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의 명언으로부터 어느 미국인의 <들쥐 발언>까지
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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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발력과 센스만점 대사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오는 명 대사가 있다. <과거의 상류계급은 지배하고 군림했지만 지금은 지배하고 군림할 수는 없으니 최소한 차별 받기라도 원한다>는 김주원의 말이 그것이다. 여기서 ‘차별 받기 원한다’는 의미는 대다수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특권적 차별인 셈이다.
상류계급이란 말은 사실 지극히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주관적인 자뻑 개념이기도 해서 서로 간에 가진 것 배운 것 아는 것의 양과 질을 기준으로 제멋대로 상대방을 수준 떨어지는 천민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는 상류계급이란 개념을 단순화하여 그냥 권력과 재력의 상층부에 속해있는 ‘대한민국 1 %’ 라고 해 두자.
상류계급 스스로 차별 받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법. 계급간 segregation 이 이루어 지는 동시에 분리된 집단들 사이에는 격렬한 계급적 갈등과 적대관계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자 당위라는 것 또한 인정하고 각오해야 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이 발생하면 그것이 어떤 종류이던 간에 그 불균형의 세부적인 사항들의 정당성에 대한 재검증 요구를 동시에 수반하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논쟁과 마찰이 생기는 것이고 그 마찰과 견제가 논리적으로 수용되지 않을 때 사회적 긴장과 폭력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경쟁과 우승열패 원리에 무조건 굴복하지 않고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재검증과 재분배 요구를 수행하는 존재는 내가 알고 있기로 인간밖에 없다. 이런 특징을 가리켜 ‘인간의 윤리적 재능’이라고 부른다. 인간사회란 경쟁본능과 윤리적 재능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견제와 타협을 바탕으로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
철학이 빈곤한 사람들은 경쟁과 우승열패의 원리가 사회를 절대지배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이게 현실이자 당위라는 것이다. 좀 더 많이 배운 자와 많이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들이 이해하는 인간의 윤리적 재능이란 승리한 자와 빼앗은 자의 선심과 자선 뿐이다. 이게 그들이 이해하는 복지 개념이다.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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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런 단어를 선호한다. 지도자, 엘리트, 낙오자, 패배자.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권력 재력 학력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그 획득여부를 판정하여 엘리트와 천민집단을 구분한다. 이런 천박한 철학은 대한민국 상위 1 % 와 그 1 % 에 대한 쓸데없는 열등감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상대적 차별의식으로 바꿔치기 하기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상위 20 % 마당쇠 집단에서 횡행한다.
딴 건 다 좋은데 지도자? 지도자라니......<?xml
지도자라는 말은 함부로 남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boss 라는 말은 누구를 향해서도 할 수 있지만 어느 제삼자를 가리켜 ‘a true leader’ 라고 호칭할 때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 것과 흡사하다. 지도자 라는 호칭은 사회적 지위나 직책 따위를 기준으로 부르는 말이 아니다. 예수 선생이라든가 예수 선생의 형님 뻘 되는 부처 선생이 가리킨 길도 서로 헷갈려 지도를 놓고 싸움박질이 벌어지는 판에 누가 누구의 길을 가리켜 준다는 말은 건방지고도 경솔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단체명 중에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라는 명칭만큼 주접스러운 이름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가리켜 지도자라니...... 혹시 양아치들 아닌가?)
그러면 ‘낙오자’나 ‘패배자’란 말은 어떨까. 이건 철학이 빈곤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범죄’에 가까운 막말이다. 100 미터 달리기하다 넘어져서 탈락했다던가 권투시합을 하다가 그 게임에 패배한 것도 아니고, 어느 불특정 다수의 인생 전반을 놓고 자기가 정한 특이한 기준을 바탕으로 승리자니 패배자니 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한다는 것은 그 발언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하기에 앞서 상식을 벗어난 언어폭력이다.
지금은 대한민국도 많이 변해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과거에 대한민국 기성세대 중에는 의외로 이런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었고 그런 사람들이 권력과 언론 재계 학계 문화계 상층부에 모여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이곳에 올린 김여진 씨의 ‘전두환 관련’ 발언을 쓰면서 우연히 1980 년 10 월에 있었던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의 NYT 지 기자회견 발언을 참고문으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게시판에서는 위컴 기자회견문을 댓글로 인용한 적이 있다.
위컴의 ‘들쥐 발언’은 대한민국 1 % 의 멘탈리티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면서 발언의도와는 별도의 정치적 논쟁을 유발할 수 있을 만큼 그 표현이 자극적이지만 본문 주제와 직결되는 사건이므로 그 발언과 관련된 전두환과의 관계 일화를 여기서 다시 언급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마치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를 따를 것’ 이라고 한 위컴의 언급은 우리에게 모멸감을 안겨 준 외국인 고위 군관료의 적절치 않은 망언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따지고 보면 그의 발언은 한국 국민 일반을 모욕했다기 보다는 전두환의 집권과정에서 언론과 기업 등 당시 대한민국 여론 지배층 (leaders 가 아니라 rulers다.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자) 이 전두환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재집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인 어이없음을 감정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미국인에게는 자기가 잘 아는 전두환 같은 인물에게 저항하지 않고 충성을 다짐하는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꼬라지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sarnia 개인적으로는 위컴의 이 발언에 전두환에 대한 그의 사감도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있었다. 위컴은 전두환에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오해가 있었는데 1979 년 12 월 13 일 새벽 쿠데타 소식을 들은 그가 직접 한국 국방부 본부에 가려고 용산을 통과하다가 그 시간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 점령한 박희도 휘하의 제 1 공수특전여단 병력에 의해 피격 당한 적이 있었다.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 위컴은 시트밑으로 몸을 숨겨야 했고 그의 전용차 안테나가 부러지는 바람에 통신이 두절됐다. 그렇지 않아도 전두환을 하찮게 여기고 싫어했던 그는 그 사건 이후 전두환을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아마 leader lemming 취급을 했을 것이다. (참고로 위컴은 lemming 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났던지 기자회견에서는 field mice 라고 말했었다.)
역대 대통령 중 미국에게 가장 굴욕적인 대우를 당한 대통령이 바로 전두환이다. 외국의 일개 군 장성으로부터 들쥐 리더 취급을 당한 전두환이 미국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으며 대한민국의 국가위신을 망가뜨렸는지 그 일화 중 하나를 지난 번 김여진 씨 발언에 대한 포스팅 댓글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다시 소개한다.
전두환의 입장에서 굴욕의 대표적인 사건은 1987 년 6 월 19 일에 일어났다. 그 날 전두환은 레이건의 친서를 가지고 온 주한미국대사 릴리를 만났는데 릴리가 돌아가고 난 직후 곧바로 청와대 집무실로 약속도 없이 찾아 온 존 스타인 CIA 서울 지부장과 리차드 킴이라는 한국계 CIA 관리에 의해 거의 연금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가지고 온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한 것이다. 기록에는 독대했다고만 나와 있지만 이날 그는 혼자 온 게 아니라 한국계 부지부장과 함께 와서 무려 세 시간 이상 집무실에 머물렀다. 전두환은 그들에게 분명히 ‘나중에 서류를 읽어 볼 터이니 지금은 나가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대통령 집무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Sir! You must read that paper right now” 라고 무례한 표현으로 윽박지르며 전두환을 몰아부쳤다.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집무실에서 외국의 이사관급 정도되는 하급관리들에 의해 일국의 대통령이 연금당하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은 안현태였는데 그는 고성이 새어 나오는 집무실 밖에서 안절부절 서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문서의 내용은 직선제 개헌 등 당시 국민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 위수령 발동에 대비해 서울 시내를 향해 사전 출동하고 있던 충정부대 제 26 사단 선발대가 미 제 2 사단 소속 기갑부대에 의해 무력으로 진군이 차단당했다. 이날 충정부대가 사전 출동한 이유는 6 월 18 일 부산시위를 보고 겁에 질린 전두환이 즉시 육군참모총장 박희도와 부산 지역을 담당하는 제 2 군 사령관 이종구를 불러 위수령을 선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CIA와 주한미군사령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전두환은 서울 부산 등 일부 도시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부대를 출동시켰을 것이고 제 2 의 광주의 비극이 서울과 부산에서 재연됐을 것이지만, 이런 것과는 별도로 '1987 년 6 월 19 일 창와대 비사'는 당시 미국이 대한민국을 어떤 취급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sarnia 는 오래 전 신동아에서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이종률이 6.29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이런 저런 소리를 한 것을 보고 실소를 한 적이 있다. 일부에서는 6.29 선언이 전두환이 고심을 해서 노태우에게 권유한 것인 양 잘못 알려져 있는데 이는 나중에 전두환의 지시를 받은 이종률과 통치사료비서관인지 뭔지 하는 요상한 이름의 직함을 가진 김성익이라는 두 작자가 그럴 듯하게 이것 저것 암시하며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sarnia 생각에는 미국이 전두환을 설득하면서 3자 필승론을 (DJ 와 YS 를 분열시키면 노태우가 이긴다)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아직 그런 증언은 나오지 않았으니 확언할 수는 없겠다.
어쨌든……
1980 년 당시 전두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을까?
지식인과 중산층이 단지 신군부가 휘두르는 총칼이 무서워 침묵하고 있었을까?
협박과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협조한 것일까?
정말 그냥 무서워서?
여기에 대한 sarnia 의 대답은 단연코 No 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자발적으로 신군부에게 협조했고 적극적으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전두환을 승자로 대접했고 승자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우승열패의 당연한 자연법칙이라는 그들만의 절름발이 철학을 변명 겸 자기 위안 겸 구실 삼아 새 시대 새 지도자를 열렬히 모시기로 한 것이다.
인간의 ‘윤리적 재능’이 철저하게 삭제된 물질만능 권력만능 우승열패 승자독식 기준의 절름발이 철학이 향후 무려 8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들쥐 인생’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 아닐까?
2011. 06.20 (MST) <?xml<?xml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