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태국에서.
간큰초짜
21
740
2010.08.09 12:28
제가 태국에 처음 간 게 현지 지사설립을 위한 실사 목적으로 예비지사사장님 모시고
2003년 3월 21일이었습니다. 당시 전 유흥도 즐기지 않고, 골프도 몰랐기에
호텔(이름 기억안남. 돈무앙공항 근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묵었던 곳)에서
늘 수영만 하고 놀았습니다. 예비지사장은 아침에는 골프, 오후에 잠깐 실사미팅,
저녁엔 술에 쩔어 한달을 아주 즐겁게 보냈습니다.(결국 지사장으로 못왔지만...)
인터넷도 자유롭지 않아 태사랑에서 알려준 싸눅카드로 모뎀으로 인터넷을 쓰는게
전부다였습니다. 3-4일 호텔에서만 지내다 안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보기로 하고
태사랑을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했죠.
(예전에도 여러번 글을 올렸지만, 저는 태국에 오기 전 여러 좋지 않은 선입견들로
태국발령이 너무 싫어 사표를 낸 상태였습니다. 아프리카 콩고 정도로 생각했었죠)
그때 처음 카오싼을 가봤고, 혼자서 파타야를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한마디 안되는 예비지사장 버려두고 며칠을 신나게 다니며 태국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태국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노트북과 디카를
들고 다니면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사무실에 창고정리를 하다가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몇개 있길래 외장으로 연결해서
무슨 자료가 있나 싶어 보는 중에 'thaidiary.doc' 파일이 보여 열어봤습니다.
제가 2003년에 처음 태국 가서 썼던 그 일기파일이었습니다. 10개도 채 안되는 일기였지만,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몇개만 옮겨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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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27일 더럽게 덥고 더럽게 맑다.
일주일째다. 아...너무 덥다. 식욕도 없고 의욕도 없다.
집에 가서 환희(제 딸..당시 5개월)랑 마눌이랑 보고 싶다.
......중략.......
박지사장은 오늘도 술 퍼마시고 있나보다. 더운데 좀 자제하시지..
난 아직 경영기획실 소속인데, 실장님한테 이거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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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28일 덥......................................다.
오늘은 thailove.net에서 알려준 카오산이라는 곳을 갔다왔다.
택시 타기전 호텔직원이 기사한테 말을 잘해줘 편하게 잘 갔다 왔다.
며칠전에 택시기사한테 당한거 생각하면....바로 앞에 있는 타이파닛을
모른다고 몇바퀴를 돌고...하긴 우리나라도 그런 사례가 많다고 하니
뭐 태국이라고 사람 사는곳인데 뭐 다르랴...
카오산에 한인가게가 몇개 보이던데 다들 더워서인지 사람도 개도 축 쳐져있어서
들어가보지 못했다. 나야 올만에 보는 한국사람이지만, 그 사람들은 늘 보겠지?
아 근데..무슨 개가 그리도 많은지...무서워서 뒈지는줄 알았다.
................중략................
수쿰빗? 스쿰윗? 아무튼 한국식당이 많다는 곳에 들렀다 왔다.
가오리지갑 몇개 사고 마사지 받았다. 마사지를 하는지 간지럽히는건지..
1시간 넘게 고역이었다. 밥먹으로 들어갔더니 박지사장 거기서 술마시고 있다.
꼬라지 보기 싫어 걍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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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6일 매일 덥다.
방으로 배달된 방콕포스트를 펼쳐들었다.
다른건 몰라도 여기 사람들도 덥긴 덥나보다. 어제 방콕이 40도.
덥다는 기사가 많이 올라와있다. 약간 다행이다...나만 더운줄 알았는데.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집에 간다. 우리 딸이랑 마눌이가 나 없이 이렇게
오래 있었던 적이 없어서 많이 심심하겠다.
............중략................
그간의 실사결과와 미팅내용을 모두 정리해서 보고서 작성완료했다.
경영기획실장님이 메일로 보내라는데, 모뎀으로 보내다가 2번 실패했다.
내일 수쿰빗 나가서 다시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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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20일 덥지만 상쾌하다
오늘 밤 비행기로 들어간다. 현지 협력업체 한국직원 소개로
잘한다는 마사지 집을 다녀왔다. 온몸의 뼈와 근육이 제자리로 찾아가는 느낌.
시원한게 참 좋다. 마사지집 이름도 시원하다 라는 뜻이라는데 태국말이라
잘 모르겠다.
박지사장이랑 쇼핑했다. 월드트레이드센터에 가서 엄마랑 장모님 드릴
실크제품(짐톰슨), 직원들 줄 백을 20개 넘게 샀다. 엄청 싸다.
이거 우리나라 가져가서 좀 팔아볼까? 이름이 뭐였더라...나라야?
우리 실장님은 술을 안드시니 가오리 지갑 최고 좋은걸로 샀다.
마눌이는 출장경비 남겨서 현금달란다. 그래도 화장품 몇개 사다주야지..
...........중략...........
박지사장 경비 사용전표 이제서야 던져준다. 아...욕나온다.
많이도 썼네...이걸 언제 정리하라고..한국 가자마자 바로 부산 출장인데...
한달동안 술값만 14만바트가 넘는데다가 골프장도 왜 자기가 내는지...
접대 받아도 부족할 판에...한달 동안 혼자 쓴 돈이 23만바트.
이 분 지사장으로 오시면 좀 피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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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가 쓴 일기 보니까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당시 전표정리한 파일에 환율 계산을 "27"로 했네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환상적인 환율입니다.
다른 일기를 보니 더운 날씨푸념과 택시기사 욕을 엄청 많이 했었네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땐 택시한테 정말 많이 당했습니다.
한달동안 태국 있으면서 전 5킬로 정도 살이 빠졌습니다.
물론 나중에 태국에 정식발령 받아서 간 후로 완전히 적응해서
살이 엄청 쪘지만요. 그때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혼자 태국 생활한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됐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