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을 위한 간략한 중간정리
한국 역대 독재정권들은 외신들의 집중공격을 받고나서 얼마 못가 그 종말을 고하곤 했다. 지난 달 19 일 뉴욕타임스가 "독재자의 딸"을 향해 정조준 직격탄을 퍼 부은데 이어, 네이션, BBC, 월 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신화통신과 아시히신문, 카타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알자지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주요언론들이 일제히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1987 년 이래 28 년에 걸쳐 이 나라에서 자리잡고 성장해 온 절차적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파괴하려고 위협하고 있는 신 유신잔당을 향한 비판이지만, WSJ 같은 미국보수언론까지 공격대열에 합세하고 있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지난 1 월 신은미 씨 강제추방사건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박근혜 씨의 부아를 돋구웠던 이 보수매체가 이번에는 서울지국장 트위터를 통해 시위대를 IS 에 비유한 박근혜 씨의 정신상태가 온전한지 의심하는 듯한 조롱섞인 멘트를 날렸다.
박근혜 씨와 같은 언어(한국어)를 모국어로 공유하고 있는 싸르니아같은 사람들은 그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체 띨띨하기 때문에 얼빠진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온 것 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외국언론인의 눈에는 놀라울 정도로 희한한 소리를 지껄이는 정신나간 대통령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한국 역대 독재자들 중 미국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 했던 사람은 이승만과 박정희였다. 미국은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독주하려 했던 이 두 독재자들을 제거하려는 작전을 수립하기도 했었다. 이에 비해 전두환은 충직한 마당쇠처럼 시키는 일을 잘 수행해 줬던 독재자였다. 특히 전두환은 핵개발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미국에 제출하고 핵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한 모든 성과들을 환원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는 것에 동의하고나서야 미국으로부터 집권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12.12 사태 직후 암살특공대를 한국에 파견했다는 가짜 정보를 흘리는 등, 전두환 그룹의 집권전야 초기부터 그들을 고강도로 압박하면서 단계적으로 철저한 굴복을 유도해 나갔다.
박근혜는 어떨까?
미국에게 박 씨는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천하에 쓸모없는 멍충이같은 사람으로 찍힌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승만이나 박정희보다 훨씬 다루기가 어려운 골치덩어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작계 5015 에 관한 사전 비밀누설로 미국의 입장을 곤란하게나 만들고, 난데없이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들고나와 평지풍파나 일으키고, 쓸데없이 과잉폭력을 휘둘러 시민들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등 하는 짓마다 하나같이 예측불능인데다가, 지난 8 월에는 무슨 망조가 들었는지 북측이 하지도 않은 포격도발을 했다며 뚱딴지같은 발표를 한 후 북측에 대고 자주포 공격까지 감행하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박근혜 정권에 대한 단계적 폐기처분을 결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말을 안들어서가 아니라 도저히 함께 일할 수 없을 정도로 손발이 안 맞아서 동맹국에 의해 폐기처분된 대통령이 된다면 제국과 주변국의 종주관계사상 희귀한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권은 지금 세계주요언론의 상습적인 비판과 조롱의 표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동맹국 정부로부터 전혀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낙인찍혀 군사외교적 협조와 지원을 차단당하는 지경에 몰려있다. 박근혜 정권이 세계언론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유는 단지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 중 하나로 알려진 한국에 파시즘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시도때문만은 아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좌표가 없는 외교, 미일동맹 안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협조거부 등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이 해외매체들의 강한 호기심과 함께 묘한 혐오감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리한 메체들은 저널리스트 특유의 동물적 감각으로, 마치 지상 위에서 죽어가는 동물을 발견하고 그 위를 떠도는 까마귀떼처럼, 박근혜 정권을 내려다보며 떼를 지어 선회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은 사면초가에 몰리게 된 한국의 집권세력의 딱한 처지가 통치조직의 무능과 disorganizing 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침몰하고 있는 한국경제가 그 본질적 배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계부채와 수출감소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엔진이 꺼진 배처럼 파산위기에 몰린 대한민국호에서 일등실 승객, 즉 상류층만을 구조하기 위한 구명정을 만드는 작업이 노동개혁을 비롯한 피시스트적 정책들의 도입이라는 점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은 외교에서는 좌표가 없는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일관하다가 동맹국으로부터는 차임을 당하고, 국내정책에서는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에서 부자들만 구조해서 탈출시키기' 라는 최악의 비인도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온 나라를 내전상태로 몰고가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움직이는 밀실의 '환관'들이 아무리 무능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토록 총체적 파국적 상황을 초래한 것인지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