국계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교두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안인지,
아니면,, 부족주의나 패거리정서,
즉 안에서 깨진 바가지정신을 밖에 나가서도 발휘하고 있는건지 의견이 좀 갈리고 있는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