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강철대오, 자꾸 불러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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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강철대오, 자꾸 불러내서 미안해

sarnia 12 426

 

우연히 이 노래를 찾았습니다.

지금 들으니 곡조와 가사가 약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면서 웃음이 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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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그리고 백만학도 여러분! 전대협이 드디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ㅎㅎ 예, 임수경 씨 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통과한 정전협정 이후 최초의 민간인입니다. 1989 8 15 일.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이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남북갈등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을 완전히 뒤 바꾸어 놓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초 계획은 7 27 (정전협정 36 주년 기념일)에 걸어 내려올 예정이었습니다. 그 해 봄 소설가 황석영 씨 (3 월 20 일) 와 문익환 목사 (3 월 25 일)의 방북에 이어 세 번째 뒤통수를 맞자 거의 꼭지가 돌아버릴 정도로 격노한 노태우 정권이 길길이 뛰고 유엔사가 반대하는 바람에 7.27 판문점 도보 귀환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당시 북한당국 역시 내심으로는 임수경 씨의 방북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청년학생축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환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겟지만 말이죠.  

 

유엔사의 압력이 가중되자 입장이 곤란해진 북한당국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 씨를 임수경 씨가 묵고 있는 고려호텔로 보내 판문점에서는 신변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으니 일단 출국해서 외국을 경유해 귀환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습니다.

 

허담 위원장의 말을 들은 임수경 씨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다가가더니 판문점을 통한 귀환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호텔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소리쳤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임수경 씨는 판문점 귀환을 관철시키기 위한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이 당찬 여학생의 강철같은 고집앞에 유엔군사령부도, 외국 경유를 권유하던 북한당국도 결국 두 손을 들고야 말았습니다.   

 

당시 스물 한 살에 불과했던 한 여학생의 당찬 행동은 그로부터 18 년이 지난 2007 10 월,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가 함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을 수 있게 한 남북화해의 첫 돌다리를 놓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남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인식을 뒤바꿔 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미제와 파쇼정권의 압제아래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난데없이 나타나서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이 남한 여대생의 모습 어디에도 헐벗고 굶주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 이지요 

 

고려호텔 미니바에 있는 북한산 룡성맥주가 맛이 없어서 하이네켄을 마셨다는 당당한 고백도 북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거고요.

전대협 진군가

 

이 노래가 대한민국을 울리던 그 시대에 이 노래는 결코 만만한 노래가 아니었지요.  

…… 강철 같은 우리의 대오~총칼로 짓밟는 너~
조금만 더 쳐 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1980 년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은 매우 특수한 양상을 띄고 있었습니다. 시위를 하는 학생이라기보다는 전투를 하는 전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수 많은 학생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이 전투에 임했습니다.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의 한 분야이지만, 당시 대한민국 학생조직은 가장 강력한 전투부대를 확보하고 있는 야전군에 해당했으므로 그들의 노래인 이진군가야 말로 당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던 주제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막강하고도 광범위한 야전군의 목숨을 건 전투대형 앞에서 그 포악하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도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무릎을 끓고야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노태우 정권은 형편없는 약체 정권으로 그 초라한 명맥을 유지하다 1992 년 모든 것을 내놓고 물러가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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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년 남북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38 년간 쌓아온 공든탑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마치 핵전쟁 전야에라도 선 듯한 한반도 상황을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나고 기가 막혀서…… 추억의 사건이야기 하나 소개 했습니다. 


2010. 12.24 sarnia

12 Comments
간큰초짜 2010.12.25 19:17  
내용 말고 노래에 대해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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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노래..올만에 들으니 괜히 반갑고 새롭네요.
저야 뭐 소위 말하는 운동권도 아니고 시국사건에 거의 관심도 없었지만..(오로지 롯데)
술 마시거나 학교 행사후에는 늘 이 노래를 포함한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등을 목청껏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sarnia 2010.12.26 04:00  
ㅎㅎ 저는 85 졸업이고 전대협 1 기가 1987 년에 출범했기 때문에 이 노래를 학생시절 부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근데 저는 간큰초짜님이 한총련 세대인줄 알았습니다. 전대협 세대였군요.
간큰초짜 2010.12.27 21:05  
한총련은 아마 제가 군에 있을때 출범한걸로 압니다. 94년에 복학했거든요.
manacau 2010.12.26 17:29  
제가 84학번 입니다. 전대협의 축복을 물씬 받은 학번 입니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것 그자체만이라도 전 행복 합니다.
sarnia 2010.12.27 06:56  
수고하셨습니다. manacau 님 .

84 는 87 년 국면에서 4 학년, 즉 전선 지휘관들이었지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세대 중 하나일 것 입니다.

님들과 같은 헌신적이고도 우수한 야전군 지휘관들이 있었기에 87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고 오늘의 '선진'민주' 대한민국을 일궈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해외에 있는 한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님과 그 동기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이파이 2010.12.28 20:07  
그 때 대학생이였던 임수경씨는 지금 40대 초반이 됐겠군요.
sarnia 2010.12.28 23:48  
아마 그렇겠지요. 68 년 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사랑 회원님 중에 친구도 있는 것 같구요.
manacau 2010.12.28 23:20  
뜻한 바 있어 인천에 홀로 떨어져 있습니다. 높은 급여, 임원 승진 원하지 않습니다. 조용한 시작과 마무리를 위해 찌그러져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걸 느낄 때는 그때 그곳의 향수죠.
20여년이 지났지만 또렸하게 기억 합니다. 그 향기 또한 너무 진하게 느끼죠.
그렇군요.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태어난 보상을 받은 거네요.
sarnia 님 항상 고맙습니다. 또 지켜 주지 못해 죄송 합니다.
노짱 보고 싶네요. 요즘 뭐 하고 계실까...  이 쓰레기 같은 현실을 보시면서.
잊을만 하면 슬며시 다가와 마른 누선을 자극 하네요.
구엔 2010.12.30 11:29  
무림, 학림, 민민투, 자민투, 삼민투위, 애학투, 서대협, 전대협, NL, PD, ND
참 많은 일들이 80년대에 있었던거 같네요.
저는 사회구성체논쟁 읽다가 그냥 포기해 버렸네요. 뭐가 그리 복잡한지.
sarnia 2010.12.30 12:13  
사회구성체논쟁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항해서 반봉건식민지론을 전개한 NL 계열의 승리로 귀착됐지요. 저도 내용의 핵심들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암튼 1986 년 NL 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학계-문화-예술계 등에서는1987 년 대선에서 비판적 지지계열로 그 계보와 인맥을 형성하게 됩니다. 당시 장세동이 지휘하던 국가안전기획부는 NL 이 사구체 논쟁에서 승리하고 공개조직을 대부분 장악했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이념총공세의 첫 작품을 하나 만듭니다. 기억나시나요? 1986 년 10 월 30 일 건대사태...... 1989 년 시민운동 (당시에는 재야라고 불림) 총연합조직인 전민련 본부에는 왕년의 PD 계열과 NL 계열의 이론가들이 모두 집합했지만 더 이상 사구체를 둘러싼 이론갈등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정당 (party) 등 제도권 진입을 위한 노선이 갈라지게 되는데 87 당시 비판적 지지입장 (DJ에 대한)을 가졌던 NL 계열은 평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을 발판으로 삼아 대부분 제도권으로 진입합니다.

한 가지 1986 년 당시 학생운동의 NL 지도부를 주사가 장악하게 된 배경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남들 열라 박 터지게 싸울 때 골방에 처 박혀서 강철서신인가 뭔가 하는 줄기찬 편지질을 했던 작자인데 이 사람은 24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골방에 처 박혀서 ‘극우반동서신’을 날려대고 있지요. 1995 년 어느 날 하루아침에 주사에서 극우로 180 도 전향한 경우인데 후세 심리학자들의 연구대상 중 하나인 듯……

'NL 지도부를 주사가 장악했다고 했을 때 장악이라는 의미는 당시 SM 지도부가 주사이론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86~89까지 분위기상 하나의 경향성으로 자리잡았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농눅 2011.01.03 00:39  
이런음악은 듣기만 해도 전율이 느껴지네요. 울 언니들(4명)이 다 이 노래를 불렀지요. 고딩때 공부하면서 귀막고 들었는데 어느새 다 외워 버렸다는  ㅎㅎㅎ 나도 대학가면 부르려나... 했는데 한총련으로 바뀌었네요 풉~  아아... 전대협이여 우리의 자랑이여...
sarnia 2011.01.03 06:43  
언니 네 분이 모두 전대협...... 국가유공자 가족이시네요~
전 한총련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워낙 세대차이가 지는지라 ㅎㅎㅎ

뒤늦게 태국 매력에 푹 빠져 밤새도록 태국이야기 하고 싶으시다던...... 그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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