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지지자가 되겠습니까?
1.
태국 라용에 파견을 나가 더위에 허덕대면서 지내던 어느 날.
"노무현이가 자살했다는데? 젊은 사람들이 좋아했는데 안됐어."라는 모부장의 비아냥으로 그의 죽음을 알았다.
믿기 힘들었다.
애초 그의 정치 이력이 약싹바른 아웃복싱이 아닌 언제나 처절한 인파이팅으로 점철되었기에 이명박의 압박이 아무리 거세어도 충분히 버티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퇴근 후 향을 사르고 담배 한대 올려놓고 그의 명복을 빌었다.
우습게도 선친께서 가셨을 때보다 훨씬 많은 눈물이 나왔다.
그의 죽음은 두 가지로 충격이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매료된 한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을 바로 내 삶에 있어서 바라본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바랬던 사회의 변화가 확실하게 거꾸로 흐르는 방향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2.
그때까지 내 인생은 참 순탄한 편이었다.
대학 진학도 그랬고, 군 입대시 동기 여섯 명 중 네 명이 크고 작은 부상 또는 후유증을 달고 전역했음에도 무사하게 전역한 두 명 중 한 명이었고, 취업도 무난했고 사회 생활도 무난했다.
가장 힘들었던 역경이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주일만에 겪었던 부친상이라 할 만 했으니 이 정도면 굉장히 평탄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조금은 자신감에 넘쳤다고나 할까? 87년 군부독재의 직선제 항복을 받아낼 시기에 그 한복판에서 적극적으로 짱돌 던져본게 최초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성공이었다.
이후 5공 청문회에서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가 김대중 정부에서 일하는 것을 보며 턱없이 낮은 지지율에도 그의 출마 선언만을 고대했다.
그리고 그의 후보 선출과 이후 대선에서의 승리가 두번째 나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3.
그의 죽음은 평탄했던 내 삶에 대한 커다란 충격이었고 역사를 통해 나름대로 형성된 내 가치관의 첫 패배였다.
대선을 지고 이기고는 내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고 그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은 잊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은 그런게 아니지 않은가?
온라인상에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노빠들은 봉하 마을로 조문을 갔지만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귀국했지만 그래도 갈 수가 없었다. 면목이 없었다.
꿈속에서 그와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 나선 왜 생전에 그에게 한번도 다가서지 못했는지 아쉽기만 했다.
왜 그가 대선 승리후 지지자들에게 '감시'란 소리를 듣고 그토록 서운해했는지 그때서야 통감할 수 있었다.
4.
해 뜨기 전이 가장 춥다고 했던가.
그렇게 9년의 세월 막판, 503호의 패악질은 나를 질식의 수준까지 몰아넣었다.
이명박은 노무현 살해의 원죄를 넘어 국가 시스템 자체를 완벽하게 과거로 되돌린 자이고, 503호는 대한민국을 아예 말아먹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들이 최소한의 염치를 차리는 정치를 했다면, 그들의 대통령 시기를 그저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집권기로 기억했을 것이다.
5.
대민방에도 최순실 태블릿 사태에서부터 대선 기간 내내 글다운 글은 쓸수 없었다. 그냥 짧은 비아냥은 올릴지언정 생각이 정제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리라 기대하는 섣부른 생각도 이제는 방정맞다고 느낄만큼 나이를 먹었거나 아니면 소심해졌거나.
어떤 면으로는 문재인의 낙선을 바라기도 했다.
9년간 쌓인 똥덩어리가 어마어마할텐데, 그거 치우다가 또 무능하다고 욕만 쳐먹고 자살로 내몰리지 않을까, 개돼지들은 똥덩어리 속에서 현재도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뭔 똥을 치우겠다고 나서는가 하는 생각 탓에.
차라리 아예 까놓고 복수하러 나왔으면 모르겠는데, 그의 품성을 보건데 복수라고 해보아야 법전에 쓰여진 복수-그나마도 증거의 태반은 사라지거나 은폐되어 버린-외엔 생각도 못할 사람이기에, 어설프게 굴다 노무현 시즌2를 찍을까 겁이 나서.
6.
이제는 기호지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정사실이다.
그의 대통령직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이제 다시는 그런 비극은 없어야 한다.
이제 그를 '감시'하겠다는 순진한 나이가 아니다.
임기동안 속된 말로 그를 쉴드치고 빨아줄 것이다.
나 말고도 문재인을 욕하고 헐뜯고, 그의 정책에 반대하고 뒷다리 잡아챌 사람과 세력은 아직도 차고 넘쳤으며, 그런 선동에 휘둘릴 개돼지들은 이번 대선 투표를 보아도 최소한 30%가량은 된다.
7.
이제사 봉하 마을을 찾아가야 겠다.
그를 만나보고 싶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들에게는 아빠가 살아 생전 만났던 대통령 중에는 최고였던 사람이라고 소개시켜주고 싶다.
너도 살면서 이렇게 존경하면서도 좋아할 수 있는 대통령을 만나길 바란다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