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독일방문 에피소드(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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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독일방문 에피소드(펌)

kairtech 9 293
가족들에게서는 연락이 잘 옵니까』

『일은 고달프지 않습니까』

陸여사가 세 번째 간호사와 악수를 하면서 『고향이…』라며 말을 건넸다. 아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陸여사의 입에서 『고향』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간호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신호가 돼서 간호사, 광부 할 것 없이 울기 시작했다. 음악을 연주하던 광산 악대도 꺽꺽거리며 울었다. 벌써 행사장인 강당 중간쯤에 가 있던 朴대통령은 뒤를 돌아보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인 陸여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주저앉으려 했다. 주위에서 간신히 陸여사를 부축했다. 朴대통령을 따라 강당 안으로 들어갔던 기자들은 이 광경을 취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들은 카메라를 내려 놓고 함께 울었다. 취재기자들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독일인 광산회사 사장도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10분 이상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朴대통령 내외는 단상에 올랐다.

광부들로 구성된 樂隊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朴正熙 대통령의 先唱으로 시작된 애국가는 뒤로 갈수록 제대로 이어지지를 못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가 후렴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합창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마지막 소절인 『대한 사람 대한으로』에 이르러서는 가사가 들리지 않았다.

함보른 광산회사 테드 호르스트 영업부장이 환영사를 읽었다. 그는 『한 나라 국가원수가 이곳을 찾아 준 이 역사적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광부들의 근면함과 규율을 칭찬했다.


朴正熙,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이라도 닦읍시다』

그의 차분한 환영사로 식장의 분위기가 겨우 진정됐다.

朴대통령이 연단으로 올라갔다. 朴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푼 다음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시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원고를 덮어 버렸다. 朴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흐느낌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朴대통령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됐다.

朴대통령은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선물로 전했다. 30분 예정으로 함보른 광산에 들렀지만, 강당에서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朴대통령은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강당 밖으로 나온 朴正熙 대통령 일행은 광부들 숙소를 돌아 봤다.

우리 광부들의 얼굴과 팔·다리 등에는 상처투성이였다. 채탄 작업 중 부러진 드릴이 튀어 오르는 바람에 입은 상처들이었다. 『지하 1000m 아래에서 採炭(채탄) 작업을 하고 나서 갱 위로 올라와 한잔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지만, 한국인 광부들은 그 돈도 아껴 본국으로 송금한다』는 얘기를 朴대통령은 들었다.


광부들 탄가루 묻은 손을 내밀어

광부 대표 유계천씨는 『異國 땅에서 대통령 내외분을 뵈니 친부모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면서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독일에 남아 일할 수 있게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朴대통령 내외가 함보른 광산을 떠나려는데 한국인 광부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작업복 차림의 광부들이 많았다. 그들은 朴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朴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는 한국인 광부들에게 가로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차 안의 朴대통령은 계속 울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뤼브케 서독 대통령은 『울지 마세요. 우리가 도와줄 테니 울지 마세요』라며 朴대통령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본의 숙소에 도착한 朴대통령 내외는 한국일보의 鄭光謀(정광모·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기자를 방으로 불렀다. 朴대통령과 陸여사는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鄭기자가 『울지 마세요. 저녁에 파티가 있는데 울면 어떻게 합니까』라며 대통령 내외를 위로했다.

그러자 朴대통령 내외는 鄭기자를 붙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한참만에 눈물을 그친 朴正熙 대통령은 鄭기자에게 두 가지 다짐을 했다.

『기왕에 정해진 동남아 순방만 마치고 나면, 우리 국민들이 밥술깨나 들게 될 때까지는 외국에는 나가지 않겠다』

『우리 국민들이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 만들어야겠다』
 
전에 읽어보았던글입니다
 

9 Comments
필리핀 2012.10.12 05:40  
저 시기는 다 못 살고
다 애국자이던 시절이지요...
북한보다도 못 살았지요 아마???
kairtech 2012.10.12 23:25  
그당시 파독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사독에서 차관을 들여와
경부고속도로공사를 건설했다고
세계 어느나라도 한국에 차관제공을 하려는 나라가 당시엔 없었답니다

독일 방문때  노스웨스트항공의 전세기를 타고가려했지만 미국의 방해로
당시 서독 대통령이였던 뤼프케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기를 보내와 방독을 했답니다

그딸이 대통령하겠다고 그러는데
부모를 뛰어넘는 자식은 그리많지않은데.....
다람쥐 2012.10.14 18:29  
무슨 뜻으로 박정희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글들을 올리는지 모르겠지만!

박정희가 아직도 살아있었다면,

태사랑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독제를 위해 국민의 외국(해외란 말은 일본에서 건너온말임) 진출을
철저히 차단했던 자!

박정희가 아니였다면 제외교포 분들이 지금보다 몇십배는 많았을 것이고
그만큼 한국의 국력은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나라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죽고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배우고 느끼고 진출하고 나서
된것입니다.

SM 의 이수만의 경우도 그분이 미국에서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의 한류를 만들지 못했겠죠.
kairtech 2012.10.14 19:59  
fact 를 근거로  자기주장을해야 설득력이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시면 합리적인 결과도출이 힘들겠죠
sm 이수만씨  가수하다  인천 월미도에서  헤밍웨이라는 카페도했었는데
한개인의  성공엔  다양한 변수가있습니다
실패한사람에게도  다양한변수때문에 갈림길에서  갈라서곤하죠
같은 비행기안에서도  추락사고때  살아남는 사람이 있듯이

특별한뜻 없습니다
다만  요즘 대통령들  특히 2mb  3mb(형님) 하는짓이  맘에안들어서
이런일도  있었다  그정도로  이해하세요
다람쥐 2012.10.15 16:39  
Fact 좋아하시는 kairtech 님 위 글은 어디서 읽은 글이고
그글을 쓴사람은 녹취록이나 동영상 있는지 확인은 해보셨나요.
이런일도 있었다 라는데
전 못믿겠습니다.
Fact 를 보여주세요!
제가 보기에는 카더라 통신 수준의 박정희 띄우기입니다.
MDNA 2012.10.16 17:23  
저도 동감합니다...  녹취록 동영상. 어느순간 이런글이나오면 와~~ 박정희 대단하구나~ 하는 50대 60대만 있지.. 저일이 사실이였는지는 잘..
kairtech 2012.10.16 21:31  
요즘  유행하는 카더라통신수준의 글이라면 여기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박정희=독재자
그이상도  이하도  모르는게  정신건강에  좋겠죠
아는만큼  보이는거니까요

부정적인자료는  웬만한 하드디스크 하나는 채울만큼 있을겁니다

다만  그당시  저런일이  있었다정도는 알고가는것도
그때 파독 광부 간호사분들이  귀국해서  남해에  독일마을을 이루어  살아간다는것도
상식선에서는  알고지내면  손해볼일은  없겠죠

박정희 옹호하고  찬양하는거  아니래도  자꾸  답글달게하네요
세일러 2012.10.16 23:29  
필리핀님 말씀대로, 그 시기에는 모두 못살고 모두 애국자였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많이 잘살아졌지만, 여전히 그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애국자인 시절입니다~ ㅎㅎ

박정희 서독방문이 1964년이고, 당시에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살았습니다.
1970년대 넘어와서야 가까스로 남한이 북한을 따라잡기 시작했구요.

찢어지게 가난했던 64년, 만리타국에 광부로 나와 목숨걸고 일하는 자국민을 만난 대통령의 심정이 어찌 편했겠습니까. 독재자여부를 떠나서 말이죠. 아마 위의 글에서 나온대로 광부들과 대통령내외가 울었던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차관 얻으러 갔던 것도 사실이구요.
http://youtu.be/MtBmvB3tACs
<박정희 서독방문 뉴스영상>
http://youtu.be/FJJeFfpi7Ag
<광부만남 증언>

물론 상당부분 미화와 과장이 섞여있을 것이라 봅니다만. (요즘 전략적으로 이런 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개인의 기억이란 자신의 입맛에 맞게 너무나 쉽게 선별적 선택적으로 기억되고 왜곡됩니다. 똑같은 사실을 놓고 여러 사람이 얼마나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지 구로사와감독의 걸작 "라쇼몽"을 보면 잘 나타납니다.

위 영상에서의 증언도 다분히 개인의 감상적 기억으로 포장된 부분이 많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현장의 분위기가 숙연하고 눈물 쏟는 분위기였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가능합니다. 뉴스영상에 영부인의 눈물이 보이듯이 말이죠.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룬 주역으로, 아니 박정희였기에 가능했다는 식의 미화는 거부합니다만, 경제발전을 위해 그가 노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에피소드도 아마 상당부분은 사실일 것이라 생각하구요. 박정희 시절에 북한보다 더 잘살아지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YS때 파탄난 경제를 딛고 DJ 노무현을 거치며 명실상부 선진국에 진입하는 그야말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는데, 그걸 인정 못하고 "경제가 죽었다"고 거품을 물고 좌파라고 비난하는 것은 참 불편한 현실입니다. 철저하게 계획-통제경제를 실시했던 박정희의 경제정책이야말로 오히려 좌파에 더 가깝죠.

박정희의 망령은 이제 그만 배회하고 잊혀질때가 된 것 같습니다. 12월 19일이 지나면 대한민국이 완전히 그로부터 벗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여우야여우야 2012.11.12 20:43  
박정희의 경제성장과 유신.. 은 박근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문재인의 정치력이 뇌물먹고 자살한 노무현과 관련 없고, 안철수의 정치력이 친일파 조부와 관련 없듯이...

그냥 그 사람을 보고 표를 던지면 됩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