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트럼프, 박근혜 즉각 퇴출을 지지하다
미국 대사관이 제 6 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느냐고 묻는다면 싸르니아의 대답은 '예스'다. 12 월 3 일 제 6 차 촛불집회 때 1 분 소등시간이 있었는데 시민들이소등을 하자마자 미국 대사관 건물은 마치 누가 메인 브레이커를 내린듯 건물 안 불빛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얼마나 박근혜 정부를 불신해 왔는지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미국 대사관의 지난 토요일 행동이 전혀 의외가 아니고 이상할 것도 없다.
싸르니아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 년 전인 2015 년 12 월 초, '대통령 탄핵을 위한 간략한 중간정리' 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글에서 싸르니아는 "백악관에게 박근혜 씨는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천하에 쓸모없는 멍충이같은 사람으로 찍힌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승만이나 박정희보다 훨씬 다루기가 어려운 골치덩어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전제한 뒤,
"박근혜 정권이 세계언론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유는 단지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 중 하나로 알려진 한국에 파시즘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시도때문만은 아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좌표가 없는 외교, 미일동맹 안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협조거부 등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이 해외매체들의 강한 호기심과 함께 묘한 혐오감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그 이유를 진단했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백악관은 청와대 도청 등 첩보수단을 통해 이미 그때부터 현재 수면 위로 부상한 '박근혜 사태'의 내막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 년 전, 또는 그 훨씬 이전부터 백악관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폐기처분 여부를 검토해오다가 한국에서 미증유의 시민항쟁이 발발하자 시민항쟁에 추파를 던지는 신호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제 1 차 촛불집회 때 개를 데리고 광화문 집회현장에 나타나 산책을 한데 이어, 지난 토요일에는 1 분 소등 시간에 맞추어 주한미국대사관 별관건물의 모든 전등을 일제히 소등하는 의미있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국의 어느 보수논객은 미국대사관이 광화문 시위대응 매뉴얼에 따라 시위군중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별 의미없이 건물 불을 소등했다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했지만, 그건 그 논객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만일 주목을 받지 않기위해서 였다면 대사관은 불을 끄지 말았어야 했다. 바로 옆에 번쩍이는 푸른색 조명으로 요란하게 치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물이 함께 소등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사관 건물만 느닷없이 소등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집중적인 주목을 끌었다.
참고로 세종로 동편에 위치한 미국대사관 건물은 바로 북쪽에 연달아 서 있는 쌍동이 건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물과 함께 1960 년 미국의 자금과 필리핀의 건축기술로 지어서 한국에 무상원조 형태로 제공한 건물이다.
쌍동이 북쪽 건물 창을 통해서 보이는 경복궁과 북악산 (2014 년 11 월 씨르니아)
2016 년 겨울 거대하고도 도도하게 흐르는 시민항쟁의 맥락에서 미국정부가 박근혜 정부로부터 지지를 거두건 말건 그게 예전처럼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보다는, 동맹국에 대한 고도의 정보판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국 박근혜 정권이 시민혁명에 의해 제거될 것이고,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새 정부로 교체될 것이라는 자체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시민항쟁 지지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압도적인 소등행사 참여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미국대사관은 현재 1 분 소등시간에 맟추어 소등했다는 팩트만 짤막하게 발표한 채 일체의 후속 변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자기들 입장 곤란하게 만들지말고 빨리 꺼지라는 박근혜를 향한 미국정부 나름의 경고다.
1979 년 10 월 부마항쟁이 발발한 직후 로버트 브루스터 미국 CIA 서울지부장은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극비리에 만났다. 이 자리에서 브루스터는 김재규에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카터행정부의 최종 입장을 전달했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채 안되어 10.26 사태가 발발했다.
역사는 37 년 후 그 아버지에서 그 딸로 이어져 반복되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미국이 '박패밀리 정권'과의 관계청산 의사를 한국정부 정보관계자가 아닌 항쟁시민들에게 직접, 그리고 공개적으로 전달했다. 1979 년과는 달리 현재 미국은 정권 인계-인수기에 있으므로 12 월 3 일 미국 대사관의 소등 퍼포먼스는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인수위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인식의 공유 속에서 결행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