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권 님, 정직하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대권 님이 좋아하는 민들레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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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님이 자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이가 없습니다. 귀하의 글을 접하게 된 계기는 작가 김완준 님의 소감글 때문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구경조차 가 본 적이 없는 귀하가 그 나라에 대해 주워들은 역사 이야기 말고 오늘의 아프간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탈레반이 아프간을 미제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자신있게 주장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귀하가, 제가 한국에서 몸담았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 천만뜻밖에도 한국의 진보진영 안에 귀하의 주장에 공감하는 분들이 꽤 계시는 것 같아서 그 궁금함에 대해 공개질문을 해 봅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0790143106/posts/4217896151580015/
(황대권 님의 페이스북 링크)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잘 모르기로는 저나 귀하나 그 수준이 그 수준일텐데, 잘 모르면 저 처럼 입을 딱 다물고 말을 아끼면 됩니다. 제가 카불함락 이틀 전인 지난 주 금요일 (13 일)부터 글 두 편을 올렸지만 언론이 보도한 기본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했을 뿐 님처럼 건방진 소리를 한 적은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사실은 오늘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프간에서 하루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단칼의 재단을 받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 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미국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했든 어쨌든 지난 20 년 간 이 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정치세력과 제도의 영향아래 가치의 변화를 겪었고 그때 태어났거나 아주 어렸던 30 세 이하 세대가 인구의 태반을 차지하는 세대교체가 일어난 시대에 탈레반의 재집권은 엄청난 참극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합리적 추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상상했던 것 이상의 비극적 사건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황대권님은 자기 글에서 “아무리 좋고 이상적인 것이라 해도 그 나라(지역) 민중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쓸데없는 간섭이 된다”고 했는데 황대권님의 이 말이야말로 현재의 아프간이라는 구체적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소리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침략전쟁의도와는 관계없이 20 년 전쟁과 체제변화는 이 나라 민중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았습니다.
바이든이 지난 16 일 대국민연설에서 결정적인 거짓말을 하나 했는데, nation-building이 미국의 전쟁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침략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회피하고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이 발언은 미국 역사상 가장 비겁한 거짓말 중 하나로 기록될 것 입니다.
미국은 당연히 nation-building을 했지요. 초반 몇 개월을 제외하면 친미정권 세우고 인프라 건설하고 교육시설 짓고 열심히 미국적 가치를 심으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녔는데 이게 nation-building 이 아니면 뭐가 nation-building 이라는 말 입니까. 바이든의 말대로 알카에다 색출제거만이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을 이미 달성한 2003 년에 철수했어야지요.
문제는 미국군 주둔과 친미정권이 지배하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아프간인들 중에는 알게 모르게 비전통적(서구적 관점에서는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 입니다. 미국군 철수가 가시화되고 탈레반의 국가재점령이 가시화되자 국경으로 몰려든 수 백 만 명에 달하는 탈출시도난민이 그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연출하고 있는 카불국제공항에 밀려든 난민들이 모두 미국의 첩자 아니면 협조자들이겠습니까? 이륙하는 수송기에 매달려가다 추락사하고, 내 아이를 이 나라에서 살게 할 수 없다는 의지 하나로 생이별을 각오하며 자기 아이를 무턱대고 공항 철조망 안으로 집어던지는 사람들의 내면에 무엇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이 존재하길래 저런 행동들을 할 수 있는 건지 황대권님이 일분이라도 고민한 적이 있다면 아프간 사태를 묘사하는 첫 글에 저 따위 소리를 먼저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황대권 님이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아프간 내부 일각에서 일어난 집단적 가치변화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내부통치전략의 산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일단 그런 현상이 발생한 이후로는 이 두 가지 주제를 별도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그 새로운 가치변화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적 압제보다 나은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분리해 낼 수 있는 사고력의 기술이 없다면 귀하는 더 이상 지성인 헹세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무질서한 철수를 비난하고 있는 중 입니다. 철수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싸 놓은 똥을 제대로 치우지 않은 채 도망가는 바람에 이 불쌍한 나라가 예측하지 못했던 대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무고한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철수한 건 자국 에너지환경의 혁명적 변화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이미 7 년 전 부터 철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들도 이런 비극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찌감치 예견했기 때문에 오바마는 계속 철군을 미루었고 트럼프조차 철군에 여러가지 조건을 걸어대며 자구적 탈출구를 모색했던 겁니다.
미국이 아슈라프 가니 정권의 방어력을 과대평가를 했는지, 아니면 하루만에 무너질 것을 알고도 무질서한 철군플랜을 밀어부쳤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떤 경우건 미국이 아프간 비극의 주범이고 최종적 책임소재인 것 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침략의 산물로 발생한 내부변화는 그 결과가 어디로 튀든 침략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데, 딱하게도 세계가 그 침략자들에게 준엄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고작 두 가지 뿐 입니다.
첫째, 질서있는 후퇴를 하라는 것, 둘째, 탈레반의 권력회귀를 목숨걸고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능한 한 많이 탈출시켜 데려가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당초 난민수용플랜은 미국이 3 만 명, 캐나다가 2 만 명, 영국이 2 만 명, 독일이 1 만 명 규모였던 것 같은데, 현재 공항접근을 무력으로 차단하는 탈레반의 약속위반과 폭력방해로 이들 대부분이 현지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이들은 구 정부 시절 각국 공관들, 또는 다국적군시설에 복무했거나 협조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외국기관에 근무했거나 협조한 이 아프간인들을 가리켜 나치부역자나 친일파에 비유하면서 탈레반이 이들에 대해 단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저는 그 주장이 ‘제 정신에서 나온 주장’인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중 입니다.
아프간 사태를 서구적 시각에서 해석하지 말라는 소리도 반만 맞는 소리입니다. 제국주의적 시각, 서구적 시각 대신 탈레반적 시각에서 아프간 사태를 보고 싶으면 직접 아프간에 가서 취재라도 좀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지금 아프간에는 한국국적의 기자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카불주재 한국대사가 안 떠나려고 하는 마지막 한국인 한 사람까지 설득해서 모두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났다면서요.
카불을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에 의해 전범국 취급을 받는 미국의 WSJ, NYT, CNN 등 3 개 매체에서만 240 여 명이 넘는 저널리스트들과 그들을 돕는 스태프들이 카불에 파견되어 강도높은 폭력과 살해위협을 무릅쓰고 취재활동을 벌여오다 상황이 너무 위험해지자 필수 보도인력을 남겨둔 채 스태프들은 공항구내로 철수했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현지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프간계도있고 위험에 더 노출될 수 있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방송이고 신문이고 지금까지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는 아마도 ‘heart breaking’ 이란 말일텐데, 애석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프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생생한 현장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스는 이런 제국주의 나라 출신 기자들이 기사를 생산하는 외신 뿐 입니다.
안전지대 골방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사건이 터지자 뜬금없이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해방론’을 주장하는 골방논객들이 아프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황대권 님의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해방론 속편을 듣고 싶습니다.
다만 속편에서는 진영의 old school 교리를 베끼거나 포장하지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솔직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2021. 8. 21 19:00 (M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