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야간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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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야간비행

sarnia 4 552

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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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년 8 월 30 일 자정 무렵, 뉴욕 JFK 국제공항 15 번 게이트 앞에는 약 2 백 여 명의 승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탑승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출발 예정시간인 23 시 50 분을 넘겼는데도 아무런 안내방송이 없기 때문이었다.

0 시 정각이 되어서야 감색 투피스 정장에 울긋불긋한 무늬의 스카프를 두른 대한항공 지상근무직원이 탑승 카운터에 나타났다. 30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가 카운터에 있던 20 대 중반의 남자직원에게 뭔가를 지시하자 남자직원은 무전기를 들고 비행기 안에서 대기 중인 객실 사무장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딩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날짜가 바뀐 8 월 31 일 새벽 0 시 25 분,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KE 007 기는 예정시간 보다 35 분 늦게 JFK 공항 15 번 게이트를 출발했다. 잠시 후, JFK 지상관제소의 이륙허가를 받은 이 비행기는 활주로를 이륙해 하늘로 날아 올랐다. 북서쪽으로 기수를 돌린 이 비행기는 ‘불야성의 바다’ 라고 할 만큼 무지막지하게 넓고도 휘황찬란한 뉴욕상공을 통과해 약 20 분 후 캐나다 영공으로 진입했다.

이 비행기는 보잉사에서 제작한 보잉747-230 B 기종이었다. 12 명의 일등석 승객과 24 명의 프리스티지 클래스 승객을 포함해 모두 246 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승객 중에는 이른바 deadheading crew 라고 불리는 대한항공 비번 귀환 승무원 6 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관례대로 기장은 일등석에, 부기장은 프리스티지 클래스에 객실 승무원은 이코노미 클래스에 각각 따로 앉아 있었다. 승무원은 기장, 부기장, 항법기관사 등 조종실 승무원 3 명과 객실 승무원 20 명을 포함해 모두 23 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VIP 석인 일등석 2B 석에는 40 대 후반의 중년 백인 사내가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로렌스 맥도널드였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 30 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과 함께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일기불순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조지아 주 아틀란타에서부터 비행기 연결이 연달아 꼬이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예정된 서울행 비행기를 놓치고, 대신 이 비행기에 혼자 탑승한 것이었다.  

탑승객 중에는 12 세 미만의 어린이들도 22 명이나 있었다. 탑승객들의 국적(여권 기준)은 한국이 105 명, 미국이 62 명, 일본이 28 명 대만이 23 명, 캐나다가 8 명 등이었고, 호주, 필리핀, 홍콩, 태국, 영국, 도미니칸 공화국, 인디아, 이란, 말레이시아, 스위든, 베트남 등 16 개국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뉴욕을 출발한 KE 007 편은 약 일곱 시간을 비행한 끝에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급유를 받은 비행기는 현지시각으로 새벽 4 시 정각에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출발해 ‘죽음의 야간비행’을 시작했다.

KE 007 기가 이륙한지 90 초 후 앵커리지 비행관제소 (ATC) 는 KE 007 기 기장 천영인에게 알래스카 서쪽해안에 위치한 지점인 베델까지 직진한 후 일본까지 이어지는 정상루트인 북태평양 횡단노선 (NOPAC)를 따라 가도록 지시했다. 이곳에서부터 동경 165 도 지점까지는 앵커리지 관제소가 KE 007을 통제하도록 되어있었고, 그 지점을 지나면 도쿄 관제소의 지시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비행기는 앵커리지 관제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베델까지 잘 날아가던 비행기는 알래스카 육지상공을 벗어나 북태평양에 진입하자마자 갑자기 북쪽으로 기수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비행기가 관제소 교체지점인 동경 165 도에 접근했을 때는 정상루트로부터 무려 300 km 나 북쪽 상공에서 날고 있었다.

보잉 747-200 과 보잉 747-300 기종의 조종실 안에는 모두 세 개의 INS (Inertial Navigation System) 입력장치가 있는데, 기장과 부기장 항법기관사가 각각 데이터를 재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보잉 747-400 기종 이후의 신기종은 항법기관사가 타지 않으므로 기장과 부기장 두 명이 각각 따로 교차 확인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데이터 입력 잘못으로 항로를 이탈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때로 연료절감을 위해 앵커리지 관제소로부터 지시 받은 NOPAC 보다 직선거리에 가까운 로미오-20 루트를 선택해서 날아가는 경우도 있으나 이 날 KE 007 기는 로미오-20 루트고 뭐고 모든 정상 비행루트를 벗어나 아예 소련 영공을 무려 2 시간 30 분 간이나 비행했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영공침범’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날짜변경선을 지난 KE 007 기는 현지시각 9 월 1 일 새벽 4 시 30 분경 소련영공에 들어섰다. 수 시간 전부터 KE 007 기의 항로이탈을 면밀하게 추적해오던 소련 극동군방위사령부에 마침내 비상이 걸렸다. 비상이 걸린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형 점보기가 핵잠수함기지와 대륙간 탄도미사일기지가 위치해 있는 캄차카반도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사령부 상황실을 정작 경악시킨 것은 이 비행기의 남쪽 상공에서 미국 전파첩보기 RC-135 가 같은 방향으로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날은 소련 극동군사령부에서 전략미사일 시험발사계획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기도 했다. 당시 소련군은 이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자국영공에 진입할 때부터 어떤 확신에 가까운 의혹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래스카 알류산 열도에 위치해 있는 미국군 전파기지로부터 보고를 받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NAADC)에서 이 비행기의 항로이탈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공 관제소를 통해 일체의 경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KE 007 기는 ICBM 기지를 포함한 전략적 군사보안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Restricted Airspace’ (비행절대불가지역)에 진입했고, 거의 동시에 Dolinsk-Sokol 공군기지에서 소련공군소속 수호이-15 전투기 세 대가 출격했다. 같은 시각, 극동군사령부 Smirnykh 군사기지에서는 미그-23 기 한 대가 활주로를 날아 올랐다.  

극동군사령부는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이 정체불명의 비행기를 일단 가까운 기지에 강제 착륙시키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전투기들 중 수호이-15 기 한 대가 KE 007 기 옆으로 약 300 m 거리까지 접근했다. 전투기 조종사는 정체불명의 비행기 조종사가 잘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착륙 신호를 의미하는 Blinking Spot Lights (경광등) 신호를 보냈다. 굉음을 내며 근거리까지 접근한 전투기가 보내는 엄청난 촉광의 경고 스팟 라이트는 조종사는 고사하고 잠들어 있던 승객들도 놀라서 깨어날 만큼 요란스러운 것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한항공의 조종사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전투기 조종사는 기지본부에 이런 사실을 보고했고 기지본부에서는 계속 영공을 침범한 비행기를 착륙시키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수호이-15 전투기 조종사는 이 비행기의 진행경로 앞에다 대고 조명탄 네 발을 발사했다. 그러자 이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반응이란 게 천만뜻밖이었다. 착륙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와 속도를 높여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공침범 비행기의 상식을 벗어난 반응에 몹시 황당해진 전투기 조종사가 다시 기지에 이런 사실을 보고하자 마침내 기지에서 격추명령이 떨어졌다. 사할린 Dolinsk-Sokol 공군기지 사령관 Anatoly Kornukov 는 무전으로 영공침범기가 계속 착륙 명령에 불응하고 비행할 경우 영공을 벗어나기 전에 격추할 것을 지시했다.

이 명령에 따라 전투기 조종사는 이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소련 영공을 벗어나기 딱 2 분 전, 전투기에 장착된 K-8 열추적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 KE 007 기를 향해 날아간 공대공 미사일은 이 비행기에 장착된 네 개의 엔진 중 하나에 정확하게 명중했고, 그로부터 약 12 분 후 이 비행기는 269 명의 생명과 함께 하늘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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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983 년에 일어난 <아웅산 사건> 쓰다 보니 같은 해 발생한 KE 007 기 격추사건이 생각나서 아주 객관적인 사실만을 나열하고 있는 아래 wiki 에만 근거해서 사건을 재구성해 본 것 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Korean_Air_Lines_Flight_007

KAL 기 사건 하면 보통 김현희 사건으로 알려진 KE 858 기 실종사건만을 떠 올리기 쉬운데, 1983 년 9 월 1 일 발생한 KE 007 기 격추사건이야말로 참으로 황당한 의혹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간의 첩보전쟁 와중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모든 분들의 영혼이 편하게 안식하기를 기원하며……



 

2011. 05. 28 <?xml16:30 (MST) <?xml<?xmlsarnia


 

4 Comments
히로76 2011.05.30 01:40  
잘 읽었습니다.. ~ ^^
sarnia 2011.05.30 04:56  
고맙습니다^^
로이드웨버 2011.05.30 11:07  
전 아직도 이사건의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왜 여객기가 어처구니없게도 소련영공에 들어간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수가 없습니다.
sarnia 2011.05.30 12:04  
이 사건은 858 기 사건보다 훨씬 의문점이 많은 사건입니다. 밝혀진 것도 별로 없구요. 미국이 사건 당시 자기들은 알지 못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주한미군사령부는 격추 당일인 9 월 1 일 오전 007기 항적도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한국군 대장) 을 통해 전두환 정권에게 극비리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미국은 007 기가 2 시간 30 분에 걸쳐 군사보안구역을 포함한 소련영공을 비행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홋카이도 미사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군 전자감청부대가 대한항공기를 격추시킨 전투기 조종사와 기지사령부간의 교신내용까지 모조리 녹음했다는 것 입니다. 나중에 미국 국무장관 슐츠가 '소련이 민항기임을 알면서도 격추시켰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고 큰소리를 친 것이 계기가되어 밝혀진 이 사실은 오히려 미국에 대한 의혹만 더 증폭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소련 전투기 조종사가 인근에서 비행하던 미국군 전파첩보기 RC 135 인 줄 알고 격추시켰다느니 하는 발표를 하기도 했지만 소련 극동군사령부는 이 두 비행기가 각각 다른 비행기이며 RC-135 는 영공 밖에서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야간이라하더라도 007기가 민항기인줄은 알았겠지만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첩보기는 어떤 종류의 비행기로건 위장할 수 있는 것이고. 소련군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 보다도 왜 이 비행기가 민감한 군사보안구역에 들어왔는지, 착륙명령에는 왜 불응한 것인지가 더 중요했을 겁니다.

암튼 소련은 민항기인 줄 알고도 요격했다고 치고, 그렇다면 미국은 007 이 반드시 요격당할 적국의 비행금지구역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제소를 통해 경고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무장관까지 나서서 자기들의 전자감청기술을 자랑한 것으로 보면 레이더 탐지기술 따위를 숨기기위해 아무 소리 안했다는 변명은 통할 것 같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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