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인간들이 아닌 담에야......
올 가을, 한국 보수세력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가하는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정작 현지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지 않고 있는 이 두 사건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을 포함한 한국 보수집단이 얼마나 부패하고 비윤리적인 사기집단인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첫째는 지난 8 월 말, 한국군 합참본부가 '북코리아가 선제포격을 했다'고 거짓발표를 한 사건이다.
당시 한국 합참본부는 북측이 남측에 대고 고사총 1 발과 견인총 3 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했었다. 한국군은 제대로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채 보복사격을 한다며 북측에다 대고 자주포 29 발을 발사했다. 2015 년 8 월 말,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일촉측발의 전쟁 먹구름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짓발표로부터 시작됐다.
한국군측의 오버액션으로 먼저 격노한 쪽은 북코리아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미국군 태평양사령부는 즉시 주한미국군사령관 스케퍼로티에게 어떤 사유로 한국군 작전부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허락도 없이 북측에 대고 자주포 사격을 감행했는지 진상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극비명령을 하달했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특별조사반을 편성해서 한국군을 일체 배제한 채 단독조사를 감행했고, 지난 10 월 19 일 '북코리아군이 남측에 대고 사격 또는 포격을 가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놀라운 조사결과를 언론에 흘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국군 합참본부의 거짓발표를 일치감치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달 동안이나 시치미를 뚝떼고 있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마친 직후 전격적으로 언론에 자신들의 조사결과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 기왕에 대통령 방미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첨부해서 이야기하면,,
알려진 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 월 16 일 백악관 회동에서 대중국관계와 관련하여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원수로서는 있을 수 없는 모욕적인 핀잔을 공개적으로 들었었다. 그 직전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미국에 쭐레쭐레 따라갔던 한민구 국방장관이 KFX 기술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에게 면전에서 육성으로 (기술이전을)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알려진대로 한민구 국방장관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수 분 만에 끝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방문단에서 쫓겨나 즉시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2013 년 5 월 도중에 쫓겨나서 되돌아 온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그랬던 것 처럼 그 역시 대통령 전용기가 아닌 워싱턴 DC 발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타고 쓸쓸히 귀국해야 했다.
미국에서 이중삼중 겹으로 개망신을 당하고 한국으로 씩씩거리며 돌아 온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목부터 날려버렸다. 얼빠진 국내언론은 KFX 기술이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주철기 수석이 경질됐다는 보도를 했지만, 주철기 수석은 KFX 사업하고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보다는 자기가 보고받은 미국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모습에 아연실색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측근 외교보고라인의 수장부터 잘라버렸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방미 직전 싸르니아가 여기 올린 글 '박근혜 대통령의 단식투쟁......'을 읽고 갔더라면 그렇게까지 당혹해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오늘 이야기의 주제로 돌아와서,
올 가을 한국 보수세력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한 두 번 째 사건은, 한국경제신문과 자유경제원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엥거스 디턴' 의 책 '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 를 재편집 번역한 사건이다.
흔히 한국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언론을 조중동으로 잘못 알고 있다. 현재 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한 극우이념집단을 이끌고 있는 프로파겐다의 중심은 조중동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과 자유경제원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중동을 선호했을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조중동을 자신의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경의 정규재 주필같은 인물이 각종 청와대 회의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그 한국경제신문과 자유경제원이 대형사고를 쳤다. 올해 노밸경제학상 수상자 디턴 의 위에 언급한 저서를 번역을 빙자해서 재편집 출간한 것이다. 불평등의 확대 확산을 완화하기 위해 '만국의 노동자 대신 세무서가 단결' 할 것을 시사했다는 토마 피케티가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작년 이맘때, 그의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역시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미국 경제학자의 저서 하나를 꼽아 변역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그의 논지에서 '불평등이 성장의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는 내용을 추려낸 다음 "가 될 수 있다" 도 빼 버리고 가짜 번역본을 내 놓았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국내언론은 이 사건을 '의도적 오역' 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역이 아니라 제목과 부제, 책의 내용을 제편집한, 번역을 빙자한 명백한 재편집 사기사건이다. 싸르니아는 아직 그 책의 원본과 번역본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말' 로 할 수 없음을 양해하시기 바란다.
프린스톤대학 출판부측에서는 일단 한경측에 책을 전량 회수하라고 공식요구한 상태에서, 원본과 번역본에 대한 정밀 대조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조사결과가 나오는대로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소송도 가능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한경측은 형사적 책임소추역시 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첫번째 사건의 주역은 대한민국 합참본부다.
두번째 사건의 주역은 현재 집권세력을 대리하여 교과서 국정화 이념선동을 선봉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국경제신문과 자유경제원이다.
이게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올해 가을 대한민국의 진면목이다.
한국방문 중,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황혼의 미학' 이라는 책을 다 읽고 왔다. 어느 분에게 한국방문선물로 받은 책이다.
그 책을 읽고나서 였을까?
왠지 저런 집회에서 고함을 외쳐대는 '저 황혼들'이 한심해 보이지 않고 그냥 가엾게 느껴진다.
(황혼이 아닌 2-30 대로 보이는 분도 하나 있는데, 뭐 괜찮다, 너무 늦기 전에 제 자리에 돌아오면 된다)
이 나라에도 야당이 있기는 있나본데,
자기들이 함정에 빠져 문제의 핵심에서 항상 비껴가도 있다는 걸 알기는 아는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놀랄때가 있다.
"보이니, 네 안의 눈부심"
모든 철학과 종교의 핵심적 질문인데,
그냥 해 본 말장난이 아니라면
응답하고 싶을만큼 훌륭한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