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면?
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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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5 12:15
1. 논어 안연편 정치의 요체에서
나라를 지키는 요소가 무엇인지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한다.
식(食), 병(兵), 신(信)이라 답했고 그 중에서 불가피하게 버린다면 버려야 할 것의 순서는 먼저 병, 다음이 식이었다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여기서 나온 말일 터.
2. 노무현 정부 출발 초기
노무현 정권에 희망을 가지고 있던 많은 이들이 백가쟁명을 펼치던 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글 중에 하나.
"참여 정부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큰 것은 "신뢰"라는 사회적 간접 자본의 건설이다. 경제 개발로 국민 소득을 올리고, 다리나 교량, 지하철을 짓는 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사회적 분위기로 볼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IMF극복을 위해 뭉치는 국민을 볼때 지금껏 쌓아온 물질적 성과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수 있으리라 낙관하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부만이 전부는 아니다.
또한 신뢰라는 간접 자본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아가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서로가 믿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치루는 비용, 예를 들어 노사분규,을 줄일수만 있다면 더 쉽게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 부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불신으로 인해 아귀다툼을 줄일다면 정신적 스트레스도 훨씬 줄일 수 있기에 진정한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 할수 있을 것이다."
대략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라는 사회적 간접 비용을 논파한 이가 누구인지 기억없지만, 그때까지 단순히 정권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 글은 보았어도(탁치니까 억하고 죽었으니 믿어라),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도덕적 신뢰말고 사회적 간접자본으로서의 신뢰를 논한 것은 내게 꽤 큰 충격이었다.
신뢰가 도덕이 아니고 자본일 수도 있구나!
3. 내 개인적인 경험과 행동 양식
장사하는 사람과 사업하는 사람의 말은 많이 믿어야 70%.
물론 오랜 세월 교류해온 친구나 지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살아온 경험으로 볼때 그닥 믿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이도 있고, 말장난으로 이득을 취하는 이를 만나기 꽤 쉽다.
사실 태국 가서도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상인의 농간 아니던가? 바가지 말이다. 한마디로 믿을수 없다는 거.
왜 상인이 신용을 잃으면 끝장이라는 말을 강조하는가? 누구던 신용을 잃으면 사회생활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는다. 상인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상인이 원체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라는 의미이기에 신용을 강조할수 밖에 없다는 것을(내 말 좀 믿어줘! 진짜 약속 지킨다니까!)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리라.
또 한가지, 게시판에서도 상인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말은 역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직업탓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성정이 그러한지 모르지만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
자신의 주장이 착오건, 실수건, 고의건 틀려도 결코 사과하거나 철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말꼬리를 잡아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또는 상대방의 신경줄을 긁어 화나게 만들고 개싸움으로 만들어 피장파장으로 만든다. 그리고 애초에 있었던 주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물론 자신의 잘못도 사라진다.
그런 자의 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믿지 않는다. 반드시 그 이면에 또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으리라 의심하기 때문이다.
혹시 장사나 사업에 종사하시는 분은 이 글에 불쾌감을 가지실 수 있는데, 너무 염두에 두지 마시길.
일개 필부의 개인적 편견일 뿐이며, 자신이 당당하다면 내 글은 어느 집단에나 있는 "일부"에게 향한 글일테니.
4. 내가 신뢰를 갖는 사람.
전적으로 신뢰를 갖는다면 한정된 친구와 가족일 터.
그들 외에 상황에 따른 신뢰라면, 아플때 의사, 배울때 교사 정도 될 것이다.
의사나 교사를 믿다니 하고 코웃음 치실 분도 꽤 계실터. 이 역시 나의 개인적 편견일 뿐.
역시 그들 중의 일부는 믿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율이 현저히 적을 것이라 기대하고, 또 경험상 현저히 적었다.
그 이외에 닥친 상황에 따라 경찰, 소방관 등을 믿고 따를 것이다.
그들의 직업은 이해 관계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의사나 교사는 어느 정도 타산을 따져 행동한다 해도,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이문을 따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러하다.
5. 내가 믿을 수 밖에 없는 직업
내가 업으로 삼는 업종에서는 당연히 나는 나를 믿는다. 남의 말보다(갑이나 을보다) 내가 만든, 내가 분석한 자료를 믿고 그를 바탕으로 주장하고 설득한다.
타인의 주장이나 분석도 내가 해석하고 나서 믿을 뿐이다. 몇 번 회의를 해보면 실력을 바탕으로 한 믿음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 생겨난다.
실력을 바탕으로 한 사람은 주로 서류 일에, 성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람은 주로 현장 일로 만났을때 편한 편이다.
결국 믿을 수 있다 없다는 내 이해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믿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은 내 이해력을 넘어선 경우에 한한다.
인생에 많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해력을 넘어선 경우를 만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군대가 그렇다. 그래서 군대는 이등병때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각"이 안나오는게 정상이다.
그리고 배나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렇다.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것보다, 승무원을 통하는게 더 올바른 해결 방법-때에 따라서는 생존 방법-일 확률이 높다.
6. 세월호의 승무원은 "신뢰"라는 간접 자본이 전혀 없었다.
내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면, 나는 사망자나 실종자로 표기될 확률이 90% 이상이다.
배가 기울고 문제가 생긴 것은 인지할 수 있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다가는 배가 더 기울고 심하면 침몰할 수도 있겠다는 논리적 추론을 내린 후, 선내 방송에 따라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나만이 아닌 다수의 생존과 안전에 유리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적어도 배에 있어서는 전문가인 승무원의 방송이 그렇다면 꼭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며, 침착하게 행동할때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또한 최악의 사태라도 그들의 지시를 따라야 하며,그들이 재난에 대비해 훨씬 능률적으로 승객들을 보호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신뢰"가 내겐 있다.
결과는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말이다.
7. 정권에 "신뢰"가 있는가?
대민방에서 싸우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노무현 정부를 경제성장에서 무능하다고 욕했어도 국정 운영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고 욕하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소수의 진보그룹들이 노무현을 불신하긴 했다. 이라크 파병 문제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경제적 무능과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아, 물론 유능과 신뢰를 가진 사람도 상당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무능 얘기는 여기서 빼자. 어차피 요즘 매스컴에서 경제 문제 취급이나 하나? 다들 경제적으로 풍족하실 거라 믿는다. 배도 고픈 사람들이 떠들면 왠지 비참한 기분마저 드니까.
그냥 편하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5.5:4.5 비율로 가정하자.(벌써 지난 대선 지지율이 몇 %였는지 기억이 없다.)
반이 넘는 비율이 신뢰를 가지고 있으니 믿어야 할까?
당신은 사업을 하는 파트너라든지, 내 이웃이라던지, 직장 동료라던지 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절반 약간 넘는 비중을 가지고 일을, 사업을, 생활을 안심하고 밑길 수 있는 사람인가?
그가 비록 절반이 약간 넘는 정도의 믿을을 주었지만 하는 태도를 보면 꾸준히 노력하며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이던가?
남에게 핑계 미루지 않고 솔직히 자신의 능력이 미달이라던가, 노력이 부족했다던가 하는 자책의 모습을 보이며 개선 의지를 나타내던가?
여기서도 이게 내가 지지하는 정권과 아닌 자의 말싸움이 벌어질지 모른다.
나는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비상 사태가 날때 여전히 그 상황을 통제하는 직업 전문가나 정부를 믿고 따를 확률이 높다.
꼭 그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 이기심으로 행동하다가는 전체가 다 몰살 할수도 있다는 공동체적 의무감이 있기 때문이다.
제발 내 인생에 있어서 세월호 승선과 같은 경우를 피할 수는 없을지라도...그게 사고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삼가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