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갈리아를 지지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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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갈리아를 지지한다 1

필리핀 5 212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 바다에 묻히고 국민은 “개돼지”가 된 마당에, 더 이상 놀랄 뉴스가 있을까. 하지만 한국 사회 일부 구성원, 특히 진보 진영을 포함한 자타칭 오피니언 리더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발상은 여전히 충격의 연속이다. 온라인 여성주의 그룹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샀다고 해서 회사 쪽으로부터 모종의 ‘조치’를 당한 여성, 이에 대한 정의당의 논평과 그 철회, 티셔츠 자체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분노는 우리 사회의 성별 관계, 진보, 사회운동, 미디어 등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은 ‘제3자 개입’을 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게임업체 넥슨은 성우 김자연씨에 대한 ‘조처’(7월19일 교체)가 남성 소비자의 항의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모든 소비자가 남성일 리는 없지만,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회사 쪽의 사정을 이해한다. 그녀를 ‘교체’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했는지 모르지만, 기업도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재 김자연씨의 블로그에는 그녀의 입장이 정확하고 차분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http://blog.naver.com/knknoku/220766463634). 그녀는 여느 여성들처럼 “혐오에는 혐오로 대응한다”는 일부 메갈리안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상식적 차원의 성 평등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티셔츠를 구입했다. 그녀는 “회사 측으로부터 충분한 배려를 받았고 녹음은 지난달 이미 다 마친 상태이며,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부당해고라는 말은 삼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다. 나 역시 그녀가 이번 일로 더 이상 구설에 오르거나 난처한 입장에 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경험이 있고, 이런 일이 개인적 차원에서는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그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넥슨으로부터 교체당한 여성 성우 김자연씨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 김자연 트위터 갈무리
넥슨으로부터 교체당한 여성 성우 김자연씨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 김자연 트위터 갈무리

 

지난 7월20일, 넥슨의 ‘조치’에 대해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왜 노동위원회가 아닐까?)는 “기업의 노동권 침해”라는 논평을 냈다. 철회 이유와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사자가 해당 회사와 원만하게 합의했으므로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둘째, 처음 논평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이 친메갈리아인가 아닌가라는 수많은 논쟁만 야기하고 부당한 노동권의 침해라는 본 취지의 전달에는 실패하였다. 셋째, 논평의 발표 과정 중 당 내부에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2016년 7월25일 정의당 3기 상무집행위원회).

 

나는 이들의 철회 이유를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티셔츠 한 장으로 대다수 남성들이 그토록 흥분하고, 공당(公黨)은 입장을 바꾸고, 여론은 들끓는 이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어이가 없어서’는 두 번째 문제고, 이 일 자체가 ‘아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만 원짜리 의류 구입, 이것이 왜 그토록 문제인가.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소비자(남성)의 입장을 고려하는 기업 정신’은 그렇다 치고, 이에 대한 항의 논평을 철회한 진보정당은 누구의 눈치를 본 것인가. 만일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그때도 당사자 핑계를 댈 것인가. 당사자가 기업에 저항한다면, 말리기라도 할 것인가.

 

노동계에서 오랫동안 논쟁 의제였고 공권력의 악용으로 많은 진보 인사들을 ‘불순 세력’으로 몰았던 ‘제3자 금지법’은 이제 없다. 그런데 여성은 노동자가 아니어서일까. 정의당은 ‘제3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하고 ‘반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성 노동자는 어떤 일을 당해도 개입하지 않겠다? 정의당의 원칙, 그야말로 정의에 위배되었는데도 단지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논평을 철회한다면, 이 정당은 개인주의 정당이거나 자유주의 정당이지, 노동자의 당파성은커녕 정책 정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의당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당사자가 아니라 기업이 아닐까.

 

두 번째 이유는 더욱 이상하다. “부당한 노동권 침해라는 본 취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첫 번째 항의 논평을 철회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사건은 메갈리아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이것은 단지 “정치적 의견이 직업 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첫 번째 논평 제목처럼, 노동권 문제다. 이 사건은 정의당의 메갈리아 지지 여부를 묻는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은 명백한 노동 문제를 젠더 이슈로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 노동자의 티셔츠 구입은 젠더 문제이자 노동 문제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당하는 차별에 집중해야지, 일반 남성들의 ‘대중정당’ 요구에 동일시하는 자세는 진보정당 활동을 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가. 노동자, 대중, 시민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정의당은 스스로 자신들은 메갈리아 지지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듯하다.

 

일부 여론은(메갈리아에 반발하는 남성들) 티셔츠 한 장으로 기업과 정당을 쥐고 흔들며, 타인의 정치적 의견에 판관을 자임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독점하며, “할 말을 해왔던” 이들의 “넌 누구냐”라는 정체성 심문(審問) 폭력에 정의당은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 “정치적 의견”이란, ‘고작’ 티셔츠를 샀는가다. 티셔츠의 문구는 ‘겨우’ “우리에겐 왕자가 필요 없어”(Girls do not need a prince)였다. 이 티셔츠보다 수백만 배는 많이 입는 일상복, “날 원해?”(You want me?), “오늘 밤 널 느끼고 싶어”(I wanna feel you, tonight), “PLEASE, FUCK ME!”라고 쓴 ‘평범한’ 옷을 입은 여성이 해고되었다는 뉴스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여성이 이런 옷을 입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자본과 진보의 강고한 남성연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진보는 언제나 진보이기 전에 남성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재개념화되어야 할 용어 중 하나가 “진보”다.

 

 

일베에 대항한 유일한 집단, 메갈리아

 

나는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문화 권력과 혐오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는 매체의 발달과 매체가 곧 새로운 담론과 몸의 확장을 만들어낸다는 연구(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시급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나처럼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시민권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 일베는 기존의 온라인(가상 세계)과 오프라인(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다. 동시에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정치(익명성, 동시성, 극한의 폭력성 등)를 실험하고 있다.

 

나는 일베가 남성 하위문화, 실업으로 인한 좌절, 여성 지위 ‘향상’에 대한 반발의 산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일베 헤비 유저 출신의 <한국방송>(KBS) 수습기자 사건이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한국의 평균 혹은 그 이상 수준의 남성들이다. 일베 사용자 중에는 ‘찌질남’도 있지만 지구화 시대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민하는 새로운 건국 세력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익 시민사회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데올로그들, ‘엘리트’들이다. 한국과 같은 식민 지배 이후의 사회(포스트 콜로니얼, post-colonial)에서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아직 완전한 주권 회복이 안 되었다는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국가상, 건국(nation-building) 전략을 제시하고 그것이 정치적 전선을 독점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신임 대통령들의 취임사를 검토해보면, 하나같이 이전 정부와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강력한 결의가 등장한다.

 

일베는 ‘중요한’ 집단이다. 일베의 주요 혐오 대상은 여성, 호남 사람,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한국적이면서도(호남) 전통적인 사회적 약자(여성, 장애인)이다. 주목할 점은 일반 복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을 “맘충”(mom蟲)으로 부르거나 세월호 유가족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일베가 보기에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번영의 발목을 잡은 ‘충’(蟲)들로서, 솎아내야 할 비(非)국민이다. 이전의 군사독재 시절이나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구조’가 아닌, 자신을 국가의 대표로 자임하는 ‘개인’들이 다른 사회구성원을 극단의 혐오와 비하의 논리로 배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베가 멸시하는 대상 중 거의 모든 정체성이 겹치는 나는, 아직은 국가의 역할을 묻고 싶다. 특정 소수가 대다수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국가는, 정당은, 진보 세력은, 시민단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기들은 일베가 싫어하는 이들이 아니어서 가만히 있는가. 나는 그들이 두렵다. 일베 현상을 연구하자는 동료들이 많은데, 모두들 공포에 발을 뺀다. 이제까지 그 어떤 대의 기관도 일베에 맞선 이들은 없다. 누구도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메갈리아는 일베가 짓밟은 사회 집단 중 조직적으로 대항한 유일한 ‘당사자 집단’이다. 일베의 전라도 혐오에 ‘경상도 혐오’로 맞선 사례가 있으나 당사자 조직이나 커뮤니티 형식은 아니었다. 일베는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면전에서 ‘폭식 투쟁’을 하고, 광주민주화운동 사망자의 시신을 ‘홍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여성들의 용기가 특출해서가 아니다. 일베가 솎아내고 싶은 비국민 중에서, 집단의 크기가 가장 크고 어느 정도 자원과 인식을 가진 여성들이 그나마 이들에 맞설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들이 바로 ‘여자 일베’냐 ‘새로운 여성운동 세력’이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메갈리아다. 국가와 진보 남성들은 메갈리아 뒤에 숨었다. 아니, 국가와 시민사회는 일베와 같은 남성으로서 교직(交織)된 존재이다. 강남역 사건까지 겪은 여성들은 말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정부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고/않고, 진보정당은 비판 논평을 철회시킴으로써 메갈리아 티셔츠를 구입한 여성 성우를 교체한 기업에 동의했다. 내가 이번 ‘티셔츠 사태’에 절망한 이유는 지난 25여년 동안 경험한 바지만, 국가-우파-좌파 사이의 이념(이 있기는 한가?)과 계급을 초월한 성의 단결, 즉 남성연대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기업이나 무능·부패한 정부가 아니라 여성과 싸우고 있다. 왜? 그들이 좋아하는 ‘정치경제학’ 논리로 보자면, ‘진보’ 이전에 ‘남자’일 때 더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일베의 폭력, 자신감, 신념, 막말은 마치 무정부 상태의 거칠 것 없는 주인공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메갈리아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듭 묻는다. 누가 일베에 맞섰는가?

정희진(여성학자)​

5 Comments
인레 2016.07.30 16:36  
메갈리아의 존재 의미라면 한가지 있겠네요. 여성 쪽에서도 일베와같은 개쓰레기 집단이 나올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
천억맨 2016.07.30 20:34  
현제 있지않나요?
일배와 거의동급 행위를 하는 아줌마 모임안가?어머니 모임 인가 하는....
현존 하는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여성들의 입베모임......
인레 2016.07.30 16:40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중오하는 한남충 이건희 한테는 왜 찍소리 못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삼성본사 앞에서 가서 난리쳐야 하는거 아닌가? 이건희가 여성을 성상품화 시키는 성매매 사건에 관련있는데. ㅋㅋㅋ  결론은 메갈리아 = 일베 ==> 쓰레기 집단이란것. 더 말할필요도 없는 것임. ㅎㅎ
헤르메스2 2016.08.11 17:00  
참 어려운 문제인거 같습니다.
주주영 2016.09.03 17:30  
어려운 문제 같아요 여러생각이 많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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