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 씨를 아시는 분들께
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 지주회사 대주주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 따위에는 관심 없다. 다만 그 와중에 새삼 들먹거려지고 있는 있는 두 이름 때문에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겨보았다. 싸르니아로 하여금 옛날 생각에 잠기게 한 두 이름 중 하나는 서미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게미쓰다.
1970 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서미경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연예매체들은 미모의 여배우였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를 트로이카라고 불렀지만, 만일 싸르니아에게 미모만을 기준으로 그 시대의 여배우 두 명만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정윤희와 서미경을 꼽을 것이다.
서미경은 MC, 탤런트 영화배우 광고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한국 최초의 3D영화라는 홍길동에서 주인공 홍길동 역을 한 서미경 때문에 그 엉터리 작품을 보러가기도 했다. 명보극장이었는지 스카라극장이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두 극장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서미경의 모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담은 TV 광고에서였다.
‘처음 만난 그때도 칠성사이다 사랑해요 지금도 칠성사이다 일이삼사오륙칠 - 슈바! 칠성사이다~~”
나중에 서승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 안 돼 갑자기 자취를 감췄는데, 요즘 다시 서미경이라는 옛날 이름 그대로 등장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시게미쓰라는 이름은 서미경이라는 이름 만큼 감회가 새롭지는 않지만, 몰락하는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했던 한 인물의 출신가문이라 역사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한다. 같은 성씨를 가진 일본 국적의 지주회사 가문이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유통-오락-숙박-식음료-부동산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기묘한 현실과 맞물려 비애감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시게미쓰가문과 몰락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운명적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70 년 전 그 날을 회상해볼 필요가 있다.
마침 보름 앞으로 다가 온 올해 8 월 15 일은 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제국주의가 몰락한 지 70 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전쟁은 1945 년 8 월 15 일에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1945 년 9 월 2 일에 종료됐다. 그 날 도쿄만까지 들어와 정박해 있던 만재배수량 5 만 5 천톤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호 (USS Missouri) 함상에서 항복조인식이 거행됐기 때문이다.
이 국제전쟁은 종료된 날도 해석에 따라 제각각 다르지만 시작한 날 또한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르게 알려져 있다. 일본과 중국은 이 전쟁의 개전일을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 년 7 월 7 일로 본다. 유럽에서는 보통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 년 9 월 1 일을 전쟁시작일로 간주한다.
미국은 또 다르다. 미국은 2 차대전 개전일을 진주만에 주둔하고 있던 자기 나라 태평양함대가 나구모 주이치 해군제독이 지휘하는 제국일본해군에 의해 사상초유의 개박살이 난 1941 년 12 월 7 일을 이 전쟁의 개전일로 본다. 그 날, 미쓰비시 등 제국일본의 중화학자본이 직접 제작한 6 척의 항공모함과 2 척의 전함, 4 척의 순양함, 9 척의 구축함, 3 척의 잠수함, 8 척의 유조선 등으로 편성된 항모강습단에서 발진한 414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오아후섬 진주만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태평양사령부 해공군 소속 함정들과 항공기들을 불과 수 시간 만에 고철덩어리로 만들었다. 그 다음 날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상하원 합동연설회장에 윌체어를 타고 나타나 대일본 선전포고를 했다.
그로부터 3 년 8 개월 후, 천신만고 끝에 승전한 미국은 제국일본과의 항복조인식을 진주만에서 격침 수장된 애리조나호 (USS Arizona) 의 자매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진행했는데,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은 이 날 제국일본 전권대사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러 나온 일본측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가 의족에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보도했다. 일본외상 시게미쓰는 항복조인문서에 서명한 후 A급 전범으로 기소돼 도쿄전범재판에서 금고 7 년 형을 선고받았다.
장애인이 절뚝거리는 모습을 활용하는 비열한 방법으로 전쟁승리를 재확인하려 한 당시 미국의 심리상태를 보면 미국이 당한 진주만 패전이 얼마나 쓰라린 상처였는지 유추할 수 있다. 다만 그 날 시게미쓰 마모루의 모습을 담은 미국측 사진보도자료에는 그가 왜 장애를 수반하는 부상을 당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1932 년 4 월 29 일 당시 주중공사였던 시게미쓰 마모루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렸던 일본군 상하이 점령 전승기념행사에 주최측 인사로 참석했다가 어느 조선 청년이 던진 사제폭탄이 지근거리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사제폭탄을 투척한 조선인 청년 이름은 윤봉길이다. (참, 싸르니아가 방금 깨달은 건데 1932 년 윤봉길 열사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투척을 한 날과 올해 아베 신조가 상하원에서 합동연설을 한 날이 공교롭게도 같은 4 월 29 일이다)
서미경과 시게미쓰라는 이름을 새삼 떠올리게 해 준 롯데그릅의 지주회사 대주주 시게미쓰 다케오 (한국에서 신격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회장 일가가 시게미쓰 마모루 가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두 번 째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는 일본 우익의 명문 출신으로 그의 가문이 시게미쓰 다케오 회장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조력자 집단이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지는 것 같다.
어차피 자본은 글로벌한 것이니 지금까지 롯데가 한국기업인 줄 알았는데 일본기업이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섭섭해 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시게미쓰 다케오 회장과 그의 아들들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일본여권과 한국여권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인지, 대한민국 국적법상 18 세 이상 65 세 미만의 이중국적은 허용하지 않고 있는 걸로 아는데, 최근에 단일국적으로 정리하기 전까지 그의 아들들은 어떻게 이중국적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인지, 차라리 이런 것들이 조금 더 궁금하다면 궁금할 뿐이다.
어쨌든 시게미쓰 가문은 원래 형재들 사이가 유별나게 시끌벅적한 것 같다. 1970 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아래 있는 농심라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형님 먼저 아우먼저 하다가 그럼 아우먼저 로 결론짓는 이 광고는 롯데에서 농심을 분리해 나간 시게미쓰 리틀 브라더가 시게미쓰 다케오 회장 약 올리느라고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싸르니아의 추측이다. 언젠가 말했지만 나의 분석은 믿을 수 없어도 추측은 십중팔구 적중하니 믿어도 큰 손해는 없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