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있었기에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까? 2편
1편에서도 썼지만 개인적인 잡설이지, 남의 학문적 성과를 차용하거나 한 것이 아니니 오류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1. 세계 지도
세계 지도를 한번 보자.
우리가 명칭이나마 친숙하고, 우리와 경제적 수준이 엇비슷하거나 우월하다고 느끼는 나라들을 찾아보자.
묘하게도 대부분의 국가가 온대와 냉대 지방에 위치한다.
열대나 아열대 한대 지방에는 그럴듯한 나라를 찾기 힘들다.
예외로는 석유의 축복을 받은 중동의 나라들, 그리고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리던 홍콩, 대만, 싱가폴 정도다.
그럼 이런 나라의 공통점이 뭘까?
겨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서늘한 겨울이 아닌 비축하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야 하는 환경을 가진 나라들이다.(이런 근거로 겨울이 온난한 남유럽 제국들은 상대적으로 후진국 경향을 띤다.)
즉, 특별히 유별난 이유없이 단지 겨울이 존재하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들의 노력은 그 지역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여기서도 두가지가 갈라지는데, 겨울이 엄혹한 냉대 지방은 좀 더 강력한 사회적 연대를 구가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견딜만한 겨울을 지닌 곳은 개인의 노력을 좀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경향을 띤다.
전자는 북유럽이나 카나다 등을 예로 들수 있고, 후자는 중유럽 제국과 미국 일본 우리나라 등을 들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또다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세례를 정면으로 받고 이를 극복 또는 혼합한 유럽 문명과 아예 이를 근본적으로 막아선 미국 문명과 미국의 아류 문명인 일본과 한국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러시아나 중국은 공산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에서 방황하다가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아들이고 나서 점차 그 모습이 바뀌고 있고.
즉, 온대나 냉대 기후에-노력하지 않으면 겨울에 얼어죽는다는 전제- 전체주의나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그리고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채택했을때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은 자동적으로 갖추어진다고 볼수 있다.
하면,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북한에 흡수통일되었거나(70년대까지는 북한이 우리보다 우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말자. 미워도 사실은 사실일뿐, 자신감 있는 자만이 진실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다.), 아니면 박정희가 없었어도 빠르건 늦건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거란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이 아닐터 충분 조건을 살펴보자.
2. 아시아의 네마리 용
한국, 대만, 싱가폴, 홍콩
홍콩을 제외한 3나라는 경제개발 초기부터 독재체제를 통해 정치적 혼란의 씨앗을 제거하고 출발했다.
홍콩도 말이 민주정이지 총독이 다스리는 식민지.
어차피 식민지 출신 중국인이 정치적으로 성장해서 본토(영국)까지 진출해서 의원이나 총리를 꿈꿀 여건은 못될터. 그렇다면 이들 역시 독재 치하에서 정치적 성공보다는 경제적 성공에 몰두하기 위한 여건이 충분하다.
4나라가 가지는 공통점은 바로 중화 문화권. 한문을 공유하고 유학의 세례를 받은 나라들이다.
이 유학은 수기치인의 유학이 아니라 열심히 4서5경을 공부해서, 아래로는 형벌 위로는 예악을 논하여 경세제민하고 개인적으로는 출세하는 것이 목적인 유학이다.
봉건제도하의 신분제가 타파되던 때부터, 이제는 누구나 공부해서 위로 올라갈수 있다고 믿을때부터, 이 4나라는 거의 모든 국민이 잉여 자원을 놀고 먹는데 쓰지 않고 자녀교육에 몰빵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막대한 예산과 고심을 통해 교육을 확립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각개약진하여 아주 수월하게 우수한 인적자원을 싼값에 시장에 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도 개방이 되면서 대학입시가 말도 못하게 격화되는 걸 보면, 이 중화문화권의 특징은 '억울하면 출세하자'가 어느 정도 공통 DNA같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을 제외한 3국은 중국인이 실질적인 주인인 나라다. 중국인의 상업 능력은 세계적인 것. 한국을 제외하고 이 3나라는 정치모델과 경제 모델이 갖추어진 이상, 경제 발전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지도 모르겠다.
3. 변화된 생각
결국 30대 초반까진 박정희가 있었기에 최초의 도약은 가능했다고 믿었지만, 점점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어쩌면 박정희가 있었기에(박정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로 인해 배태된 전-노-김 정권까지 모두 그의 후손이다.) 우리는 아직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히 말하건데, 여느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처럼 군부독재를 욕하면서도 반면으로 30대 초반까지 어쨌거나 박정희의 성과를 인정했던, 그것이 양심에 거리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의 고백이다.
글을 마치려다가 슬며시 1편에 대한 사르니아님의 댓글을 보았는데...도박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피와 땀을 요구한 세계사의 흐름이 기가 막히게도 그를 도운 것이었죠.
베트남 파병을 통한 피의 댓가, 중동 진출을 통한 땀의 댓가가...관치 금융을 통한 방만현 경영으로 달러 고갈에 이른 정권을 기적적으로 일으켜 세웠으니까요. 그리고 일본 따라잡기를 결정적으로 도운 플라자 합의와 3저 호황이 있었기에 박정희와 그의 후예들이 경제하면 할 말이 있는 모습을 보이게 한 것일 뿐.
세계사의 조류는 전혀 우리가 영향을 끼칠수 없었으니, 그가 없었더라도 우리의 교육열과 겨울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세계사가 우리에게 달러를 공급해준 행운과 맞물려 우리의 경제 발전이 필연적일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 글이 길어지다보니 빠진 부분이 있는데, 아시아의 4마리의 용이 독재체제 속에서 경제 발전을 시작했다면, 어째서 박정희의 독재 없이도 경제 발전이 가능했겠느냐는 반론이 있을수 있겠지요.
그게 위에서 논한 우리가 가진 한계로 나타납니다.
다른 나라도 정치적 독재였지만, 정적을 죽이고, 친일매국분자들을 중용하고, 국민들을 개잡듯하는 행태를 보이진 않았지요.
그런 독재의 후유증이 아직도 전라도냐 홍어냐 하는 단어를 부끄럼없이 떳떳하게 내뱉고, 조부가 독립유공자인데, 독립된지 언젠데 아직도 친일파냐(하도 기가 막혀서 말안했는데, 일제 시대 뿐만이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친일파가 있었고, 따라서 지금도 친일파가 있을수 있음을 뒤늦게 가르쳐 드립니다.) 라는 망발을 일삼는 사람들을 양산한거죠. 그게 어쩌면 빵을 던져주고 돼지들을 양산한 박정희의 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