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문재인을 완전히 잘못봤다
s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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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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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씨를 임명한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이다.
근데 그게 왜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핵심을 찌르는 목소리가 드물다.
한국매체들을 읽어보면 언론들조차 아직 자기 나라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정치의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큰 관심도 없지만,
이 사건은 한 나라의 '정치적 사건'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 조금 언급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대통령과 서울중앙지검장 (과거에는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청와대 지하사격장에서 닭피로 언약을 맺은 운명공동체' 라는 오래된 전설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그 자리에 대한 정파적 권력행사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쓴 것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은 정말 의외이고 인상적이었다.
싸르니아는 법무부 지휘계통과의 인사협의없이 대통령에 의해 직접 임명된 윤석열 검사 스토리를 읽으면서 문득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떠 올랐다.
로버트 뮬러는 '트럼프 러시아 간첩단' 사건을 수사할 미국의 특별검사다.
백악관을 공포외 패닉에 빠뜨리고, 가뜩이나 좀 정신상태가 이상한 트럼프를 더 미쳐 날뛰게 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의 인물이다.
미국의 시스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대통령의 각료인 법무부 부장관이 임명한 특별검사 때문에 왜 최고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공포와 패닉에 빠질 수 있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공무원 조직에서 로버트 뮬러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자칫 대통령을 잘못 선택했더라도
시스템이 존재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한, 나라 전체가 멸망의 위기까지 치닫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은 어떨까?
이 나라는 잘 정돈된 시스템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나라다.
적어도 지난 정권까지는 그랬다.
우선 이 나라 공무원 조직에서는 로버트 뮬러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이 적어서 그런게 아니라,
임명권자가 그런 사람을 절대로 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연유로 지금 현재까지도
어느 조직이건 그 상층부에는 온통 쓰레기같은 인간들만 우글거릴 뿐
자신에게 부여되고 보장된 임무와 권한을 법과 원칙에 따라 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직 한국에서는 자기 방에 상급자가 들어오면 자기 자리를 그 상급자에게 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상급자와는 엄연히 다른 업무범위가 있으므로 자신의 업무공간은 상급자 할애비가 들어와도 내어줄 수 없다는 자세는 상급자에 대한 무례로 통하는 문화다.
어쨌든
이런 조직들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조직이 검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검찰처럼 권력이 막강한 기관도 없다.
아마도 청와대 다음일 것이다.
1987 년 이후 안기부(현재의 국정원)와 권력서열이 뒤바뀌었다.
실제로 87 이후 출범한 노태우 정권 시절부터 검찰총장 출신들이 안기부장에 임명되어 국가정보라인까지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 검찰은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독점하고 있다는데,
이 기네스북에 오를만큼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조직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기준으로 선후배 관계와 상명하복 관계를 지키면서
심지어 그 상명하복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후배기수가 조직의 상부에 올라오면 선배기수는 별 이유도 없이 사표를 쓰고 조직을 떠나야한다는,
사교집단이나 조직폭력배 비슷한 조직운영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조직에서 윤석열 같은 타입의 정상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자가 50 이 훨씬 넘은 나이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게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사실 싸르니아는 문재인 씨를 약간의 자유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그저 그렇고 그런 야당 정치인 이상으로 보아오지 않았었다.
사람을 잘못 본 것같다.
그는 보기보다 아주 강할 뿐 아니라,
참 건강한 삶의 철학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한 것 같다.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보면서,
보다 더 정확하게는 그 자리에 임명된 사람의 프로필과 과거 행적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적폐청산의 표적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설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하게 됐다.
자신이 파멸하는 한이 있다라도 부여된 임무와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행사할 다음의 행정명령은 과연 무엇일까가 궁금해 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런 거 하나도 안 궁금했다)
그는 이미 비서실 인사에서 이 나라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이른바 '학번위계'를 뒤집었을 뿐 아니라,
1989 년 평양청년학생축전 대표파견사건과 1985 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사건에 관련되어 미국 국무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각각 비서실장과 방미특사단 주요멤버에 포함시킴으로써 백악관에게 앞으로 한국의 대미정책이 어떤 기조와 성격을 토대로 전개될 것인지 간접적으로 시사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파적 반대세력,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진영은 앞으로 정신을 좀 차려야 할 것 같다.
종북프레임같은 우물안 개구리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도 안되고 해석도 안되는 사건들이 앞으로 연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서에 함몰되어 되나괘나 비평만 하려들면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미로에 갇혀 자신만 처량해 지는 일도 발생할지 모른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속으로 불평할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이슬어 처음에는 삐걱거릴지라도
다 같은 사람 머리인만큼 열심히 돌리다 보면 다 돌아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