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잖아? 단군이래 이런 시절이 어디 있었냐고?
지난 1년 동안 주말 농장이란 걸 했습니다.
흙이 좋아서 그런건 아니고, 애들 땜에, 마눌의 성화 땜에 했지요.
봄,여름,가을...일주일에 한 두시간씩 물주고, 잡초 뽑고 생각 외로 재미는 있더이다.
밭을 서너평 정도로 나누어 여러 가구가 했는데, 의외로 은퇴한 분들이 많더군요. 애들 데리고 오는 집은 딱 두 집 뿐이고 소일거리로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즉, 은퇴하고 자식들도 최소 대학생 이상인 분들이 대다수라는 의미죠. 게다가 주말농장이라는 가외의 지출을 할수 있는 약간의 아주 약간의 경제력도 있는 분들.
가끔 어쩌다가 술자리를 가질 때 나설 연령이 아니니 잠자코이야기를 듣곤 했지요.
자식 자랑, 인생 역정까지는 들을만 했지만, 어설픈 전도나 정치 얘기 나오면 짜증이 나기도 했고요.
한 가지 이상한 건, 야당은 무조건 좌파라는 생각.
하도 이상해서 FTA 같은건 좌파보단 우파쪽 경제 정책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다른 건 필요없고 그냥 노무현이가 하면 FTA도 다 좌파 정책으로 악용한다는 답변.
그런 1987년에 시민항쟁 때는 젊었을 시절인데 어떤 생각을 가졌냐고 하니까 그땐 전두환이가 좀 잘못해서 그런건데 그때는 좌파가 뭔지 잘 몰라서 그냥 시류에 휩쓸렸을 뿐이라고 답변.
데모하는 놈들이 좌파인지 알았으면 자기도 따라서 데모하지는 않았을거라 하더군요.
그럼 좌파랑 빨갱이랑(공산주의자) 뭐가 다른거냐고 물으니까...
"젊은 사람이 참 따지네, 그렇게 따지고 드는게 좌파고 거기서 종북하면 빨갱이가 되는 거야."
그럼 좌파는 나쁜 건가요?라고 물으니 꼭 다 나쁜건 아닌데 하여지간 떼쓰고 시끄럽고 나라 혼란해져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답변.
박정희나 전두환이 사람 좀 못살게 군건 있지만 그래도 "좋잖아 갸들 덕에 단군 이래 이런 시절이 어디 있었냐고?' 라며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대충 들어보니 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답이 다 나오더군요.
그곳의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이 아주 원만하고 상식적인 분들입니다. 직장 퇴직때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 남은 처세에도 무리 없는 분들입니다.
그러함에도 정치 얘기만 나오면 마치 북한 주민들을 보는 것처럼 '왠지 이상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은 새파랗게 젊은 사람도 아닌 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끽해야 10년 조금 넘으면 너도 우리꼴 난다 라며 그전에 챙길거 열심히 챙기고 뻘생각 하지 말라고 여기고 있을까요?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기 인생의 황금기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모양이라고 말입니다.
몸은 2015년을 살고 있지만 가치 판단의 준거는 고정된 시간 속에 멈추어 버리는 듯합니다.
가만 스스로를 생각해보니 내 시계는 1987년 또는 2002년 정도로 시각이 멈추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듧니다.
그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 그렇게 인간이 굳어져가는 것은 자연스런 생물학적 현상이라 부인하려 헛되이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소수는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요.)
문제는...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 역시 세상사 진리인데, 우리는 여전히 앞물결만이 앞물결이고 뒷물결은 여전히 뒤에서 아우성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듧니다.
세상이 변하면 세대도 자연스레 바뀌고, 주류 생각도 바뀌어야하는데, 완고하게 이를 붙잡고 거스르는게 문제라는 거지요.
부와 경제력, 그리고 의료 혜택에 따른 생물학적 수명 연장, 거기에 거꾸로 가는 인구 모형.(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보다 많은 현상)
세대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문제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닌가 하는....참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