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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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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bine 10 282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 만큼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알고 있다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요즈음이다.

 

얼마 전 PD수첩을 통해 보았던 노인빈곤의 실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경기가 나쁘다 나쁘다 해도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그런 수준의 생활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는게 없어서 그런 상상이 불가능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도 드러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유홍준씨의 명언에 아주 크게 동의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나는 그들이 단순히 박모씨에 대한 향수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왔다.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서 주는 뉴스만 보다보니 그렇게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세련되지 못한 표현방식 때문에 (대화를 시도하면 끊어버리거나 너는 그렇게 생각해라 나는 내 나름대로 할란다 등등의 방식.) 그들도 나름의 생각과 판단으로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방송을 보기 전까진..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바뀔 수 없는, 죽음만이 탈출구인 이 시궁창같은 현실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 주겠다던 그 공약자였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올바르지도 않은 것을 근거로한 감정적 선택때문에 다같이 죽어야 하는 현실을 초래한, 나라를 좀먹는 망령같아 보이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나보다 더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선배 국민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데 왜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안하시냐는 피디의 질문에, '신청 해봤는데 떨어졌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라고 대답하시던 할머니는 굉장히 점잖으신 분이셨다.

 

개인적으로는 엄청 충격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의 차이는 가치의 차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가치를 좀 더 우위에 두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선택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가치관'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단어였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점은 가치의 우선순위이다.

태사랑에서 자주 접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는 여행 스타일에 잘 반영된다. 볼거리를 중시하는 사람은 관광에 초점을 두고, 휴식을 중시하는 사람은 목적지를 해변가나 꽤 고급의 호텔로 정하는 등 여행패턴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물론 같은 사람이라도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는 여행 목적에 따라 가치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여행패턴과는 달리, 정답을 가려낼 수 있는 가치의 우선순위도 있다.

 

다음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출근길에 도로에 사람이 쓰러져서 피를 흘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사람을 발견한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 (길에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상황) 당장 119에 신고를 해서 이 사람을 병원으로 호송할 때 까지 있는다면 이 사람은 살 수도 있다. 119로 전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병원에 잘 가기 까지 시간을 지체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출근시간에 늦게 되고, 그 이후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아침에 잡혀 있는데, 내가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 사람의 생명과 나 개인의 안녕. 여기서 회의에 늦어서 발표를 펑크내면 안되니까 일단 출근을 하고 119에 전화를 하겠다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인류 모든 문화에서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시 되는 것이니까. (물론 현실적인 사례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대표적인 예는 전쟁.)

 

무엇과 충돌하더라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절대적 가치와,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선후를 바꾸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상대적 가치가 있다. 문제는 인간의 삶과 현실이 이렇게 두 가지로 딱 잘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를 구분하는 기준, 즉 선, 이걸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아주 복잡다단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앞에 두어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자는 생각은, 공리주의나 기타 다른 정치 사회학적 명분에 상위 가치의 자리를 빼앗기고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과 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모여서 만든 사회속에서 공사의 구분은 쉽지가 않다. 공적인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그 관계속의 개인 사이에는 사적인 관계도 형성되니까.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가장 큰 부분도 이러한 구분의 모호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암꺼나 게시판에서 겪었던 일이다. 어떤 분이 어떤 부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올렸는데, 난 그 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서 이러이러한 점에서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는 댓글을 썼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냥 내 생각이 이렇다 하고 쓴 것인데 왜 그러냐.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하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게시판에 의견을 써두고 반대의견이 달리니 그냥 내 생각 쓴건데 왜 뭐라하냐는 식의 반응이라니.. 그럴거면 처음부터 논의의 장에 공개적으로 쓸 것이 아니라 비공개 개인블로그에 쓰거나 혼자 생각만 하고 말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 분의 판단근거의 이러이러한 점이 잘못되었고, 따라서 당신의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 하는 비판을 했는데, 원글자는 내가 비난을 했다고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혹은 반대의견을 말해서 빈정이 상했거나. (특정 단어에 발끈해서 반응하는 부분도 많다.)

 

잘 생각해보면 한국사람들이 잘 못하는 것이 이 부분이다.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을 싸움을 거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나랑 굉장히 가까운 친구가 있는데, 만약에 이 친구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이 친구의 돈버는 방법에 대해 되도록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간혹 나도 가르쳐줘봐라 같이 해보자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너 지금 굉장히 잘못 살고 있는거야! 니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냐!" 라고 일갈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될것 같다. 한 20년 지기 친구인데 잠깐(최근 2-3년) 그러는거라면 진실되게 뭐라고 해줄 수 있는 사람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가 그 보다 더 오래 그래왔다면? 아마 그렇게 계속 친구로 지내지 않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논의를 확장해서 친구는 문제가 없는데, 친구 부모님이 유명한 조폭 두목이라면? 친구 앞에서 니네 부모님 왜 그렇게 사시냐고 비판할 수 있을까? 친구 부모님 욕을 안하더라도 그 친구 앞에서 조폭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 다른 경우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착각해서 1번 뽑는 경우 말고, 정말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서 1번을 뽑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전체의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일부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있는데, 이런 이득을 실제로 보는 사람이 이들을 뽑는것을 뭐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윤리적인 관점에서는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판단이 무 자르듯 명확하게 서지 않는다.

 

이런 모호한 지점에서 가치판단의 우선순위를 다르게 매기는 사람들이 부딪치면 분란이 되는것 같다는게 요즘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판단의 우선순위는 대략적인 정답이 있으며, 그 정답을 아는 자와, 안다고 착각하는자가 부딪친다는것도 요즘 하는 생각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10 Comments
필리핀 2015.05.05 06:33  
제가 보기에 한국인들에게 세대별로 두 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그중 한 가지가 나이 든 세대에게 뿌리 박힌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지요...

출신지역, 출신학교 등으로 맺어진 이러한 마피아적 동료의식은

중요한 사회적 상황 앞에서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마저 무시하게 만들어버리죠...

다른 한 가지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공감 능력' 부족이에요...

단식 농성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 이벤트를 벌인다거나,

시위 때문에 출근길 차 막힌다고 짜증 부리는 것은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죠...
(이런 분들이 자신의 사소한 아픔에 대해서는 무지 엄살을 떨지요...)

이렇게 된 데는 기득권 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 대중들을 끊임없이 (총칼로) 협박하고 (경제 살릴게로) 회유하고

(매스 미디어로) 세뇌시켜온 때문이지요...

유약하기 짝이 없는 개인 대중이 기득권 계층의 폭력적 공세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가 않지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기보다 센 자에게 순응하는 노예 근성을 갖게 되는 거구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도 맞긴 하지만

하버드대 나와서 권력의 주구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시골 무지랭이로 살아왔어도

정의가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아시는 분들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아요...
필리핀 2015.05.05 06:50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저는 모든 종류의 권력을 싫어하고

그 권력을 공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더욱 싫어해요...

대한민국이 지금 이 지경이 된 건 바로 그런 사람들,

권력을 욕망하고 그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이지요...

우리 사회에는 온갖 종류의 권력이 존재하고 있어요...

지식을 기반으로 한 권력, 자본을 기반으로 한 권력,

나이를 기반으로 한 권력, 서열을 기반으로 한 권력 등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권력을 탐하거나 종속되거나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모든 국민이,

모든 권력으로부터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지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sarnia 2015.05.05 10:54  
흔히 생각하기를 우리가 옳고그름을 판단하는데 정보 지식 이성적 추론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지만 실은 대부분의 판단은 본능적 감성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해요. 어떤 상황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면서 아, 이게 맞는 건데, 저건 아닌데,, 이런 본능적 판단이야말로 최초의 준거가 되는거지요. 학습과 경험을 통해 습득된 윤리관 이전에 이미 유전자로 상당부분의 선악판단코드가 입력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정치철학의 대표적 딜레마인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 비유만 하더라도 그 딜레마 질문에 뉴욕에 사는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나 아프리카 시골에서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노인들이나 대개 같은 답변을 한다는 통계가 있지요.

공리주의적 결정이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이나 생명을 희생할 의사가 있는, 그 희생자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에만 '원초적' 윤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해요.

정보 지식 이성적 추론이 필수적인 판단도구로 요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침략전쟁을 일으킨 위정자들이나 박정희 리콴유 같은 사람들을 존경한다는 분들의 문제는 그 분들 본성이 나쁘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 분들 개인마다의 유전자에 새겨진 착한 본성이 정치적 감정이나 위인숭배사상, 리더쉽이론, 집단주의, 패거리 정서같은 여러가지 이물질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해물들로부터 내면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선에 대한 본능적 추구를 지켜내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야말로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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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정신과 서열문화가 대한민국을 망쳐왔다는 필리핀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씀이었어요.

사실 자신과 가깝거나 익숙한 사람이나 사물을 일단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 이 정신을 발휘해 끼리끼리 의리를 지키기 - 봐주기를 한다면 그 공동체는 그대로 망하는 겁니다.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공동선으로 유지해주는 유일한 끈은 다름 아닌 계약인데, 그 계약의 규범, 즉 법치가 사라진 공동체란 한마디로 무법천지가 되는거고, 우리가 남이가 울타리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규정을 마구 어기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한다한들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게 되지요.
snsqncj 2015.05.05 13:35  
절대적 선, 정의, 가치.....
이런 것들이 진정 존재하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과정은 있을지언정 결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함으로 가는 과정, 정의를 만들기 위한 방법,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이런 것들만 있을뿐.
세상에 절대적인란 것이 존재할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모든 것은 그 흐름이 있는데.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나를, 세상의 모든 존재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못생김 2015.05.05 22:00  
본문 읽고 난 후에 댓글을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결론은 많은 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그리고 필리핀님과 sarnia님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글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Robbine 2015.05.06 13:41  
필리핀님, 싸르니아님 두 분 의견에 공감해요.
제가 의도한 '안다'는 지식이 아닌 인식을 의미한거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필리핀님이 말씀하신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잘 판단하시는 분들, 싸르니아님이 말씀하신 본능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와도 같은 뜻이 된다고 생각해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조금 봤는데 거기서도 그러더라구요. 정답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그건 타고나는거라서 순간적으로 바로 답은 정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게시판에서 이야기 한거지만 다시 언급할게요.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마다 철학적 단계가 있대요. 이건 고등학교때 애들이 다들 하찮게 생각하는 '기타' 과목도 아닌 '등등'과목때 배운건데, 사회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을 때의 이유에 대한 거에요. 친구를 괴롭히면 안된다라는 주제에 대해 그렇게 하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혼나니까 라고 대답하는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도덕심인거죠. 누가 제제하지 않는다면 그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친구가 싫어하니까 라고 대답하면 그래도 좀 더 성숙한 도덕심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도 대상이 친구가 아니게 되면 괴롭힐 수도 있죠.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 하면 안된다 하는 수준이면 일반적 어른들 보다도 좀 더 높은 수준이래요. 사실 이게 최고 수준인거죠.
실제 선생님이 주신 예문은 이거였어요. '컨닝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친구들의 대답은 걸리면 혼나니까,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하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제 대답은 '공정하지 못하니까' 였어요. 거기에 대해 해석해줄 때 선생님이 정말로 너 그렇게 썼냐고 하시더라구요. 다섯 가지 정도의 단계가 있었는데 저렇게 대답하면 공자나 소크라테스 수준이라고 하셨거든요. (하지만 그걸 인정하긴 싫으신 눈치였죠.) 도올 선생의 중용 강의 보니까 "신독"이라고 하는게 나오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밤에 비치는 달빛에도 부끄럽지 않고, 밤에 내가 덮고 자는 이불에도 부끄럽지 않은 상태가 신독의 경지래요. 도올 선생의 비유를 빌리자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나쁜 짓 하지말고 착하게 살아! 이런건 좀 유치한 수준인거죠. 누가 안봐도 잘하는게 어려운거니까요.

주절주절해졌는데, 암꺼나 게시판의 여러 차례에 걸친 논쟁을 보니 느껴지더라구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각자에게 작용하는 것들이. 이런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나쁜 사람이 아닌 내가 하니까 나쁜건 아니다'하는 의식이 깔린 판단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그럼 당신이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증명할거냐 라고 하는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그냥 싸우자 되는거니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도덕적 판단 기준이 어떤지 좀 더 냉정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코난 2015.05.06 13:44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것만 보는거랍니다.
이 세상 사람 누구도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나와 다름을 잘못됐다고 판단하지 않는 생각이 중요한거죠
Robbine 2015.05.06 13:47  
그래서 노력이란걸 해야 하는거랍니다. 평생
틀림을 다름으로 우기고 존중을 바라는 태도도 곤란하고요.
지장보살 2015.05.07 14:42  
같은 한국인으로서 이런말 하긴 싫지만
전 솔직히 한국사람들의 이기심과 온정주의 때문이라고 봅니다

틀리고 그른것을 몰라서 그런게 아닙니다
정말 나이드신 분들 잘 몰라서 그런분들 극히 일부분이고

지지난 대선때도 BBK가 이명박이 저지른 일이란거 다 알고도 뽑지 않았습니까?
그때 알면서 왜 그러냐고 한국의 지인들에게 물어 봤지요

그랬더니 아파트값 올라가길 바래서 그랬다더군요
건축계 종사자들은 또 나름 이명박이 돼야 먹고 살게 될거라 그랬다고 그러구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신의 이익에 맞게 투표한거지요
그게 본인들 발등찍는 결과가 될거라는걸 판단 못해서 탈이지만 말입니다

지난 대선때 노인들은 매달 20만원 받을거라 찍은거구요
배신 때릴 줄 알았겠습니까?

비리에 둔감한것도
살면서 한두번은 자신들도 사소한 비리라도 비리를 저질러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정도는 봐줘라 내지는 능력만 있으면 그정도는..이란
온정 주의가 되는 겁니다

그 능력이 국민의 혈세를 꿀꺽 한다는 걸 모르고 말입니다

외국 나가도 한국인들은 잘 못 뭉칩니다
중국인들은 똘똘 잘 뭉치고 서로 돕고 사는데
한국인들은 서로 못잡아 먹어서 탈이지요

같이 먹고 살자고 도와주면
되려 도와준 사람의 모든 걸 뺏으려 들지요
아니면 도와주는 척  등쳐 먹거나
결국 뭉치지 못해서 같이 망하는거 여러번 봤네요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기심의 문제지요

나만 잘돼면 된다라는
잘 돼면 그나마 나은데
같이 망하는 길이란걸 몰라요

지금의 한국은 마치 풍전 등화와도 같습니다
구한말을 연상 시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식은 커녕
마냥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반대 세력은 빨갱이라 몰아 부칩니다

이대로 간다면 북은 중국에
한국은 일본에 먹힐겁니다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들 하겠지만
작금의 정세를 보면 가능성 충분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어디가서 떵떵거리고 잘 살겠지요
그들을 택한 국민들과 반대한 국민들은
같이 비참해지지만 말입니다
Robbine 2015.05.07 17:44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파트값 부양 때문에 경제가 더 망가지고 있죠.
그걸 부양하기 위해 무슨 피해를 보고 있는지 모른채 말이지요.
여기서 지식과 인식의 기준이 모호해질것 같은데,
그 분들 아마도 아파트값 부양에 따른 도미노 피해가 뭔지 잘 모르거나 그 피해를 능력있는 나는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멍청함 때문이겠지요.
어느 쪽이든 이득보는 사람은 다른데 있는데 그걸 모르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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