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의 곡절
지금으로부터 9 년 전,,
일본 극우 시사정론지 <정론>에 실린 한승조의 칼럼이 공개됐을 때 한국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2005 년 3 월의 일이다. 한승조는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고려대 명예교수이면서 당시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맏고 있던 자다.
그가 <정론>에 기고했던 칼럼의 제목은 좀 길고 복잡하다.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이 그 제목이고 ‘한일병합을 재평가하자’ 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 긴 제목의 칼럼 골자는 그때까지 생경하기 짝이 없었던 식민지배 찬양론이었다,
어떤 집단이든 극심한 수세에 몰려 있을때 격한 반동이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한국의 친미사대주의집단이 그런 수세에 몰렸었다. 2004 년 4 월, 탄핵역풍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反수구연대가 형성되어 친미사대주의집단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 중 그들의 심기를 가장 자극적으로 건드린 사건은 아마도 친일인명사전 편찬이었읋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당시 17 대 총선에서 제 2 당으로 전락한 차떼기당 (공식문서에서는 한나라당이라고 표기) 의 대표최고위원이었는데, 그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한 자세한 소개 역시 그 책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친미사대주의집단은 격심한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그들 중 비교적 참을성이 적은 한승조라는 자가 가장 먼저 발작을 일으켰다. 한 씨의 최초 발작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일본 식민지배’ 에 열광하는 미친놈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영향력있는 미친놈들은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나타났다. 위기는 절망을 낳고 절망은 집단적 증오로 돌변하더니 변태적인 이론으로 승화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가증스러운 극우이념집단이 탄생했다.
한국판 ‘holocaust denial’ 집단의 등장을 알리는 요란한 팡파르는 이렇게 전국으로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9 년 후,,
한국판 ‘holocaust denial’ 의 핵심 이데올로그 중 한 명이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지명되는 사태가 발발했다.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 놓은듯이 시끄러워졌다.
김기춘이 그 실무총책을 담당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권력집단이,,, 관료, 교수, 정치인이 아닌 이데올로그를 총리로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일부 언론이 추측하고 있는 것처럼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일까?
아마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문창극은 관료경험도 정치경험도 전무한 사람이다. 그는 칼럼니스트다.
칼럼니스트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프로파겐다 전문가다. 저널리스트와 프로파겐다 전문가를 혼동하면 안된다. 저널리스트란 기본적으로 사실을 발굴하고 그 사실을 토대로 사건의 본질과 진실을 추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지만, 프로파겐다 전문가들은 진영의 최전선에서 사상전쟁을 지도하는 무자비한 전사들이다. 그들이 사명과 임무를 수행하는 순서는 저널리스트의 그것과 정반대다. '진실'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진실에 봉사할 reason 을 발굴하거나 창조해 나간다. 문창극은 바로 그런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프로파겐다 전문가를 행정부 사령탑에 앉히려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친미사대주의집단에 반기를 들고 있는 국민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이념전쟁을 벌이겠다는 수작이다. 수세에 몰린 상황을 폭력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폭력을 행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반드시 동반해야 하는 것은 강력한 reasoning 이다.
친미사대주의집단은 문창극을 결사보위하기 위해 일전불사할 각오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별로 사이도 좋지 않던 동료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그를 위해 변호하는 모습이 비장하고도 필사적이다.
조선침략을 위해 파견된 국제간첩 혼마 규스케(本間九介) 가 수집한 조선인의 비참한 생활상 목록이 그들의 칼럼과 강연에 등장했다. 김학준의 ‘1 백 년 전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 등의 두꺼운 보조자료들도 서고에서 꺼내졌다. ‘원래 열등민족이었던 조선인들을, 보다 선진화되고 모든 면에서 organize 된 일본 식민통치기구가 어떻게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개조하고 문명인으로 가르쳤는가’ 를 선전하는데 써 먹기 위해서다.
조갑제 닷컴은 “신의 뜻이 아니었어도 조선은 패망했을 것이다” 라는 선언을 했다. 어제 올라온 정규재TV 에서 정규재는 KBS 의 지력 운운하며 그가 당연히 할 말을 했다는 주장을 한다. 독일 개신교 선교사 Karl Gutzlaff 를 인용하며 조선사람들은 불결하며 빈곤하고 끔찍한 환경에서 게으르게 연명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한 생활용품을 사용했다는 증언들을 쏟아놓았다.
김학준 저서 인용에서는 “조선 여성들이 정말 못나고 추하게 생겼다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지금도 압구정동에 성형외과 병원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는 등등의 악담과 조롱과 저주를 인용을 핑계로 마구 퍼부어댔다.
일본 극우들이 이런 글들과 영상들을 목격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창극 본인은 한국국민들을 향해 네까짓것들이 뭘 안다고 감히 나를 비판하려고 하느냐는 식이다.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 따위는 오합지졸의 아우성 정도로 여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오만함과 뻔뻔함을 가지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