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보다 심오했던 만화영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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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보다 심오했던 만화영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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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지 1 년이 넘은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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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년 대
초반. 여러 가지로 무척 바빴던 그 시절에도 내가 시간 나면 꼭 끝까지 재미있게 보곤 하던 만화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은하철도 999’

 

기억하시나요? 내 또래라면 제목 이외에는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 안 날지도 모릅니다. 우리 세대 만화영화는 우주소년 아텀, 요괴인간, 황금박쥐, 그리고 타이거 마스크 등 이였지요. 은하철도999 는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방영된 작품이니까요.

 

긴 금발에 검은 모자를 쓰고 초상집 문상객처럼 검은 복장을 하고 늘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30 대 여인 메텔. 엄마를 잃은10 대 소년 철이. 이 두 주인공이 안드로메다 행 특급열차를 타고 우주 여행을 하면서 겪는 온갖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로 엮어나가는데 그 메시지의 심오함이 장난이 아니었죠.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꼭 다시 보고 싶은 만화영화라 비록 국가간에 DVD CD Code가 다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음에 한국 나갈 때 그 전질을 구입해 오려고 합니다.

 

결국 이 만화영화의 이야기도 세월이 흐르고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어떻게 한 소년이 실존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가가 그 내면에 흐르는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 89 세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2006 년 여름 Newsweek와의 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었지요.

 

"All my life I've been taught how to die, but no one ever taught me how to grow old,"

나는 이 말을 이 게시판에 소개하면서 이렇게 의역을 했었는데요.

 

목숨을 걸 신조는 알았지만 경륜에서 터득되는 관용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것은 인터뷰 기자의 다음과 같은 첨언(You can see more from a mountain, and from the perspective of years)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이것보다는 더 많이 그리고 더 넓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꼭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이 깊어 질수록, 그리고 경험과 사고의 폭이 넓어질수록 기존의 기독교 교의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가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라는 인물이 보여 준 삶의 내용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먼 사도바울의 교의적 테제들이 왜 기독교 경전(신약=잘못된 호칭)에 대거 편입돼 있는지 아직도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인물을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도바울의 신념을 계승한 사상의 핵심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기독교의 윤리관을 둘러 싼 논란과 그 개념들의 부적합성, 그리고 다른 종교와의 마찰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수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개념은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의 이해에서는 영생과 직결돼 있는데, 영생이란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체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고, 개별 존재의 수명연장이나 영원한 삶 같은 것을 만들어 내려는 욕망에 비견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보수 기독교의 가르침은 영생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 낸 욕망이나 무상한 꿈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만화영화 은하철도999’의 메시지에도 한참 뒤 떨어지는 종교사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사물의 유한성을 부정하고 존재의 연장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가진 지극히 형이하학적인 사고의 틀에 의해 멋대로 디자인된 신이라는 존재는 결코 그런 인간들의 사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 자명하지 않을까요? 유대경전과 기독교 경전의 시간적 흐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진화하는 하나님이란 고작 시대마다의 인간 경험과 사고의 한계범주 안으로 모조리 상호 호환해 버리는 존재에 불과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놀란 적도 있었으니까요.  

 

보수 기독교의 천박한 사상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가는 그 많은 신자들과 교역자들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요? 아마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안드로메다 행 특급열차를 타고 긴긴 여행을 하다가 그 종점의 언저리에서 그 욕망의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철이의 심정일까요?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면 그래 철아, 이제 너는 나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하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 주는 여인 메텔의 모습을 연상하면 될까요?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시간의 흐름 속을 여행하는 여인이 이미 여행 말미에 깨달음을 얻고 어른이 되어 버린 철이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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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아, 월산명박 장로나 선희, 그리고 홍도, 국도 등 도자돌림 인간들이 사라져야 한국 기독교에 희망이 있단다"

 

 

제가 어떤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괘념치 마시고 배경음악을 정지한 뒤 아래 가사를 보고 신나는 템포의 이 만화영화 한국판 주제가를 불러 보세요. 한결 마음이 편안해 질지도 모르니까요. 

 

기차가 어둠을 해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엔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

 

 

기차가 은하술 건너면 밝은 빛의 바다로

끝없는 레일 위엔 햇빛이 부서지네

꿈을 쫓는 방랑자의 가슴에선 찬바람일고

엄마 잃은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앗싸~

 

 


1 Comments
나마스테지 2010.03.25 03:21  
확실히, 성경보다 심오합니다.ㅎㅎ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함께 기억에 남은 만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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