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노래~~

홈 > 소모임 > 한밭
한밭

할머니의 노래~~

굳펠라스 4 623
할머니의 노래

우리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가 가까워지며 우체국 직원들은 매일 택배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특히 금년에는 연휴기간이 짧아 고향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부모님께 정성을 다해 보내드리는 선물(膳物) 때문에 평소 택배의 10배 이상 되는 많은 양(量)을 배달하느라 집배원은 물론 사무실 직원들까지 총 동원되어 비지땀을 흘려가며 날이 저물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그러나 매일 우편물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시골길은 늘 정답고 포근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 마을 아래쪽 골목 끝 집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멀리 도시에서 보내온 현금등기를 배달하려고 대문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는 볕이 잘 드는 마당 한편에서 콩 껍질을 까면서 무언가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할머니! 오늘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사람이 와도 모르고 노래만 계속 부르고 계시는 걸 보면!" "무슨 존일이 있으꺼시여! 그냥 혼자 중얼거려 본 것 뿐이제,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

"서울에서 김정은 씨가 돈을 5만원 보내왔네요." "잉? 정은이가 돈을 5만원이나 보냈다고?" "왜 깜짝 놀라세요?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아니 잘못된 것이 아니고 즈그 살기도 성가신디 뭣할라고 돈을 보냈으까?" 하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5만원이면 그렇게 작은 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많은 돈도 아닌데 그러세요?" "엊저녁에 딸한테서 전화가 왔습디다. 낼 모레가 추석인디 엄마한테 가 보도 못하것다고. 그라고 돈을 10만원이나 보낼라고 했는디 안되야서 5만원 보냈다고.

나는 그냥 받어쓴께 좋기는 하제만 지는 없는 살림에 자식들 갈쳐야 쓰고 또 식구들 묵고 살아야 쓴께 돈은 받어도 내 맘은 이라고 안 좋소!" "그래도 따님께서 마음이 있어 할머니 생각하고 보내준 돈이니 잘 쓰세요!" "그라기는 하제만!" 하더니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 한쪽에 서 있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내가 이것을 으따 뒀으까? 여그 으따 놔 둔 것 같은디!" 하며 무엇인가 찾고 계셨다. "할머니 무엇을 찾으시는데요?" "아니~이! 내가 늘 아저씨 심바람만 시키고 미안해서

뭣을 잔 대접하고 싶은디 줄 것이 없네! 여그 이것이라도 잔 자셔봐!" 하며 팩에 들어있는 콩 우유 한 개를 건네주시며 또 다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다. "할머니! 그 노래는 누구에게 배우셨나요?" "노래? 무슨 노래를 배워! 그냥 나 혼자 해 본 소리제! 그라고 누가 나한테 노래 갈쳐줄 사람이나 있것어?" "하긴 그러시겠네요. 그러면 노래는 어떻게 만드셨어요?" "여름이나 겨울 같이 촌(村)에 할 일이 없으문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란디 요새는 바쁜께 사람들이 안 모여! 그라고 우리 집은 골목 끝이 되야 갖고 바쁠 때는 하루에 사람 얼굴 한번 보문 보고. 못 보문 말고 그래! 그란께 나 혼자 하루 종일 집에 있을라문 말 한마디도 안하고 넘어갈 때도 있는디 가만이 생각해 본께 이러다가 내가 벙어리가 되야불문 어짜꺼나 꺽정이 되드란께! 그래서 무담시 나 혼자 노래를 만들어갖고 부르고 다녀! 그란디 누가 들으문 저 노인은 혼자 미쳤는 갑다! 그럴 것 같응께 크게는 못 부르고 작은 소리로 불러. 그란디 으째 듣기가 싫어?"

"아니요! 듣기 싫어 그런 것이 아니고 저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서 할머니 노래가 민요(民謠)인가 싶어 물어보았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며 대문 앞에 나와 잠시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실려 있는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나지막이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들여오고 있었다."가는 세월 붙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하니. 너도 늙고 나도 늙었구나. 아이고. 이 노릇을 으짜꺼나 세월 앞에 장사 업다고 하더니 곱기만 하던 내 청춘이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네."


"가는 세월 붙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하니 너도 늙고 나도 늙는구나!"


10월 중순의 하루 해는 짧기만 하였습니다.

jQuery1255930921406="167">

4 Comments
굳펠라스 2009.10.19 14:44  
시작되는 한주 힘차게 으쌰 으쌰~~~~ㅎ
모두들 힘내시고 멋진 한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캐쉬 2009.10.19 18:53  
좋은글 감사합니다. 방장님

자주 자주 들릴게요.......
오렌지세상 2009.10.19 19:32  
맘이 찡~ 하네요..
할머니 넘 외롭겠다..
허리켄 2009.10.20 19:04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