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혁이 님께 화해를 청합니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 자꾸 나타나 말을 거는 것처럼 끔찍하고 짜증나는 일도 없는데, 또 말을 걸어 미안합니다. 저하고는 더 이상 말을 안 하겠다고 하셔서 작별인사 하러 들어왔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싸웠다고 토라져서 다른 방에서도 인사를 안하고 지낸다면 그처럼 속 좁고 쪼잔한 일이 없을 겁니다. 다른 방에서 만나면 일부러라도 서로 웃으면서 아는 척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어떤 인간관계든, 자기가 싫든 좋든 마무리를 나이스하게 하는 건 참 중요한 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짓 중 하나가 남의 마음에 짐을 얹어두고 떠나는 일일 것 입니다.
저는 착한혁이 님이 참 순수하고 착한 분이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호감이 가서 닉네임을 거론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습니다.
‘유언비어’ ‘자유와 방종’ ‘각자 맡은 바 일에 충실’ 등등 그 동안 잊혀져 왔던 고색창연한 우리 말들을 반추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구요. 님의 글들을 읽으며 제가 어릴 적 접했던 중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의 명조체 활자들이 생각나 혼자 살포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자칫 조롱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조롱이 아니라 진짜 그런 생각이 떠 올랐던 사실을 고백하는 것임을 제 닉네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상이든 양 극단은 ‘분노’라는 감정과 통합니다. 분노에 찬 목소리는 논리적인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상이든 뭐든 어떤 신념체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내면에서 먼저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설득을 이루지 않고서는 신념체계로 받아들여지거나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사상적 경향을 바탕으로 예단하지 않고 어떤 사건의 진실을 올바로 파악하려면 사실과 해석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스스로 가져야 하는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분야별 전문가의 해석을 존중하는 이유는 그들이 1 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보들을 맥락 속에서 해석해 내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명을 수행하는 학자나 1 차 자료를 수집하고 보도하는 기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는 가치중립과 정직일 것입니다.
착한혁이 님도 아시겠지만 적어도 한반도 현대사의 사건들을 다룸에 있어서 학자와 기자들은 가치중립을 지킬 수도 없었고 정직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한 인간을 신으로 둔갑시켜버린 북한이나, 엄연한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들로 격하시켜버린 남한이나 천박한 거짓 역사를 써 온 것은 속된 말로 피장파장 입니다.
오죽하면 6 년 8 개월 동안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자가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참모습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고 회고록에다 고백을 해 놓았겠습니까?
어떤 집단에 대해 무한 증오를 가지고 있거나 무조건 충성심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한반도 비극의 역사가 낳은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그런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보니 태사랑 게시판에서 조차 이렇게 사태가 심각해 진 것 이구요.
참, 착한혁이 님은 통킹만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1964 년 8 월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 해군의 어뢰공격을 받았다는 사건 말 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대규모 정규군 병력을 파병하게 되고, 이후 1975 년 4 월 30 일 사이공 (현 호치민) 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베트남이 통일되기까지 수 백만 명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배트남 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날조한 사건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지고 1995 년 사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까지 그 사건이 북베트남을 폭격하고 대규모 정규군을 전선에 투입시키기 위한 조작이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월남전의 윤리적 명분 자체가 사망선고를 받게 됩니다.
저는 지금 천안함 사건을 통킹만 사건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안함 사건은 기본적으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중대사고일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착한혁이 님 말마따나) 이 사건의 흐름을 좀 더 폭넓고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마침 오늘 어느 신문에 언급된 이 사건을 인용하는 것 입니다.
화해를 청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 더 길어지는 거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이만 줄이겠습니다.
무례한 표현과 천박한 비아냥이 좀 있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논쟁을 하다 보면 그런 표현들도 경우에 따라 하나의 소통도구로 기능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어떤 주제로든 토론할 때 그런 표현 전혀 안 할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습니다. 그건 착한혁이 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단 한 라운드가 끝났으면 서로에게 남긴 지저분한 자국들은 닦아주고 헤어지는 것도 좋은 일일 것 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