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의 탈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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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카불주재 자국대사관 근무인력 4,200 여 명과 미국시민들, 그동안 미국군 및 각급 공관을 위해 근무했거나 협조했던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을 안전하게 철수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탈주작전에 들어갔다.
캐나다 역시 대사관 근무인력을 포함한 자국시민들, 파병 이후 군대와 공관에 협조했던 현지인들과 그 가족 8 백 여 명을 포함, 약 2 만 여 명의 난민들을 캐나다로 데려오기 위한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과 연합국이 추진하고 있는 역대급 탈주극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역대급이라 할만한 미국의 대탈주극은 두 번 있었다.
첫째는 1950 년 12 월 23 일 조선 함경남도 흥남에서 전개되었던 대규모 해상탈출작전이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인민의용군에게 궤멸적 패배를 당한 미국군 10 군단과 해병여단 소속 패잔병들이 여러날에 걸쳐 이 항구를 통해 탈출했다.
철수 마지막 날인1950 년 12 월 23 일, 혹독하게 추웠던 그 날 밤, 군인과 민간인 등 무려 1 만 4 천 여 명이 승선한 매러디스 빅토리 (SS Meredith Victory)호가 무적소리도 내지 않은 채 조용하게 마지막으로 흥남항을 빠져나갔다.
이 배에는 여동생 금순이를 잃어버리고 홀로 승선했다는 금순이 오빠, 여동생 막순이를 잃어버리고 모친과 함께 탈출한 덕수,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 선친 문용형 씨 부부가 함께 타고 있었다.
둘째는 1975 년 4 월 29 일 남베트남 사이공 (지금의 호치민)에서 전개되었던 헬리콥터 공중 탈출작전이었다.
당시 화제의 중심은 미국대사 그레이엄 마틴 이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이공이 함락되기 불과 5 시간 전인 30 일 새벽 3 시 45 분까지도 탈출하지 않은 채 대사관 집무실에서 버티고 앉아 있었다.
인민해방군 (VPA) - 민족해방전선 (NLF) 연합군 17 개 사단이 사이공 시를 물샐틈없이 완전 포위한 채, 마지막 숨통을 조여오고 있던 그 시각.
대사 집무실 전화 중 워싱턴 DC 백악관과 직통으로 연결된 경비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려대기 시작했다.
마틴 대사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수화기를 통해 상대방의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봐요, 대사! 당신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요? 도대체 왜 아직도 거기서 꾸물거리고 있는거요? 당장 탈출하시오!!
마틴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고함을 친 장본인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었다.
포드 대통령으로부터 ‘디렉트 오더’를 받은 ‘레이디 에이스 나인’ 헬리콥터가 대사관 옥상에 도착했다.
대사는 대통령으로부터 대사를 안전하게 탈출시키라는 특명을 받은 여섯 명의 해병대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헬기에 올랐다.
이 특명요원들에게는 만일 마틴 대사가 어떤 이유를 들어 탈출을 거부한다거나 지체할 경우 그를 체포해서 안전지대까지 압송하라는 부가명령까지 내려져 있었다.
세기가 바뀌어 46 년 만에 세계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벌어질 미국의 역대급 세 번 째 탈주극을 목도하게 되었다.
세 번 째 탈주극에서는 어떤 이야깃거리들이 야사에 기록될 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그건 그렇고,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2001 년 10 월 당시 조지 부시 주니어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유는 딱 한 가지 뿐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동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에너지 수송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침공을 앞두고 불과 한달 전에 발생했던 9.11 공격은 한 마디로 ‘때리고 싶은데 상대가 먼저 뺨을 때려준’ 그 타이밍이 절묘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셰일혁명으로 해외에너지자원에 대한 사활적 필요성이 사라졌다. 해외 분쟁지역에서 위험을 감수해가며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낭비할 이유 또한 함께 사라졌다. 더구나 아프가니스탄은 종교적 특수성 때문에 미국의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지배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즉, 미국 스스로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된데다, 인디아-태평양 전략의 성공적 구축으로 무역과 에너지수송루트를 장악하고 중국을 해상에서 봉쇄할 수 있는 군사적 기반이 마련된 마당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따위에 미련을 가질 이유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철군을 미적거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수중에 다시 떨어지면 여성에 대한 가혹한 인권유린이 재현됨은 물론, 그동안 아프간 정부와 외국군에 협조했던 현지인들에 대한 대학살이 벌어질 것이 자명한데, 미국군이 철수하면서 벌어질 아프간 현지의 비극에 대한 윤리적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군결정은 그런 윤리적 비난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트럼프 정부가 대신 내려줬다. 트럼프 시절 정책을 모조리 뒤집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던 바이든 정부는 어찌된 일인지 아프간철군만큼은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그대로 승계하여 신속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