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vs 김정일 간단한 관전평
s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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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 11:30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시 설득의 명수였다.
명분상 남측이 불리할 수 밖에 없는 NLL을 도구로 북측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남측 보수세력과 미국’을 방패로 삼아 reasoning 을 구사하면서 북측으로부터 좀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고자 그들을 압박하고 설득했다. 마치
1965 년 베트남전 파병을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동원 전 외무장관이 야당과
재야, 학생들의 파병반대운동을 도구삼아 미국 존슨행정부로 하여금 한국측이 제시한 파병조건을 받아들이게끔 유도한
전법과 유사했다.
정상회의록 전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북측은
경제협력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실무자협상테이블로 넘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측은 협상의 기본사항들을
정상회담 자리에서 포괄적으로 타결하려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회담을 주도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측이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이에 크게 당황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정상회담 연장을 할 뜻이 없다는 뜻을 내비추었지만 남측에서는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서 수차례나 김 워원장과의 직접회담
연장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어떻게보면 외교의전에 어긋나 보일 수도 있는 남측의 강력한 압박에 북측은 결국
굴복하고야 말았다 정삼회담 오후속개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어떤 동의들이 이루어지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실무회담과는 달리 정상회담에서는 그 동의의 결과물들이 즉흥적으로 생산될 수 있기 때문에 순발력이 뛰어난 노 전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니다를까,, 결국 북측의 양보로 진행된 오후회담에서 남측이 준비한 회심의 카드들,
즉 남북한 경제협력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 회담역시
노 전 대통령이 발언의 80 퍼센트를 장악하며 븍측을 압도해 나갔다.
김 위원장은 뛰어난 CEO형 인간이긴 했지만 말이 좀 어눌한 편이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 스타일이라고나할까?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전달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초면의 김 위원장이 자기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피드백이 제대로 안되자 그는 개성공단과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성방안을 디테일하게 정리한 ‘학습자료’를 심심할 때 틈틈히 공부해보라며
김 위원장에게 제공했다. 상대가 복습할 수 있도록 강의가 끝난 후 복습자료를 준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남측의 자주성 부재를 비판하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오히려 두 나라의 서로 다른 對美관계역사를 지적하며 한 수 가르치기도 했다. 미-영관계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남측의 자주국방의지가 미국에 의해 좌절된 사례를 들기도
했다. ‘고립이 아닌 진짜 자주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하자’는 노 전
대통령의 뼈다구있는 말에 김 위원장은 (고개를 숙이며 잠시 생각하다가) “옳습니다” 하고 동의했다.
긴박하고 숨막히는 236 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배석한 날고기는 북측 참모들을 제압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이것이 10.4 선언이 성공적으로 탄생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에 의해 박살이 나고 도루라미타불이 되긴 했지만)
이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도, 지지하지 않았던 싸르니아의 매우 중립적이고도 간단한 관전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