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닭
s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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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5 13:00
한 시간 전 쯤,, 김기춘이 비서실장에 임명됐다는 황당한 기사가 메인에 떴다. 눈을 의심했다. 혹시 동명이인이겠지 하는 마음에 이름을 다시 검색해 보기도 했다.
김기춘이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은 우선 1992
년 제 14 대 대통령 선거 직전 발생한 ‘초원복집’ 사건을 떠 올릴 것이다. 대선을 며칠 앞둔
그 해 12 월 어느 날, 노태우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부산으로 날아갔다. 그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아침 부산시장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부산지방경찰청장, 부산직할시 교육감 등 부산 지역 기관장 전원을 초원복집에 집합시켰다.
김기춘 일당은 이 자리에서 영남권 단결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켜야 한다는 등의 황당한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떨어지면 모두 영도다리에서 바다에 빠져죽자” 를 비롯해서 이 식당에서 김기춘 일당이
내뱉은 상소리를 곁들인 지역감정 발언은 당시 통일국민당 후보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측에 의해 모조리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됐다.
1991 년에는 이른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전민련 간사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 조작음모를 검찰총장 신분으로 진두지휘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 내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며 이례적으로 국가안전기획부를 제치고 공안정국을 주도해 나갔다.
1988 년에는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를 압박하기 위해 서경원 방북사건을 확대수사했다. 1989 년에는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씨 방북사건을 수사하면서 당시 진보진영의 총 결집체였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소속 명망가들과 활동가들을
이 사건에 연계시키며 전민련 조직와해공작에 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
그가 검찰츨신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의 공안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던데는 국가안전기획부에 널리 퍼져 있던 그의 인맥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검사의 신분으로 1974
년부터 중앙정보부 제 1 수사국장직을 무려 5 년간이나 역임했다.
중앙정보부 제 1 수사국은 대공수사국이다. 중앙정보부 직제상 역할분담을 보면 대북정보는 제 9 국이 담당하고 있었고 대공수사국은 말 그대로 국가보안법 혐의자들을 잡아다가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부서였다. 박정권이 말기적 포악을 떨었던 이 기간동안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해 죽어나갔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은 모두 김기춘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사 김기춘은 1974
년 8 월 15 일 문세광 사건 수사를 맡으면서
중앙정보부와 공식인연을 맺었다. 그의 화려한 법조경력 중 1974 년부터
1979 년까지의 직책과 행적이 불명확한 이유는 바로 중앙정보부의 고문수사 전담부서 책임자였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내가 굳이 ‘공식인연’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이미 이후락 부장 시절인 1972 년 경부터 법무부 소속 검사의 신분으로 유신쿠데타 음모인
풍년사업의 법률부문공작을 맡아 중앙정보부와 비공식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김기춘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마치 이근안을 경기도 경찰청장으로 롤백시키고 정형근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한마디로 정신나간 폭거와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력과 인권감각이 이정도라면
전면적인 정권퇴진투쟁에 직면한다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