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수학의 고수들이다
그 사람이 연 이틀간 JTBC에 출연하여 경악할 이야기들을 쏟아놓았다. “사고 당일 밤 열 한 시 삼십 분까지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있는 줄 몰랐다” 는 것이다.
그 날따라 런치를 오피스로 가져와 JTBC 뉴스를 시청하면서 점심을 먹었는데,, 하마터면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저 작은 회사의 임원이 박근혜 정권을 상대로 비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추리를 해 왔었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고급정보를 틀어쥐고있는 언딘에게 구난구호 (구호구난이 아니라) 주도권을 부여하기위해,,,구조 첫 날 민간잠수사들도 막아주고, 현대중공업 바지선도 막아주고, 해군참모총장의 수상구조함 출동도 취소시켜주고, 심지어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천후 구조장비로 중무장한 잠수전문특수요원들을 포함해서, 미해군과 해병대 병력 3 천 명이 승선하고 있는 USS 본험 리처드함도 멀리 따돌리고, 그 배에서 긴급발진한 구명보트 탑재 헬기들도 쫓아버리고, 그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언딘도 따돌림을 당했다?
300 명이 넘는 승객들이 배에 갇힌 채 수장됐는데 그 사실을 현장의 해경만 즉시 알았고, 언론은 세 시간 반 후인 오후 2 시 경에 알았고, 대통령은 여섯 시간 반 후인 오후 다섯 시에 알았는데, 사고관할기관인 현장의 해경이 구난구호 (해경의 당초주장은 구호) 를 독점 배타적으로 위탁한 민간업체 언딘은 침몰 열 세 시간이 지난 밤 열 한 시 삼십 분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장병수 기술이사라는 사람이 설명한 경위는 이렇다.
자기 회사의 실무팀이 현장에 도착한 지 무려 아홉 시간 반이 지난 밤 열 한 시 삼십 분이 되어서야 해경책임자가 자기에게 “실은 바닷속에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공식 리포트를 해 줬단다. 그리고는 아무런 행동요청을 하지 않아, 자기가 오히려 하도 답답해서 해경책임자에게 “저, 혹시 뭐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하고 물으니까 “그럼 저 배에 에어포켓이 있는 것 같으니까 공기를 주입할 준비나 해 달라”고 하여 72 시간에 걸처 장비를 수집하는 등 그와 관련된 일을 했고, 첫 날은 구조활동 승인이 나지 않아 다음 날 아침 일곱 시가 넘어서야 첫 입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봐도,, 사태가 너무 위중하다보니까 서로 살아남기 위한 내부균열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련됐던 자들이 혼비백산해서 대재앙을 직감한 쥐떼처럼 사방팔방으로 도주를 시작한 것이다. 범인들은 해경 해수부를 포함한 일부 정부조직과 청해진해운의 사주 및 경영진을 망라한 다중조직이다. 사건의 성격 또한 다중적이다.
일본의 해상사고전문가가,, 범인들이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수학적 부비트랩을 이용해서 세월호를 고의적으로 침몰시켰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그는 수학적 부비트랩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건 싸르니아가 그의 해석을 종합해서 이해한 결론이다)
밸러스트 탱크의 4 분의 3 을 비우고, 대신 적재적량의 4 배에 달하는 화물을 실어 무게중심을 비가시적으로 (즉, 눈에 보이지 않게) 올린 상태에서 가변적 평형수 역할을 하는 연료와 생활용수가 점점 줄어들어 복원력 작동의 임계점을 넘는 지점에 다다르면 배가 회복할 수 없는 균형상실을 초래하게 되는데 청해진해운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도 배를 출항시켰다는 것이다.
그 임계점을 넘는 지점이 군산 앞바다 였으며 실제로 이 지점부터 배의 균형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여러 승객이나 승무원들이 증언한 바 있다. 선원들이 (선장 또는 일등항해사) 고의로 AIS 를 처음으로 OFF 했던 지점도 군산 앞바다였다. 이 지점에서부터 세월호는 좌우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복원력을 상실했고 조류저항이 심한 맹골수도에서 예정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물론 아직 추리에 불과하다. 검증이 필요한 이야기다,
어쨌든,,, 언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세월호 참사 시나리오가 일본이나 유럽, 미주국가에서 벌어졌고, 그로부터 40 일 쯤이 지난 시점에서, 스캔달의 중심에 있었던 어느 구난전문 민간회사가 느닷없이 저런 폭탄선언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 말할 것도 없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적어도,,, !! 마치 모든 것이 지난 일인 듯 한가롭게 지방선거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병언만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동기와 목적이 판명되지 않은 조직범죄에 해경이 관련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정황증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스스로 공개한 최초 출동화면, 즉 해경 제 123 정과 그 경비정에서 발진한 고속구명정의 초기활동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딴 건 다 그만두고,, 선장의 ‘팬티차림 틸출소동’ 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1987 년 1 월 박처원 치안본부 5 차장의 실언만큼이나 어설픈 연기였다. 선장이 팬티차림으로 탈출해야 할만큼 급박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는 게 자기들이 찍은 동영상으로 탄로가 나 버린 것이다.
해경을 해체해서 인적증거를 인멸하기 전에,, 해경조직에 대해서도 증거보존신청을 해야 할 것 같다.
와타나베 유타카 도쿄해양대 교수는 본인이 의혹을 제기한 이 문제에 대해 세월호 제원과 화물량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수집해서 좀 더 자세하게 수학적 증명을 해 주었으면 한다. 가능성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증명을 완료할 때까지는 사실로 확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탈출직후 자살을 시도 했던 어느 기관사가 갑자기 생각난다. 그러고보니 왜 이 사람 이야기가 그 후 한 줄도 안 나오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왜 자살을 할 생각을 했을까? 운항승무원도 아닌 기관사가 단지 승무원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을까? 분명히 뭔가 더 위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증거들이 사실로 확정되기 전 까지 싸르니아는,,,,,,
세월호 참사의 최초 원인만큼은!!! 일단 사고로 믿고 있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