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분노가 폭발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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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국민들, 특히 보수세력에게 ‘검은수요일’로 역사에 남을만큼 참담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달 일본이 그랬듯이 오늘은 백악관이 국빈방문한 한국 대통령을 철저하게 가지고 놀았다.
MSNBC 는 북핵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연구소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발표된 이른바 워싱턴선언을 가리켜 ‘(앞으로 분노가 폭발할)한국국민들을 진정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는 상징적 선언 이상의 의미가 없으며 아무런 군사적가치가 없는 공수표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보수전문가집단조차 이 회담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승리이며 승리의 핵심은 ‘독자적으로 핵개발을 하려 했거나 말끝마다 확장억제 운운하며 징징대왔던 윤석열 정부의 dalliance(이리저리 해롱대며 쓸데없는 짓하기)에 쐐기를 박은 점 이라고 정리했다.
미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부문에서 한국기업들을 고사시키고 기술을 탈취해 가려는 목표를 차곡차곡 달성해 가는 과정에서 한국정부측의 하소연을 단 한 가지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다루기 쉬운 윤석열 대통령을 자기 손아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족쇄를 채우는 놀라운 외교적 대승을 거두었다.
바이든 대통령측은 외교적 대승이 예견된 상황을 계산하면서 한국의 국빈사절단이 도착하기 직전에 2024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워싱턴선언이 발표되기도 전에 핵심내용을 중국측에 전달하는 등, 한국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외교적 결례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한국계로서 가장 분노했던 일은, 이미 한류컨텐츠로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고 있는 넷플릭스를 정상회담의 조연으로 출연시켜 이미 예정된 투자를 한국측에 선사하는 선물인것처럼 재포장하여 한국국민들을 기만하면서 사실상 조롱한 사건이었다.
그건 그렇고,
도청정보유출사건으로 피해국인 한국보다 가해국인 미국이 더 시끄럽던 이 달 초중반, 나는 한국을 방문했었다.
전대미문의 전쟁위기와 경제대몰락의 위기에 처한 고국의 안위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한국교회의 부활절예배에 참석했다.
형식과 위계, 체면같은 것을 중시하는 현지문화를 존중할 필요가 있으므로 혹시 교회집회에 참석하는 드레스코드가 따로 있는지 확인했으나 굳이 정장을 입을 필요는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숙소에서 이동이 편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부활절 예배에 참석할 교회 후보를 다음과 같이 물색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명동대성당 (로만 캐톨릭)
서울 중구 저동에 있는 영락교회(예장합동)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향린교회 (기장)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안동교회(예장통합)
이 중 영락교회는 규모가 큰 개신교 교회이고, 숙소에서 도보로 이동할만한 가까운 거리여서 강력한 참석 후보지로 올렸으나 결국 후보에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이 교회는 정부에 소속된 군사조직이 아닌 민병대, 즉 민간인들로 구성된 무장단체 중 무고한 민간인들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잔혹하게 학살한 단체로 알려진 ‘서북청년회’의 산실 역할을 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서북청년회는 해방정국판 탈북자 단체였다. 이 탈북폭력단체에서 활동한 탈북 기독교청년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한 사람이 이 교회의 초대교역자 한경직 목사였다.
한목사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해서는 참회를 했는데, 자신을 정신적 지주로 받들어 모시던 탈북폭력단체가 3 만 여 명의 민간인을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한 사건을 주도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별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은 교역자가 세우고 성장시킨 교회의 부활절집회에 참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 째 이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 였는데, 바로 이 날 이 교회 부활절 집회에 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꼴도보기 싫어하는 인간 부부가 참석한다는 뜬금없고도 황당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나로하여금 구국기도를 위한 부활절집회에까지 참석하도록 만든 장본인들과 함께 같은 장소 집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 날 오후 명동에도 나가볼 겸 이 교회앞을 지나가 보았는데, 역시 교회앞에는 사복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한 경찰공무원은 아닌듯한 사복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이들 교회 중 안동교회를 낙점했다.
어린 시절 이 교회 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곳이다.
부활절 예배 후에는 교회에서 제공한 불고기덮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교회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고택에 초대받아 다과를 했다. 이 교회 장로이기도 한 윤 전 대통령 장남(윤상구)이 부활절 집회 참석자 전원을 고택으로 초대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부활절 특식으로 와인 한 잔씩과 쌀과자 하나씩을 참석자 전원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