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이 곁에서 지켜본 박근혜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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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11:26
전여옥씨 기고 '내가 모신 박근혜…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
그는 점잖은 노신사였다. 언론계에서 누구나 알 만한,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웠던 원로 인사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무렵 그가 만나자고 했다. "꼭 할 이야기가 있으니 시간을 내주세요."
만나자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며칠 밤을 고민했어요." 한숨부터 쉬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면 박근혜 후보를 도와야겠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도저히… 그러니 전 의원이 나서주세요."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과 막역하셨는데 무슨 이유로?"
"최태민 일가 때문이죠. 만일 박근혜 후보가 된다면 이 나라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닐 거요. 정윤회는 비서실장을, 최순실은 부속실장이 돼서 국정을 갖고 놀 것이 분명해요." 그때 이미 나는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깜짝 놀랐다.
정치인의 생활은 '어항 속 금붕어'처럼 환히 공개돼 있다. 그러나 정치인 박근혜의 생활은 철저히 미스터리였다. 검은 천으로 어항을 감싼다 해도 어항이라는 '감'은 잡힌다. 그러나 정치인 박근혜의 경우는 아예 '정전 상태(black out)'였다.
그러니 당대표가 됐을 때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의 불만이 컸다. 그래서 이른바 '박근혜 대표 오픈 하우스'를 했다. 대개 유력 정치인의 집은 기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으나 박 대표는 집 개방 자체가 뉴스였다. 당 대변인이었던 나 역시 그때 처음 가봤다.
30대 초반쯤 되는 여성 둘이 음식을 날랐다. 처음인데도 낯이 익었다. '도대체 어디서 봤지?' 그러나 잘 알 수 없었다. 출입기자 수가 많다 보니 여러 차례 집 공개를 했다. 나는 매번 참석했고, 늘 접대는 그 두 여성이 했다.
"저분들 누구예요? 음식점에서 나온 분들 같지는 않고…." 박 대표 비서에게 물었다. "친척이에요."
몇 달 뒤 박근혜 대표가 유세 중 '커터 칼 테러'를 당했다. 수술이 끝난 뒤 박지만씨 부부가 왔다. 박 대표 집에서 본 그 두 여성도 나타났다. 박근혜 대표의 속옷과 겉옷 등을 가지고 왔다. 나는 얼굴을 알기에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때 박지만씨가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 누구예요? 당 직원인가요?"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친척이라면서요?" 박지만씨는 "네? 그럴 리가…. 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요"라고 했다. 두 여성은 속옷과 겉옷을 빠짐없이 챙겨왔다. 집안 살림을 속속들이 아는 듯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지? 한참 그 여성들을 바라보다가 움찔하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최순실하고 똑같이 생겼구나."
20년 전 기자 시절 최순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야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명의 중년 여성과 함께 왔다. 비주얼로는 딱 공주와 상궁들이었다. 그 가운데 한 여성은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유난히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프로그램 작가에 물었다. "도대체 누구예요, 저 여자?" 작가가 말했다. "저 여자가 바로 최순실이잖아요." 단 한 번 본 최순실씨를 떠올릴 정도로 박 대표 집에서 봤던 두 여성은 최씨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지금도 모르지만 아마도 최씨의 친척 누구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정윤회씨도 봤다. 작가로 일할 때 국회 의원회관으로 찾아갔는데 사무실에 있던 정씨는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오만함이 불쾌할 정도였다. 인터뷰를 주선해준 사람이 내게 말했다. "정 실장이 OK 해서 된 거예요. 정 실장 거치지 않으면 박근혜 의원과 전화 한 통도 안 돼요."
기자들은 대변인인 내게 물었다. "맨날 박 대표가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강남팀 정윤회씨죠?"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 실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이상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번은 야당 모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돈을 숨겼다. 박근혜 후보도 그 사실을 안다"고 주장했다. 말 한마디가 민감한 선거 때였다. 나는 박 대표에게 전화했다.
박 대표는 "에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두세요. 별일 아닌데요, 뭘."
나는 그 말을 도저히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할 수 없어 고민했다. 그런데 10분쯤 뒤 박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음성에 노기(怒氣)가 가득했다. "세상에 그런 터무니없는… 반드시 법적으로 고소하겠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 "그냥 두세요" 했다가 10분 만에 화가 나서 펄펄 뛸 수 있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대표가 기자들과 만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여당과 전면전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물론 기자들도 화들짝 놀랐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으니까. 그런데 그 발언이 참 뜬금없고 한마디로 '왜?'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자들은 보고 전화를 하러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그런데 '전면전'을 선포한 박 대표 얼굴은 정말 해맑았다. '영혼 없는 전면전' 선포라고나 할까. 예의 따스한 미소를 짓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기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상황 판단을 저렇게 못 할 수 있을까? 그럼 '전면전'이란 단어는 무슨 생각으로 쓴 걸까?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가 일러준 단어를 외워서 말한다는 느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대(對)언론용 언급을 챙기고 옷과 살림을 도맡았다.
그렇다면 그들을 왜 숨길까. 박지만씨도 본 적 없는 '친척들'이 집안일을 돌보고 최순실 부부는 비선 팀을 움직이고 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음산한 분위기가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말이다.
최태민은 범죄자였고 파렴치한 사람이었다. 사이비 종교 장사꾼이었다. 영애 박근혜를 앞세워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다. 그것이 팩트(fact)였다. 도저히 햇빛 아래 나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 숨겨야만 하는 그늘과 어둠의 사람이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한 기자가 박 대표와 인터뷰하며 '용감하게' 물었다. "최태민씨는 비리를 저지르고 박 대표를 이용했다는 말이 있던데요." 그 순간 박 대표 목에 파란 힘줄이 선명하게 솟았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분은 저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어요. 아버지가 조사도 했지만 드러난 것이 전혀 없어요." 그 뒤에도 최태민에 대해서는 "다 음모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말을 못 하냐"고도 했다.
보통사람이라면 내칠 사람을 그녀는 가슴에 오래 담고 있었다. 즉 박근혜 대표의 가족은 박지만씨도 박근령씨도 아니었다. 최태민씨 일가였다. 박 대표는 '최씨 패밀리'라고 해야 어울릴 정도였다. 그리고 최씨 일가와의 이상한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쉬쉬해오던 스캔들이었다.
결국 나는 이런 '박 대표가 대통령 되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최씨 일가가 활개 칠 것이고 나라는 위험해질 것이다. 내 고민은 깊었다. 괴롭고 힘들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대통령 후보의 진짜 모습, 그 실체를 밝혀야 마땅했다. 국민은 멀리서만 본다. 당연히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부모 없는 불쌍한 박근혜'를 지켜줘야 한다고, 그러니 대통령으로 뽑아줘야 한다고,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있을 거라고 믿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이 기막히고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불쌍하다고 대통령을 뽑아주면 국민이 불쌍해진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뽑으면 나라가 어둠에 갇히게 된다. 나는 국민도 문제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을 원하면서 대통령은 불쌍하다고, 어떤 아버지의 딸이라서 표를 준 국민도 문제였다.
그러나 더 나쁜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이었다. 야당은 무능했고 새누리당 친박은 '참 나쁜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이 몰랐다고? 개와 소가 웃을 이야기이다.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박들은 권력 나눔, 즉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약점 있는 대통령이라면 더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 마음껏 조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제회의에서 프롬프터를 보며 영어 연설에 몰두하는 '순수한' 여성 대통령을 바라보며 그들은 은밀한 웃음을 나눴을 것이다. 문고리 3인방하고만 통하면 되니 이 또한 얼마나 간편한가? '편의점 정치'였다. 정치와 연을 끊은 뒤에도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박근혜 정부 장관 노릇처럼 쉬운 게 없다."
저녁 6시가 되면 대통령은 관저로 들어간다. 대통령만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겼다. 모든 것은 보고서로 보고받았다. 장관은 전화만 잘 받으면 된다. 만날 일이 없으니 대기할 필요도 없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질문을 하려면 사안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특히 대면 보고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받기만 하는 것이다. '불통의 정치'가 아니라 '수동태의 정치'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최순실씨는 박쥐처럼 동굴 속의 권력을 잡은 것이다.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라고 했다. 부모를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며 어린 처녀를 보쌈하듯 이용한 최씨 일가의 인질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그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리고 65세이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의 65세 여성들은 그 어떤 남자보다도 용감했다. 독립적으로 삶을 개척했다. 동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했다. 유신의 사고와 독재의 사고로 권력을 사용(私用)했다. 은밀하게 청와대를 출입해도 문제가 될 판인데 연설문 유출에 외교·안보 기밀까지도 최씨 손에 건네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참담함과 창피함이 왜 우리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주군'과 '충성'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없어져야 한다. 윗분 심중을 잘 헤아린다고 몸값이 올라가는 '몸종 정치인'도 없어져야 한다. 배신의 트라우마에 몸을 떠는 사연 많은 대통령은 그만 뽑아야 한다. 나는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혔다. 박근혜 측근들도 나를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조롱했다. "완전히 나가떨어졌다'고 내 처지를 표현한 기자도 있었다. 옳은 말이다. 나는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배신했다. 끝까지 반대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나라 국민을 배신하지는 않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만나자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며칠 밤을 고민했어요." 한숨부터 쉬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면 박근혜 후보를 도와야겠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도저히… 그러니 전 의원이 나서주세요."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과 막역하셨는데 무슨 이유로?"
"최태민 일가 때문이죠. 만일 박근혜 후보가 된다면 이 나라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닐 거요. 정윤회는 비서실장을, 최순실은 부속실장이 돼서 국정을 갖고 놀 것이 분명해요." 그때 이미 나는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깜짝 놀랐다.
정치인의 생활은 '어항 속 금붕어'처럼 환히 공개돼 있다. 그러나 정치인 박근혜의 생활은 철저히 미스터리였다. 검은 천으로 어항을 감싼다 해도 어항이라는 '감'은 잡힌다. 그러나 정치인 박근혜의 경우는 아예 '정전 상태(black out)'였다.
그러니 당대표가 됐을 때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의 불만이 컸다. 그래서 이른바 '박근혜 대표 오픈 하우스'를 했다. 대개 유력 정치인의 집은 기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으나 박 대표는 집 개방 자체가 뉴스였다. 당 대변인이었던 나 역시 그때 처음 가봤다.
30대 초반쯤 되는 여성 둘이 음식을 날랐다. 처음인데도 낯이 익었다. '도대체 어디서 봤지?' 그러나 잘 알 수 없었다. 출입기자 수가 많다 보니 여러 차례 집 공개를 했다. 나는 매번 참석했고, 늘 접대는 그 두 여성이 했다.
"저분들 누구예요? 음식점에서 나온 분들 같지는 않고…." 박 대표 비서에게 물었다. "친척이에요."
몇 달 뒤 박근혜 대표가 유세 중 '커터 칼 테러'를 당했다. 수술이 끝난 뒤 박지만씨 부부가 왔다. 박 대표 집에서 본 그 두 여성도 나타났다. 박근혜 대표의 속옷과 겉옷 등을 가지고 왔다. 나는 얼굴을 알기에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때 박지만씨가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 누구예요? 당 직원인가요?"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친척이라면서요?" 박지만씨는 "네? 그럴 리가…. 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요"라고 했다. 두 여성은 속옷과 겉옷을 빠짐없이 챙겨왔다. 집안 살림을 속속들이 아는 듯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지? 한참 그 여성들을 바라보다가 움찔하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최순실하고 똑같이 생겼구나."
20년 전 기자 시절 최순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야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명의 중년 여성과 함께 왔다. 비주얼로는 딱 공주와 상궁들이었다. 그 가운데 한 여성은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유난히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프로그램 작가에 물었다. "도대체 누구예요, 저 여자?" 작가가 말했다. "저 여자가 바로 최순실이잖아요." 단 한 번 본 최순실씨를 떠올릴 정도로 박 대표 집에서 봤던 두 여성은 최씨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지금도 모르지만 아마도 최씨의 친척 누구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정윤회씨도 봤다. 작가로 일할 때 국회 의원회관으로 찾아갔는데 사무실에 있던 정씨는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오만함이 불쾌할 정도였다. 인터뷰를 주선해준 사람이 내게 말했다. "정 실장이 OK 해서 된 거예요. 정 실장 거치지 않으면 박근혜 의원과 전화 한 통도 안 돼요."
기자들은 대변인인 내게 물었다. "맨날 박 대표가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강남팀 정윤회씨죠?"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 실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이상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번은 야당 모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돈을 숨겼다. 박근혜 후보도 그 사실을 안다"고 주장했다. 말 한마디가 민감한 선거 때였다. 나는 박 대표에게 전화했다.
박 대표는 "에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두세요. 별일 아닌데요, 뭘."
나는 그 말을 도저히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할 수 없어 고민했다. 그런데 10분쯤 뒤 박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음성에 노기(怒氣)가 가득했다. "세상에 그런 터무니없는… 반드시 법적으로 고소하겠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 "그냥 두세요" 했다가 10분 만에 화가 나서 펄펄 뛸 수 있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대표가 기자들과 만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여당과 전면전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물론 기자들도 화들짝 놀랐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으니까. 그런데 그 발언이 참 뜬금없고 한마디로 '왜?'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자들은 보고 전화를 하러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그런데 '전면전'을 선포한 박 대표 얼굴은 정말 해맑았다. '영혼 없는 전면전' 선포라고나 할까. 예의 따스한 미소를 짓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기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상황 판단을 저렇게 못 할 수 있을까? 그럼 '전면전'이란 단어는 무슨 생각으로 쓴 걸까?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가 일러준 단어를 외워서 말한다는 느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대(對)언론용 언급을 챙기고 옷과 살림을 도맡았다.
그렇다면 그들을 왜 숨길까. 박지만씨도 본 적 없는 '친척들'이 집안일을 돌보고 최순실 부부는 비선 팀을 움직이고 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음산한 분위기가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말이다.
최태민은 범죄자였고 파렴치한 사람이었다. 사이비 종교 장사꾼이었다. 영애 박근혜를 앞세워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다. 그것이 팩트(fact)였다. 도저히 햇빛 아래 나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 숨겨야만 하는 그늘과 어둠의 사람이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한 기자가 박 대표와 인터뷰하며 '용감하게' 물었다. "최태민씨는 비리를 저지르고 박 대표를 이용했다는 말이 있던데요." 그 순간 박 대표 목에 파란 힘줄이 선명하게 솟았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분은 저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어요. 아버지가 조사도 했지만 드러난 것이 전혀 없어요." 그 뒤에도 최태민에 대해서는 "다 음모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말을 못 하냐"고도 했다.
보통사람이라면 내칠 사람을 그녀는 가슴에 오래 담고 있었다. 즉 박근혜 대표의 가족은 박지만씨도 박근령씨도 아니었다. 최태민씨 일가였다. 박 대표는 '최씨 패밀리'라고 해야 어울릴 정도였다. 그리고 최씨 일가와의 이상한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쉬쉬해오던 스캔들이었다.
결국 나는 이런 '박 대표가 대통령 되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최씨 일가가 활개 칠 것이고 나라는 위험해질 것이다. 내 고민은 깊었다. 괴롭고 힘들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대통령 후보의 진짜 모습, 그 실체를 밝혀야 마땅했다. 국민은 멀리서만 본다. 당연히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부모 없는 불쌍한 박근혜'를 지켜줘야 한다고, 그러니 대통령으로 뽑아줘야 한다고,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있을 거라고 믿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이 기막히고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불쌍하다고 대통령을 뽑아주면 국민이 불쌍해진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뽑으면 나라가 어둠에 갇히게 된다. 나는 국민도 문제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을 원하면서 대통령은 불쌍하다고, 어떤 아버지의 딸이라서 표를 준 국민도 문제였다.
그러나 더 나쁜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이었다. 야당은 무능했고 새누리당 친박은 '참 나쁜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이 몰랐다고? 개와 소가 웃을 이야기이다.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박들은 권력 나눔, 즉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약점 있는 대통령이라면 더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 마음껏 조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제회의에서 프롬프터를 보며 영어 연설에 몰두하는 '순수한' 여성 대통령을 바라보며 그들은 은밀한 웃음을 나눴을 것이다. 문고리 3인방하고만 통하면 되니 이 또한 얼마나 간편한가? '편의점 정치'였다. 정치와 연을 끊은 뒤에도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박근혜 정부 장관 노릇처럼 쉬운 게 없다."
저녁 6시가 되면 대통령은 관저로 들어간다. 대통령만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겼다. 모든 것은 보고서로 보고받았다. 장관은 전화만 잘 받으면 된다. 만날 일이 없으니 대기할 필요도 없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질문을 하려면 사안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특히 대면 보고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받기만 하는 것이다. '불통의 정치'가 아니라 '수동태의 정치'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최순실씨는 박쥐처럼 동굴 속의 권력을 잡은 것이다.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도 피해자라고 했다. 부모를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며 어린 처녀를 보쌈하듯 이용한 최씨 일가의 인질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그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리고 65세이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의 65세 여성들은 그 어떤 남자보다도 용감했다. 독립적으로 삶을 개척했다. 동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했다. 유신의 사고와 독재의 사고로 권력을 사용(私用)했다. 은밀하게 청와대를 출입해도 문제가 될 판인데 연설문 유출에 외교·안보 기밀까지도 최씨 손에 건네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참담함과 창피함이 왜 우리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주군'과 '충성'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없어져야 한다. 윗분 심중을 잘 헤아린다고 몸값이 올라가는 '몸종 정치인'도 없어져야 한다. 배신의 트라우마에 몸을 떠는 사연 많은 대통령은 그만 뽑아야 한다. 나는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혔다. 박근혜 측근들도 나를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조롱했다. "완전히 나가떨어졌다'고 내 처지를 표현한 기자도 있었다. 옳은 말이다. 나는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배신했다. 끝까지 반대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나라 국민을 배신하지는 않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