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전쟁으로 계엄령?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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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전쟁으로 계엄령? 정말?

sarnia 5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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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지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극우난동분자의 살인폭력사태는 미국의 이념전선구도를 일거에 뒤바꾸어 놓았다. 부통령에서부터 티파티 소속 공화당 우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오늘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Fox News 는 '트럼프의 이상한 발언을 지지해 줄 단 한 사람의 논객도 찾지 못했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저서 'Art of the Deal' 이라는 책을 써 준 대필작가 Tony Schwartz 는 오늘 트윗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곧 사임할 거라는 전망을 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생명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는 선언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나치집단과 쿠 클럭스 클랜이 가장 증오하는 유대인 사위와 유대교인 딸을 둔 아버지이기도 한 도널드 트럼프는 "Jews will not replace us" 를 외치는 나치분자들을 가리켜 '그들도 착하고 평범한 시민 (fine people)이라는 망언을 함으로써 자기 자식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자부심이 강했던 전통적인 다문화 국가 미국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치욕적인 상처를 남기게 됐다.       

 

대혼란의 와중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백악관 수석전략가 (Chief Strategist) 스티브 배넌의 인터뷰 발언이었다.

 

배넌은 극우매체 CEO 출신 이념가로 트럼프의 반이민과 반자유무역정책 멘토로 알려진 인물이다. 전국에서 모인 극우분자들이 평화로웠던 소도시 샬러츠빌에 처들어가 난동을 부린 사태에 대해 트럼프가 잘못된 발언을 하도록 부추킨 인물로 지목되어 해임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이 작자가 갑자기 어제 트럼프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발언을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어제 The American Prospect 와의 인터뷰에서 샬러츠빌에서 난동을 부린 신나치와 쿠 클럭스 클랜을 가리켜 쓸모없는 낙오자 집단 (collection of clowns), 변두리 양아치들 (fringe element, losers)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벼랑끝에 몰린 대통령을 살려놓고자 한 말이었다면 이런 말은 참모인 자기가 할 게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직접했어야 했다.

 

정작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남부연함군 장군들 동상이 아름다운 유산이라느니, 역사는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느니 샬러츠빌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린 극우분자들도 알고보면 착하고 평범한 시민이라느니 하면서 한 시간이 멀다하고 미국시민들의 분통을 터뜨리는 뚱딴지같은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마당에 수석전략가 혼자 이런 발언을 단독언론인터뷰를 통해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같은 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와 각군 참모총장 및 사령관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반인종주의 성명을 발표하고, 명백한 비난발언을 하지 않고 이말했다 저말했다 하고 있는 트럼프를 일제히 성토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스티브 배넌의 인터뷰 발언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이 작자야말로 의미심장한 야심을 품고 멀리 내다보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넌은 극우인종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기의 사상은 ethno-nationalism 이 아닌 economic-nationalism' 이라는 청사진 까지 제시했다. 앞의 단어는 부족적 민족주의 (인종주의) 로 해석할 수 있고, 뒤의 단어는 경제국가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임기 초에 배넌이 인터뷰 할 때도 economic nationalism 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의 언론들이 이 단어를 일제히 경제민족주의라고 변역을 한 기사를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nationalism 이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라고 번역해야 맞다.

 

지금까지 스티브 배넌은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 쿠슈너 및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권력투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트럼프를 조기에 몰락시키고 자신이 대안보수의 명실상부한 새 상징리더로 등극하기 위해 그 싸움을 벌여온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는 드러난 것만 해도 두 번 씩이나 트럼프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한 번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된 기밀고급정보들을 언론에 순차적으로 흘린 것이었고, 다른 한 번은 어제 The American Prospect 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주의와 북코리아 문제에 대해 트럼프의 말과는 전혀 상반되는 자기 입장을 개진함으로써 트럼프를 '졸지붕신'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국 그가 어제 The American Prospect 와의 인터뷰에서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는 신나치나 쿠 클럭스 클랜과 같은 역사의 쓰레기 앞에서도 지지표나 날아갈것을 걱정하며 횡설수설하는 팔푼이지만, 자기는 destructive 하기만한 인종주의는 거부하고 미국이라는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경제국가주의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명확히 했다.

 

둘째, 미국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패권경쟁 상대는 중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트럼프는 코리아반도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화염과 분노'와 같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미국을 북코리아와 동등한 수준의 나라로 만들어 세계망을 떨어댔지만, 자기는 앞으로 (갈 길은 멀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북코리아가 핵동결에 동의한다면 미국도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과 평화협정을 맺으며 주한미군도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넌지시 밝히기도 했다.

 

기사에는 안 나왔지만 배넌은 중국과의 패권경쟁 전선에서 전략무기 신흥강국으로 등장한 북코리아와 더이상 적대적 관계를 계속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생각을 줄곧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7 월 말부터 고조된 북과의 전쟁위기국면에서 스티브 배넌은 줄곧 온건론을 펴며 백악관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선제공격론을 제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심만 많았지 그 야심을 뒷받침할만한 능력도 참을성도 없는 도널드 트럼프와는 달리 뛰어난 감각과 지력을 갖춘 스티브 배넌은 이제 그를 진짜 떠나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부통령은 아니니 일각의 확신에 찬 예견대로 트럼프가 올해 안에 실각한다고 해도 그의 세상이 곧바로 열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5 Comments
참새하루 2017.08.18 16:52  
요즘 백악관 정치뉴스는 꼴도 보기 싫어서
관심을 접었습니다

트럼프가 뭔 헛발질에 개소리를 해도
미국 경제는 잘 돌아가고
지지자들의 지지세는 유지되니
트럼프가 탄핵될 가능성은 전혀없어 보이고요

그렇지만 스티브 배넌을 바라보는 sarnia님의 날카로운 시선에는
정말 놀랍네요
앞으로 십년 뒤에 공화당 후보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정말 태사랑 쪽집게 도사로 등극하실것 같습니다^^
sarnia 2017.08.19 08:51  
스티브 배넌 오늘 잘렸네요. 트럼프로서는 자르지 않을 수가 없지요.  배넌으로서는 잘릴 각오를 하고 목요일 기자회견을 했을 겁니다.

저는 이 사태를 해석하는 일부 한국언론의 무식과 우물안 개구리식 시야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예를들어 배넌의 주한미군 철수발언이 문정인 특보 발언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나왔다는 주장에는 하도 기차차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배넌은 아마 문정인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인물인지 그가 어떤 발언을 해왔는지 백악관 주류와 어떤 식으로 헤게모니 쟁탈전을 별여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The American Prospect 회견에서 그가 날린 결정타는 코리아반도 문제가 아니라 미국내 극우분자들에 대한 확실한 비난입장표명이었습니다. 사실 코리아반도 문제는 며칠 전 트럼프가 ‘김정은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화답을 해 준 것으로 배넌의 입장을 지지했다고 보는 것이 옳으므로 배넌이 주한미군철수와 같은 좀 더 나간 주장을 폈다고 해서 트럼프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아니지만, 배넌이 극우에 대해 원색비난을 한 것에 대해서는 황당한 배신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가 극우지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극우친화적인 입장을 피력하도록 바람을 잡고나서 전혀 엉뚱한 발언으로 대통령을 시궁창이 처박아놓고 자기만 쏙 빠져나갔으니 얼마나 괘씸하겠어요?   
   
가뜩이나 고립무원인데 맨토까지 자른 트럼프의 오늘 심정이 어떨까요? 1982 년 봄 하화평 허삼수를 자른 전두롼의 심정에 비견할 수 있을라나요? ㅎㅎ 

허화평 허삼수 이야기하니 아주 오래 전에 이 두 사람 잘려나가는 광경을 상상해서 써 올린 글 하나 있는데 가져와 보겠어요 ^^
 
https://thailove.net/bbs/board.php?bo_table=korea&wr_id=1572&sfl=wr_name%2C1&stx=sarnia&sop=and&page=7
참새하루 2017.08.19 18:49  
링크 걸어주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배신자들로 둘러쌓인 트럼프는 고립무원인가 봅니다
그의 결말은 어찌 될지
영화가 따로없네요

군악대의 연주와 합창으로 듣는
미국 보수 찬가는 색다르네요
제게는 고등학교 교가이기도 했습니다
sarnia 2017.08.20 04:57  
http://www.msn.com/en-ca/news/world/free-speech-rally-fizzles-as-counterprotesters-swarm-boston/ar-AAqkY0C?li=AAadgLE&ocid=spartanntp

예상했던대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Free Speech rally 는 비참한 실패로 끝났군요. 토요일 오후 (미국 동부상황) 상황입니다. 보스턴 시민들은 역시 대단하네요. 수 십 명에 불과한 친트럼프 시위대를 무려 수 만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어 이들을 둘러싸고 야유를 보내는 상황에서 보스턴 경찰국이 오후 1 시 반에 집회종료를 트윗을 통해 선언했습니다. 친트럼프 시위대라도 극우적인 주장이 아닌 이상 발언의 자유는 보장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sarnia 2017.08.19 23:26  
저 노래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최전선에서 공격하고 있는 미국보수주류의 주제가같은 노래이지요. 

배넌은 오늘 또 기자회견을 하면서 ‘트럼프 정권(자기가 싸워서 이룩했던)은 끝났다’는 선언을 했군요.

배넌이 샬러츠빌에서 사고를 일으킨  white nationalists 를 가리켜 fringe element 라고 공격했던 이유와 배경을 관찰해 보면 대안보수의 철학과 비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제 어느 분 (캐나다)과 나눈 대화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대안보수란 공화당 주류를 대체한다는 의미보다도 아무 비전이 없는 전통적 인종주의를 다문화 국가인 미국적 환경으로 변형시킨 ‘American neo-nativism’ 으로 재창조한다는 의미가 더 강할 겁니다.
어차피 배넌은 극우정파 출신이니까요. 대안보수와 traditional white nationalism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의 간격에서 벌어지는 극우분자들간의 내부투쟁과 타협의 과정 역시 흥미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주한미군철수 발언만 부각시키면서 사건의 본래의미를 피상적으로조차 해석해내지 못하는 한국언론에 대고 극우의 멘토나 다름없는 배넌의 언어를 통해 미국극우진영 분열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읽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적어도 미국을 담당하는 기자들이라도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겠습니다.  허구헌날 미국 이야기를 하니 지겹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미국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코리아반도의 정세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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