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에도 "전태일"이가 있다면, 전태일 50주기를 추모하며....
타이에도 "전태일"이가 있다면, 전태일 11월 13일 50주기를 추모하며...
전태일의 어록과 기록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위의 글을 쓴 지 3개월 후인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과 함께 자신의 몸을 스스로 태웠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가 거듭 외친 말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1일 14시간, 1주일에 98시간 이상 노동하는 현실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전태일은 어머니가 빚내어 마련한 돈으로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사 틈만 나면 읽었다. 가난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에게 법학의 개념과 용어가 어려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1일 14시간, 1주일에 98시간 이상 노동하는 현실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전태일은 어머니가 빚내어 마련한 돈으로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사 틈만 나면 읽었다. 가난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에게 법학의 개념과 용어가 어려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나는 전태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내가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가까이 있었던 대형서점 한쪽의 코너에서 “전태일 전기”를 읽게 되었다.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그가 나보다 앞세대이면서도 살신성인의 생각을 품고 있었고, 자기 몸을 불살라 신념과 진실을 알리려 했다는 점에서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전태일의 일기장 곳곳에 타인을 ‘나의 전체 중 일부’ 혹은 ‘나의 또 다른 나’라고 했다. 나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울컥했다. 타인을 ‘나의 전체 중 일부’라고 인식하는 그의 생각이 몹시 놀라웠다. 후에 알게 된 화엄의 세계와 같은 것으로 전태일은 생각했다.
요즘 세상에서는 모두 “내 밥에 콩만 빼먹지 않으면 국방부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든 말든, 군대식의 무관심이 지고한 삶의 표석인 양 숭상하지만, 이런 무리는 억만년이 흘러도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변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태국의 억압 현실에도 태국의 “전태일”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난다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오늘은 문득 그 옛날 대형서점 서가에서 마주한 전태일 전기를 읽으며 울컥했던 감정이 생각나서 한 자 끌 적혀 본다.
전태일은 내 마음의 진정한 예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