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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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스타일

호루스 0 97
지도자의 스타일을 비유할 때 흔히 삼국지의 인물이나 일본 소설 대망의 세인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울지 않는 새는 베어버린다 -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나 도요토미는 어떤 스타일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다는 군인 스타일, 도요토미는 상인 스타일이라 해야 할까요?

도쿠가와 스타일이 마냥 세월만 낚는 걸 의미하는 건 다 아실 겁니다.

도요토미가 물건을 팔기 위해 끊임없이 상품 광고를 하고, 판촉 행사를 열고, 시식 또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유혹하는 스타일이라면, 도쿠가와는 시장 트렌드를 읽고, 소비자 취향이나 불만 사항에 관심을 두며, 자기 상품에 나름의 정체성을 부여하여 소비자가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알아보게끔 하는 등의 밑바닥 작업(?)을 꾸준히 하여 마침내 판도를 바꾸는...그래서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느끼게끔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거칠게 본다면 박정희나 전두환, 김영삼은 오다 스타일에 가깝고, 김대중, 이명박은 도요토미 스타일, 노태우, 문재인은 도쿠가와 스타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은 어떤 쪽에 넣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박근혜야 그냥 집단적 복고와 퇴행이 불러온 돌연변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쿠가와 스타일이 되려면 일단 끝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자연적 생명만이 아니라 정치적 생명까지도요.

노태우를 보자면 최후의 군사정권 지도자였죠. 한 시대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거죠.

단순히 마지막이라서 중요한 게 아니라 북방외교를 통해 반공 친미 일극의 시대에서 우리나라 외교나 사상을 개방적으로 열어놓은 시대적 과제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언젠가는, 누가 해도 했겠지만, 그 시대에, 그가 했기 때문에 그의 기다림이 결실을 맺었다고 봅니다.

도쿠가와 스타일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구마를 선사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다 보면 어느샌가 그가 그린 그림이 완성된다는 거죠.

노태우를 보아도 젊은 시절을 전두환의 그림자로 살면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고, 대통령이 되고서도 물태우라 불릴 만큼 존재감이 약했죠. 그만큼 뭔가 기대하는 이들은 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이었고요.

그러함에도 차분히 때를 기다려 마침내 일인자 자리에 올랐고 전두환 상왕 정치 시도를 걷어냅니다. 아마 전두환 입장에서는 평생 절친이자 꼬붕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반쪽을 향해 문호를 열어젖힌 북방외교를 완성했습니다. 이를 통한 시장의 확대가 우리의 경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고요.


이제 문재인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는 노무현의 친구이면서 참여정부에서 실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에게 남겨진 노무현의 유산은 그의 친구이자 동반자라는 상징뿐이었지 돈이나 조직, 인맥은 아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 전면에 자의 반 타의 반 나섰고 이명박근혜 시기 10년을 기다립니다. 그게 막연히 놀고 먹은 게 아니죠.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대선에도 한 번 패배했고, 지리멸렬한 민주당을 인수해서 안철수가 지역 기반 정치 자영업자를 끌고 나갈 때까지 얼마나 고구마를 많이 선사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그 나름의 세력을 성공적으로 일구었단 말이죠.
그는 민주당의 지도자로 안착했고, 총선에서 기적적인 민주당의 부활과 박근혜 탄핵에 따른 대통령 당선을 이루어 냅니다.

탄핵 정국에서도 나대지 않고, 거의 존재감 없이 지내면서 권력의 흐름이 자기에게서만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죠.

지지자들이 보기엔 답답하기 이를 데 없죠. 화끈한 맛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다만 그가 그렸는지, 상황이 그렇게 흘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결과는 그가 바라는 대로 나타났으니까요.

공수처 설치로 대변되는 검찰 개혁 역시 그간 많이들 답답했죠.
검찰개혁인지 조국 사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구마를 투하하면서 정권 지지율 폭락까지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두고 보니 검찰의 저항이 여론의 지지도 못 받고, 제1야당도 어거지만 부린 게 되었습니다.

제1야당을 완전히 무시하고 표결로만 갔음에도 정치적 무리수나 다수의 횡포라는 비판도 없습니다. 물론 반대쪽에서야 할 말 많겠지만 결국 여론의 향배를 결정하는 중도가 정권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검찰 인사 얘기가 말이 많은데 이건 그냥 결과론적인 것에 불과하죠.

만약 공수처 법안이 무리수였고, 국론이 조국 사태 때처럼 끓어 올랐다면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한다는 건 총선은 아예 포기하는 것일 테니까요.

문재인은 그렇게 두 번에 걸쳐 도쿠가와의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스타일의 정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향해서 흔들리지 않고 꾹 참고 조금씩 진행하며 시나브로 대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보면 말입니다.

앞서도 얘기했듯, 도쿠가와는 기다려서 막부라는 새 시대를 열었고, 노태우는 우리의 외교와 시장을 넓히는 북방 외교를 이루어냈습니다.

제가 보는 문재인 정권의 시대적 사명이라면 검찰 개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개헌'과 '남북 간 평화(가능하다면 통일도) 시대의 개막' 이라고 봅니다.

총선 이후 문재인 정권은 다가오는 레임덕과 함께 개헌을 추진해야 합니다.

개헌은 국회의원 2/3가 필요하고 이는 제1야당이 100석 미만의 참패를 당해서 지금처럼 스스로 왕따를 자부해도 나머지 모든 정파의 찬성을 얻어내야 하는 걸 의미합니다.

혹여라도 제1야당이 100석 이상을 얻는다면, 개헌 자체가 물 건너갈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지난한 협상 과정을 거치겠지요.

이걸 과연 정권 말기에 해낼 수 있을까요?

개헌의 성패보다 그 과정에서 쏟아질 고구마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이미 2번의 큰 경험이 있었음에도 또다시 문재인의 답답함과 무대책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PGR이 가득 차는 걸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할지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개헌이 성공해야겠지만 말이죠.

개헌을 이루어낸다면 문재인 정권은 87 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낸 진정한 '구시대의 막차'가 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덧글

경제야 항상 상수니까 따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문제야, 멍청아! 라는 말은 하나 마나 할 정도로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간 평화(통일) 시대의 개막은 솔직히 국내 정치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우리가 주체가 아닌 객체 또는 변수에 불과한 존재감 때문에 씨알만큼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문정권은 할 만큼 했으니 그냥 적대적 관계만 안 만들고 차기 정권으로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보기 너무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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