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 열광하면 몽땅 바보됨
먼 길 떠나기 전이라 무거운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말은 안하고 샆었다. 근데 대민방에서 1 년 반 전 끝난 줄 알았던 새삼스런 리더 영웅담, 일명 박정희 타령이 그 해묵은 패거리 컨셉에서 한발짝도 진전하지 못한 채 또 나오고 있으므로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어졌다.
2013 년 가을 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 박정희 동영상이 잘못 만든 실패작"이라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공로가 미국에 있다고 시사한 민문연 동영상은, 그 압축성장을 주도한 박정희가 위대한 지도자라는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한심한 리더 영웅담식 논리전개라고 생각했었다.
역사논쟁의 본질은 그 시대 경제성장의 최대공로자가 누구였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따위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면 1 차 대전패전으로 총체적 붕괴위기에 몰린 독일을 구한 영웅은 당연히 아돌프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고, 그들은 아직까지 독일 국민들의 은밀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독일과 같은 후발선진자본주의 주자인 일본은 어떨까? 19 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조선과 도낄개낄이었던 일본을 압축고도성장으로 불과 수 십 년만에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던 영웅들은 메이지유신 주도세력들이었다.
그들 중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같은 자들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원수같은 사람들이지만, 박정희씨는 “ (이토 히로부미를 제외한)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처럼 ‘걸출한’인물이 박정희 씨의 존경인사명단에서 제외된 이유는 그를 저격 사살한 조선청년이 민족의 영웅으로 하도 유명해 진 바람에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였을것이다.
여기 모이신 박정희 찬양론자들 중 혹시라도 싸르니아가 민문연의 동영상처럼 압축성장과 유신정권의 관계를 부정하는 ‘묻지마 반박 패거리’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실까봐 이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유신독재가 없었으면 (현재와 같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이 가능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금으로부터 1 년 반 전 분명히 이 자리에서 답변을 한 바 있다.
싸르니아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불가능했을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유신독재의 본질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 그렇게 똥밟은 이야기식으로 어렵게 말하지 말고, 유신독재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면, 강압적인 자본동원과 차출, 특혜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자본집중을 이루어내기 위한 폭력기구로서의 국가독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유신독재란 한 나라의 운명을 승부로 건, 위험하기 짝이없었던 대도박에 대규모 판돈을 쓸어모으기 위한 폭력적인 갈취조직이었던 셈이다. 1972 년부터 1979 년 까지의 한국 자본주의를 관료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유신독재의 경제관료조직이 은행을 지배하고 자본에 대해서 역시 자신들의 기획과 의도를 강압적으로 관철시켜나갔기 때문이었다.
당신들 말이 맞다. 유신독재의 강제적이고도 폭력적인 자본배분으로 제철 조선 자동차 반도체-전자 석유-중화학으로 이어지는 기간산업구조가 성공적으로 형성됐다.
그래서 어쩌라구? 그 시대로 돌아기자구?
모든 세상사에 선이면 선 악이면 악, 한 면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를 각색하려고만 시도한다.
한쪽은 박정희를 가리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며 그 시대의 가치를 함께 찬양하고 있고,
그 반대쪽은 압축성장이 미국의 조언에 의한 것이라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주장을 하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는 거다.
어쩌면 좋을까?
21 세기 북미와 유럽의 선진자본주의가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그 물질적 배경에는 수 세기에 걸친 참혹하고 잔혹한 식민지 약탈사가 자리잡고 있다.
선후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그 본원적 자본축적을 위한 수탈 대상을 외부 식민지로 삼았었다. 20 세기 중반에 들어와 메이지 일본의 압축성장모델을 베낀 유신정권은 국내의 저곡가-저임금을 통한 국가내부의 광범위한 약탈구조를 통해 자본축적을 성공시켰다.
과거의 역사는 선과 악만 칼로 자르듯이 구분선을 지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여러가지 아이러니와 딜레마들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민거리와 토론거리가 생긴다고 본다,,, 고 그때도 말했었다. 이거 참 중요한 대목같다. 패거리를 나누어 싸움박질에 돌입하기 전에, 좀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내부식민지든 와부식민지든 약탈과 전쟁이 물질적 풍요를 구축하는데 기여를 한 것을 전면부정할 수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태생적 출신성분이 나쁜 서구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가 지금은 거꾸로 보편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안정화시키는데 또 중요한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찬양론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적 조건 아래서 일정한 물질적 성과를 가져다 준 나쁜 가치들, 즉 독재, 노동착취,무한경쟁, 식민지 약탈 같은 것들을 오늘에도 적용해야 할 선한 가치로 둔갑시키는 문명국가의 국민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가치들을 숭상하고 그것에 순응하라고 국민들에게 강요했던 그 시대의 전범들을 가리켜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분들이니 존경받아 마땅한 위대한 지도자라고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선진국 국민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네오나치나 일본의 극우파, 한국의 일베는그냥 평균적으로 생각이 모자란, 내가 가끔 하는 쉬운 표현으로 해골이 약간 잘못 끼워진 반사회적 불평불만자들이 형성한 하류문화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은 ‘리더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를 영웅으로 찬양하는 것이나 네오나치가 히틀러를 게르만민족의 영웅으로 찬양하는 것이나 그 심리적 본질은 유사하다. 역사가 함유하고 있는 다양하고도 아이러니한 면을 관조할 줄 모르고 어렵던 시기에 무언가를 가져다 준듯한 리더에만 주목하고 열광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
박정희가 훌룽한 리더였다는 이야기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는,,,,,, 그냥 부인복은 조금 있었는데 자식복은 지지리도 없었던 (특히 둘째 딸과 막내아들),, 술과 여자와 검도와 총기류를 좋아했고 보편적 민주주의를 싫어했던, 독특한 성격을 가진 대한민국 군인과 체육관 대통령 정도로 기억에 남겨 놓으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