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대한 단상
베트남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6년 4월에 방영되었던 MBC특집드라마 '사이공 억류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무생씨가 전 주월대사관 경제공사였던 이대용 장군역을 했었지요. 86년이면 월남패망(통일이 맞겠지만, 당시에는 다 그렇게 불렀습니다) 11주년이었기 때문에, 월남은 쉽게 건들일 수 없는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쉬쉬 하고 있었다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푸켓에서는 쓰나미가 났습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양반이 '이번 쓰나미는 미개한 나라에서 났지요?'라는 소릴 하더군요. 미개한 나라라니, 세상에나 지금이 무슨 제국주의 개발 시대인지. 속으로 불이 일어났지만, 그냥 조용히 이야기 했지요. '아저씨 거기도 다 사람사는 곳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 택시기사님과 말싸움하면 승산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입닫고 가는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소심남이지요.
그런데, 어느분 글에서도 태국 간다면, 그 미개하고 배울거 없는 나라를 왜 가니? 라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왜 우리나라는 동남아를 미개하고, 게으르고 배울거 없는 나라로 인식할까요?
아마 그 단초는 월남에서 찾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1965년 최초 파병이 일어날 즈음, 정부는 정책적으로 우리나라의 월남 파병을 '국위선양'의 일환으로 선전합니다. 즉 못살고 가난하고 공산당의 침략을 받는 월남을 우리나라가 도와준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월남의 1인당 GNP는 100달러가 되지 못하던 우리나라 보다 높았고, 무엇보다 쌀을 자급했기 때문에, 수출까지도, 우리보다는 먹고 사는 수준이 높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최근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월남파병이 생각보다 장기화 되면서 우리의 파병 당위성을 제고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를 낮추는 형태의 보도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월남의 이미지는 동남아로 전이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남아시아와 우리나라는 별로 접촉할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고려시대에 월남의 리(李) 왕조의 후손이 와서 화산이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직접적인 교류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월남도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했기 떄문에, 해가 바뀌는 시절에 갔던 세시사가 중국 수도에서 월남사신과 필담을 나눴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와 대한민국이 최초로 면대면 접촉을 하게 된 것은, 불행히도 식민지 시대입니다. 아시다시피 일제는 군속과 군인으로 조선인을 동원했고, 이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의 일원으로 동남아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현지인들과 접촉을 했지만,일제의 인식은 동남아 해방이었기 떄문에, 동남아 인들의 고유한 문화나 역사는 깡그리 무시되고 그냥 개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사서가 있듯이 월남에도 대월사기전서라는 거대한 역사책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습니다. 중국의 침략을 물리친 쯩작 쯩니 자매로부터 박당강 전투에서 기묘한 전술로 몽골군을 물리친 쩐흥다오 장군까지, 그들은 독자적인 문화생활을 영유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겟습니다만, 용산 전쟁기념관의 월남참전관에는 월남의 역사가 1975년에서 멈춰있다고 합니다. '월남패망'이라는 글자로 한월관계는 끝난것 처럼 묘사했었습니다. 지금의 베트남인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느 베트남인 소녀가 그 판넬을 보고, 도데체 자신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한 인터뷰를 EBS에서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태국의 경제, 베트남 경제가 성장해서 1인당 GNP가 3만불을 넘는다 해도, 우리나라는 업신여김을 멈추지 않을거 같습니다. 그냥 졸부 취급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단군의 자손이라는 결속감도 좋지만, 아시아 속의 세계속의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