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이혼시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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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이혼시키는 마음으로,,,,,,

sarnia 7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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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대한민국 애국가를 자랑스럽게 부를 수 있나요?
아마 이 질문에 자신있게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봐요.
어떤 사람들은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에서 표절한 곡이기 때문에 애국가로서 자격이 없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작곡가 안익태의 적극적인 친일음악활동을 문제삼기도 해요.
언젠가도 말했지만 안익태의 문제는 표절이나 친일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질이 좋지 않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싸르니아가 2009 년 썼던 글이 있어요. 링크할께요 
도대체 안익태,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안익태는 언제 대한민국 애국가를 작곡했을까요?
두 가지 설이 있어요. 1935 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작곡했다는 설과 1936 년 베를린에서 작곡했다는 설이 그것이예요.
원래는 1936 년 설이 유력했는데 불가리아 음악가 페터 니콜리스가 1964 년 대한민국 애국가를 듣더니 다짜고짜 자기나라 민요에서 베꼈다고 항의를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알리바이를 맟추느라고 새로 만들어 낸 작곡년도가 1935 년 설이에요. 좀 구차하긴 하지만, 안익태가 불가리아를 여행하기 전이니까 불가리아 민요를 몰랐을거라고 변명을 둘러대기 위해서 였겠지요.   
안익태는 1936 년 부터 1944 년까지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 시민권자 신분으로 나치 치하에 있는 유럽 6 개국에서 작곡가와 지휘자로 활약했어요. 나치 선전장관 궤벨스의 후원아래 독일 국립 음악기관 총재 (President of the Reichsmusikkammer, the State Music Bureau)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된 그는 스승인 슈트라우스가 직접 작곡한 대일본제국 축전곡을 지휘하기도 했어요. 이어 일본의 중국침략거점인 위만주국 축전음악을 그가 직접 작곡했는데 안익태의 위만주국 축전음악작곡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축하 전문과 추천장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요.
1942 년 안익태는 일본의 위성국 위만주국 건국 제 10 주년을 맞아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스승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일본축전과 자신이 작곡한 위만주국 축전 연주를 지휘했어요. 홀 안에는 대형 욱일승천기가 걸려있었고, 음악회장 건물에는 스와스티커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어요.
영국과 일부 중립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나치의 첩보기관과 SS 조직에 의해 수 백 만 명의 민간인들이 강제수용소에 끌려들어가 잔혹하게 학살당하고 있던 바로 그 시대, 안익태는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최악의 반인륜 집단의 음악선전조직에 소속된 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던 것 이지요.
가스실에서 집단 학살당한 시체 태우는 검은 연기가 전 유럽대륙의 잿빛 하늘을 뒤덮고 있던 그 시간,,, 핏빛으로 붉게 물든 욱일승천기와 스와스티거 깃발 아래에서 안익태가 미친듯이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던 장면이 담긴 당시의 영상자료는 독일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2006 년 독일 유학생 송병욱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때부터 안익태가 유럽에서 벌인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음악활동의 전모가 공개되기 시작했어요.
안익태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나치부역 음악활동을 전개했던 프랑스가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기  얼마전인 1944 4 월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도피했어요. 그는 도피행각 중  스페인 여성 Talavera와 열애를 벌인끝에 이 여성과 결혼을 해요.
어떤 자료에는 프랑스에서 추방됐다고 나오는데, 또 다른 자료에는 프랑스에 연합군 부대가 진주하기 전에 스페인으로 간 것으로 나오네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감행된 날짜는 1944 6 6 일이었고 연합군 제 2 기갑사단이 파리에 진주한 날짜는 그 해 8 25 일이었으니까, 4 월에 스페인으로 갔다면 아직 프랑스가 나치 괴뢰정부치하에 있을 때 운 좋게 빠져나간 셈이네요.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일 그때 말이죠..
만일 그 때 안익태가 프랑스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그는 사를르드골 해방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나치부역혐의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을 것이고 일반적인 나치협력자도 아닌 적성국 문화 스파이로 분류되어 중형을 선고받았을 가능성이 커요. 당시 프랑스 드골 정부는 비쉬 친나치정권의 관리나 군인들보다도 언론-문화-예술계통에서 부역행위를 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색출하여 중형으로 처벌하거나 추방했어요.
아마도 그렇게 됐다면 그가 작곡한 노래가 대한민국의 애국가로까지 정착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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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르니아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면
통일코리아의 국기는 태극기로 하면 좋겠고요.
 
태극기와 짝을 맺어 줄 새 애국가는 무얼로 하면 좋을까요?
우선 후보곡으로 떠 오르는 게 '아침은 빛나라'인데,
이 노래도 작곡자의 이력은 조금 걸리는 점이 있어요. 가사도 조금 손 봐야 할 부분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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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아침은 빛나라의 만남,,
처음엔 서로 조금 어색하고 쑥쓰러울까요?  
 
태극기와 짝을  맺어 줄 다른 좋은 신랑감(새 애국가) 있으면 추천을 해 보아요.
7 Comments
sarnia 2013.01.20 08:34  
흠,,, 아침은 빛나라는 다 좋은데 작곡가 김원균이 김일성장군의 노래 작곡자라는 점이 맘에 좀 걸립니다.

김일성은 어쨌든 이승만과 함께 한반도 분단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을 수 없는 인물이고, 특히 그는 북코리아를 종파주의 지배와 '종교형국가'로 이끌어 북 인민을 제외한 외부로부터의 보편적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김원균의 이런 문제가 안익태의 문제보다는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세일러 2013.01.20 10:57  
일본군 장교출신이 추앙받고 그 후손이 선출되는 나라인데, 안익태 행각쯤이야...애교...
seastar 2013.01.20 17:19  
애국가 보단 확실히 웅장하고 진취적인 힘이 느껴지네요.
정말 남과 북의 장점을 살려 힘모아 나아갈수있는 그런날이 올수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sarnia 2013.01.21 02:16  
아침은 빛나라는 여기 올린 뉴욕 필 연주도 좋지만 최근에 구성된 모란봉 악단이 연주하는 현악 4 중주도 좋습니다. 그거 대신 뉴욕 필을 올린 이유는 뉴욕 필 동영상에 유일하게 인공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태극기와 함께 선 보는 자리인데 걸 프랜드(인공기) 데리고 나타나면 모양이 이상하지요.

맨 위에 올린 불가리아 민요는 아무리 들어봐도 애국가와 앞대가리만 비슷할 뿐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유사점이 심각한 건지는 잘 몰겄습니다. 음악가들이 그렇다니까 그런갑다 하는거지요.

개인적으로는 당시 약관 20 대 초급장교였던 박정희의 죄질보다 30 대 예술가로 고단위 부역을 한 안익태의 죄질이 훨씬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애국가라니요!! 안익태가 사용했던 지휘봉은 뉴욕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기증한다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jindalrea 2013.01.23 01:23  
상생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생한 민주주의자로 사는 것이 소망인 저는..
제 생애에 통일된 우리나라를 만나고 싶습니다..
물론 시련도 많고 혼란도 겪겠지만..
그런 날에..더 열심히.. 인간으로의 가치와 품위를 더 많이 고민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날.. 우리나라 국기와 우리나라 국가는 더욱 길이 보전할 것으로..
온 국민이 함께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sarnia 2013.01.23 11:13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념적이고 계급적인 색깔로 인해
전하고 싶은 의도가 왜곡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라는 말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창의적 상상력, 가장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은 본능에 속하는 것이지 제도적으로 통재되고 기획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싸르니아는 철저한 시장경제주의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달래님처럼요.

우리 생애에 통일은......
모두의 소망이겠으나 두 나라는 너무 많이 다른 길을 가 버렸는지라
짧은 시간 안에 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만큼 동화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 본문은 애국가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다시 이야기 범위를 좁히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나라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최상의 가치란
나라 자체의 결속이나 단결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균형과 정의라고 생각해요.
인류의 사고력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국가의 상징력이라든가 애국심 같은 개념들은 무한소로 측소되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하구요.

national anthem 이란 것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공동체로부터 보편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불리워 진 노래가 좋은데,
이런 노래라면 작곡 작사자와 같은 출생배경에 웬만한 흠이 있더라도 그런대로 묵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안익태의 음악활동은 그가 작곡한 노래를 애국가로 묵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너무나도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것 뿐 인지도 모르지요.
뛰어난 예술가가 뛰어난 사상가여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말씀하신대로
큰 시비없이 길이 보전할 것으로
함께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배낭딸랑 2013.02.16 21:52  
국민은 통일을 바라지만 위정자들은 정말 통일을 바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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