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금연 8일째...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방콕에서 금연 8일째...

성주불수 10 537
불과 13일 전만 해도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흡연, 음주
아내와 나들이 갈때 마다 찍은 사진들엔 분기별로 확연히 구분되는 뱃살
밑의 직원 대형사고 칠때 마다 후두부를 강타하는 뻐근한 통증

퇴근후엔 고부간에 끼여서 여기저기 눈치좀 보다가 갓 7달 지난 애기랑 잠들때 까지 씨름하기

지극히 일상적이여서 말할 건덕지 하나 없는 평범한 삶


오늘로 부터 12일전...

아침부터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가 무겁다. 여태 이런적이 없었는데, 유독 이날 아침은 몸이 천근만근이라 한 발자국 떼어 놓기가 힘 들었다. 불길한 예감....

다행히 일터에서는 별 일 없었는데

퇴근후 집에 와보니 기어이 사고가 터져있었다.. 수일전 부터 고부갈등이 점차 심해지는 것 같더니 어머니는 가출 상태, 아내는 울면서 짐을 꾸리고 있는 중 ㅡ ㅡ;;;

일단 우는 애기 들쳐 안고 아내를 다독여 본다. 퀘스트가 생각보다 어렵다.
1시간 가량.. 내가 이제 포기해야 겠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아내 진정되기 시작했다. 다음 퀘스트는 가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 이거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휴대폰은 모두 꺼진상태.. 주변 어머니 친구분들 부터 만나 정보 수집에 들어간다. 시간 반 정도 헤맨끝에 옆동네 놀이터에서 어머니 발견.

그날밤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사는 내가 딱해 보이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깊어질 때로 깊어진 고부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후두부가 또 당겨오기 시작한다.


오늘로 부터 11일전

일하는 내내 가슴이 뜨끔거리면서 통증이 생겼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한다.
이러다 우리 애기 아빠 엄마 말하기도 전에 '안녕~' 부터 해야 하는건 아닌가 걱정된다
밑의 직원 큰 화분 깨먹는 소리 들려온다.
뒷골 무쟈게 당겨온다.

귀가후 집에 소음여부 확인해보니 일단 잠잠하다. 아들 퇴근했는데도 어머니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TV만 뚫어 져라 보고 있다. 살며시 내방 문을 열어보니 아내 또 짐싸고 있다. 후두부 또 당겨온다..

대화를 시도했다. 오늘은 특이 상황 발생건수 없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기 있으면 숨쉬는것 조차 힘들어 당분간 친정에 가 있겠다고 한다.

머리는 말리고 있는데 몸이 굳어서 움직여 지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를 친정에 당분간 보내는게 낫다고 판단했던것 같기도 하다.
내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ㅡ ㅡ;;


오늘로 부터 10일전

간만에 숙면을 취했다. 근심거리는 많았지만 애기가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으니.... 상쾌했다. 그리고 아내한테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평상시와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문자가 한통 왔다.

"97학번 김** 오늘 오후 심장마비로 운명. 조문은 ** 병원에서"

눈 앞이 아찔했다. 나보다 2살이나 어린 놈이.. 심장마비라니..

가슴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최근 나도 겪고 있었던 일이다.
기분이 몹시 안좋아 지기 시작했다. 숨이 거칠어 진다.
수분뒤에 심호흡을 수차례나 하고 난뒤 조금 진정이 되어 간다.

김**   이 놈은 나랑 학창시절 인연이 깊었던 놈이다. 작년 내 결혼식까지
찾아왔었는데, 그때만 해도 얼굴 빛도 밝은 것이 멀쩡해 보였는데..

잠시 상념에 빠져있다가 **병원은 너무 먼곳이라 가보지는 못하고 대신
병원 주변에 사는 후배에게 연락해서 조의금 내달라고 부탁한 후에
인터넷 뱅킹을 켰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됐다..

조의금만 보내면 되는데,,,,,,, 그냥 뭐에 홀린듯 비행기 표를 예약해버렸다


오늘로 부터 9일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천공항이다. 라운지에서 노트북으로 호텔을 예약한다.
태국의 열악한 인터넷 사정을 알다보니, 여기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와 볼거리를 준비해 본다.
미드만 50Gb 받았다. 2시간 넘게 걸린다.
상관없다. 어차피 시간 구애 없는 갑작스런 여행이다 보니...


오늘로 부터 8일전

하루종일 히어로즈 시즌 1을 본다.
'히로' 라는 캐릭터가 맘에 든다.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런가..
'히로'의 영어 발음이 특히 친숙하다. ㅡ ㅡ;;
영어에 젬병인 나도 '히로'의 말은 상당부분 알아 듣는다.  웃긴놈이다.

누렇게 된 이가 큼직막하게 보이는 말보로를 75바트나 주고 사서 하루종일
다 피워 버렸다.


오늘로 부터 7일전

밖에 나가기가 귀찮다. 아침에 잠깐 조식먹으러 호텔 로비에 나갔다가 방에 돌아오는 길에 과자랑 과일 잔뜩 사가지고 들어왔다.

과자를 먹으며 히어로즈 시즌 2를 보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차 담배...

귀찮았다 다시 옷 챙겨 입고 나가기가..

본의 아니게 금연이 시작됐다.


오늘로 부터 6일전(금연 2일째)

조식 먹으러 호텔 로비에 내려갔다가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
흡연자는 알고 있을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의지만으로 금연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이 든지...

먼저 간 김**가 생각났다.  참았다.

히어로즈 시즌 3를 봤다.


오늘로 부터 5일전(금연 3일째)

목안이 텁텁하다. 혀에 백태가 잔뜩 끼여있다. 평소엔 하루 한번 하던 양치를 요즘은 3번 이상 하고 있다.
흡연욕구는 상당히 줄어 있었다.
후각이 예민해 진것 같다.

욕심이 생겼다. 뱃살도 집어 넣어야지...

심호흡 한번하고 절식에 들어가본다.

히어로즈 시즌 3를 마져 본다.


오늘로 부터 4일전(금연 4일째 절식 2일째)

금연은 무리없이 진행됐다.
배가 고프다 어지럽다. 움직이는데 기력이 많이 떨어진것 같다.
어쩔수 없이 누워서 미드를 감상한다

윤진킴이 의외로 몸매가 괜찮다. 2편까지 재미없던 '로스트'가
윤진킴의 야외 목욕신을 기점으로 흥미진진해 진다.


오늘로 부터 3일전(금연 5일째 절식 3일째)

금연은 무리없이 진행됐다.
허기짐도 상당부분 감소했다. 태사랑의 '먹는 이야기' 방에만 안들어 가면
참을 수 있을것 같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킴 바우어'다. 대체 왜 왜 왜 아빠말을 죽어라 안듣는 건가?
혹시 내 아기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24시 시즌 1을 보다가 잠이 든다.


오늘로 부터 2일전(금연 6일째 절식 4일째)

입냄새가 심하게 난다. 간혹 헛구역질도 나기 시작한다. 어지럽다.
손발이 저린다. 저혈당이 걱정되어 사탕 하나를 천천히 녹여 먹는다.
금새 괜찮아 졌다. 아~ 내몸은 왜 이리 정직한 것일까

24시 시즌 3을 마스터 했다.

걱정이다. 이제 남은거라곤 24시 시즌 4 밖에 없다....

오늘로 부터 1일전(금연 7일째 절식 5일째)

머리가 생각보다 맑다. 5일간 먹은거라곤 사탕 2개와 600ml 물 9병 밖에 없는
데 기력이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헬스장에 가본다.
자전거를 40여분간 탔다. 어지럽다..
그럼 그렇지... 사탕 하나를 먹는다.

누군가가 태국에 영화 잔뜩 가지고 온다고 태사랑에 글을 써 놨다.
기쁘다.. 빨리 와야 할텐데..

오늘 (금연 8일째 회복식 1일째)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위장이 깜놀할까봐 저지방 우유 한모금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상쾌하다.

점심무렵까지 인천공항에서 샀던 책을 찬찬히 읽어 본다. 우유 두 모금을 마셨다.

저녁에 해가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태국에 와서 처음으로 30분 이상 방콕 거리를 산보하듯 걸어본다. 먹고 싶은게 지천에 깔려 있다. 참았다.

우유 두 모금과 요쿠르트 한병을 마셨다.

-------------------------------------------------------------------------

뱃살이 많이 들어갔다. 입고 왔던 옷의 허리가 한 주먹이나 남는다.
기력의 손상은 심하지 않다. 담배를 끊어서 머리도 맑아지고 몸에 베어 있던
찌든 냄새도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가슴이 저렸던 증상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뒷골도 아프지 않다.

아내도 어머니도 날 걱정하는 전화를 자주 해 온다.

둘이 다시 다투지 않고 가출도 안할꺼라면 귀국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다고
협상 들어갔다. 확실하게 답을 안내려준다.
당분간 방콕에 더 머물어야 겠다. ㅡ ㅡ;;;

아들이 보고 싶다.


10 Comments
전설속의날으는까칠한닭 2009.08.15 00:09  
아하하하하하~!

인생살이가 다 그런거죠..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치앙마이오세요~!

제 전문 닭백숙 해드리겠습니다.
성주불수 2009.08.15 00:32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조화로운 삶' 에서 나온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라는 책을 조만간 방콕 오시는 분들중 구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법정 스님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땡기는 군요 ^^

책값 이외에 당연히 후사 들어갑니다. 도착 날짜 알려주시면 공항으로 마중나가 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요 ^^

쪽지나 전화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011.9535.8275 
(태국에서) 001.82.11.9535.8275

전설속의날으는까칠한닭 2009.08.15 00:37  
인터넷으로 해외배송 주문하세요~!

그게더 편할겁니다.
개미 2009.08.15 08:19  

호텔에만 있지 말고 산책하세요.

저는 단 2-3일만에 새까맣게 탈정도로 산책하고 돌아다녀서
피부색은 완전 현지인화 되버려요.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가 산책하기에 아주 좋답니다.

허접1 2009.08.15 10:23  

전 왜 이렇게 님의 글에서 강력한 철학이 느껴지죠..

저도 모레면 출국인데 금연/절식하면 호텔에 있고 싶다는 충동이..ㅋ

마음의소리 2009.08.15 10:36  

재미와 깊이를 같이 느낄 수 있었어요..

24시 시즌4밖에 남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는 저까지 긴장이...
야심한 밤에 담배가 한가치 밖에 남지 않았다는 느낌.. ㅡㅡ

글만 읽었을뿐인데 나 왜 이렇게 피곤한거죠?

hoony~ 2009.08.15 11:10  
우오... 도전해봐야겠다. 금연 - - +
타완 2009.08.15 14:34  

가슴저린거... 심근경색 초기 증세 아닌가요? 금연 필수입니다. ^^
글이 은근히 웃겨요...

로지아 2009.08.16 01:55  
저도 태사랑 어딘가에서 영화 잔뜩 받아간다는 글에 누군가가 미드 잔뜩 받아왔으니 바꿔보자는 답변 본 적이 있는데 님이었네요........^^

고부간의 갈등... 주변 사람들 보니 제일 힘들더군요.
잘 해결되시길 바라고......... 이제 몸도 잘 추스리세요^^
SunnySunny 2009.08.16 11:33  
아 저도 이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의 소리 님처럼 갑자기 피곤해지네요.. 제가 겪고 있는 것 마냥.
밥 잘 챙겨드세요. 타국에서 아프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ㅠ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