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들.- 왜그랬을까?.-그것도 추억이겠지
"너 죽을래 살래"라고 질문할래 하면
죽을래 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떠난 95년 겨울 유럽에선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젊다는 것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그랬을 것이라고요?..
그러나 그들은 20대초반의 어린애(?)들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배낭여행 중늙은이들(?)이 였습니다
95년 12월 잘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결혼한지 1년도 안된 새댁을 꼬셔서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각오는 당당하였으나
그 모습이 어설퍼 보였는지 길에서 만난
한참어린 후배들이 "어디 신혼여행 오셨냐"고 야유비슷한
말들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였습니다
여행이 40일이 넘어가자..
유럽이 손바닥 만하게 보입니다
행선지도 없이 아침에 눈뜨고 기차역의 전광판을 바라보고
"어디로 갈까 찍자.." 이렇게 됩니다
50일을 넘긴뒤로
무식하게 용감한 저와같은 중늙은이를 (사실 전 그때 젊었는데..)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교다닐때
해외 배낭여행은 커녕 제주도 가보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 중늙은이들은 일단 사회에 나와서
정신못차리게 휘돌아다니다가..한참어린 후배들이
배낭여행이다 하고 유럽이네 동남아네 하고 동에번쩍 서에번쩍하니
무지하게 열받았나봅니다
잘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대학원 공부 그만두고..
꽁꽁 모았던 결혼자금 홀랑깨서..
유럽으로 날라왔나봅니다
이사람들 웬간한 여행으로는 배낭여행을 먼저 시작한 후배들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무서운 활동들을 하고다니면서 그것을 무슨 훈장인것 처럼
자랑했습니다
이들의 자랑스런 발자취는 전쟁터를 누비기..
이때 보스니아는 내전으로 인해서 관광객이 지나가는 길이
아니였습니다. 여기를 들어가려고 별별짓을 다하는 그런
중늙은이들을 참 많이 보앗습니다
근처 크로아티아까지 들어가보았다고 비자를 자랑하던
그당시 대기업 중퇴자도 기억납니다
반드시 해봐야 된다면서 빈에서 베오그라드를 거쳐
아테네로 가본다는 총각선생님도 기억납니다
이탈리아에서 봉사활동으로 배타고 알바니아로 간다는
신부님들 틈새에 껴서 갈수있다고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그대로 따라해볼꺼라고 큰소리치던 아저씨도 보았습니다
토마스쿡 열차시간표에도 시간이 안나와잇던
그 전쟁터를 왜 가느냐고 물어보니..
평생에 자랑스런 배낭여행이 되려면
그게 젤로 좋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짤스부르크에 가서 모짜르트 생가정도 보고온것으로
사람들이 나를 최고의 배낭여행자로 쳐주겠냐라는
아주 도전적인 발언들이였습니다
사실 젊지도 않는 그들의 피를 그토록 끓게 만드었던것은
"이번이 나의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라는 조바심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인생의 최고의 추억은 이곳에서 만든다:라는
아집이 저절로 들었던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행은 죽는날까지 계속되는것이라는걸
알게될때까지 몇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생이 여행인데..
내스스로 더이상 살기싫어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행은 계속 이어지는 것인데 말이죠..
어제의 여행보다 오늘의 여행이
그리고 오늘의 여행보다 내일의 여행이
더 좋고 만족할수 있게 하는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여행이 아닌가 합니다
- 그냥 떠올려진 추억의 한조각 입니다
인생이 바로 여행인데
스스로 책임지는 인생이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더 따지고들면 그순간부터 아햏햏입니다..
죽을래 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떠난 95년 겨울 유럽에선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젊다는 것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그랬을 것이라고요?..
그러나 그들은 20대초반의 어린애(?)들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배낭여행 중늙은이들(?)이 였습니다
95년 12월 잘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결혼한지 1년도 안된 새댁을 꼬셔서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각오는 당당하였으나
그 모습이 어설퍼 보였는지 길에서 만난
한참어린 후배들이 "어디 신혼여행 오셨냐"고 야유비슷한
말들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였습니다
여행이 40일이 넘어가자..
유럽이 손바닥 만하게 보입니다
행선지도 없이 아침에 눈뜨고 기차역의 전광판을 바라보고
"어디로 갈까 찍자.." 이렇게 됩니다
50일을 넘긴뒤로
무식하게 용감한 저와같은 중늙은이를 (사실 전 그때 젊었는데..)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교다닐때
해외 배낭여행은 커녕 제주도 가보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 중늙은이들은 일단 사회에 나와서
정신못차리게 휘돌아다니다가..한참어린 후배들이
배낭여행이다 하고 유럽이네 동남아네 하고 동에번쩍 서에번쩍하니
무지하게 열받았나봅니다
잘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대학원 공부 그만두고..
꽁꽁 모았던 결혼자금 홀랑깨서..
유럽으로 날라왔나봅니다
이사람들 웬간한 여행으로는 배낭여행을 먼저 시작한 후배들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무서운 활동들을 하고다니면서 그것을 무슨 훈장인것 처럼
자랑했습니다
이들의 자랑스런 발자취는 전쟁터를 누비기..
이때 보스니아는 내전으로 인해서 관광객이 지나가는 길이
아니였습니다. 여기를 들어가려고 별별짓을 다하는 그런
중늙은이들을 참 많이 보앗습니다
근처 크로아티아까지 들어가보았다고 비자를 자랑하던
그당시 대기업 중퇴자도 기억납니다
반드시 해봐야 된다면서 빈에서 베오그라드를 거쳐
아테네로 가본다는 총각선생님도 기억납니다
이탈리아에서 봉사활동으로 배타고 알바니아로 간다는
신부님들 틈새에 껴서 갈수있다고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그대로 따라해볼꺼라고 큰소리치던 아저씨도 보았습니다
토마스쿡 열차시간표에도 시간이 안나와잇던
그 전쟁터를 왜 가느냐고 물어보니..
평생에 자랑스런 배낭여행이 되려면
그게 젤로 좋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짤스부르크에 가서 모짜르트 생가정도 보고온것으로
사람들이 나를 최고의 배낭여행자로 쳐주겠냐라는
아주 도전적인 발언들이였습니다
사실 젊지도 않는 그들의 피를 그토록 끓게 만드었던것은
"이번이 나의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라는 조바심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인생의 최고의 추억은 이곳에서 만든다:라는
아집이 저절로 들었던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행은 죽는날까지 계속되는것이라는걸
알게될때까지 몇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생이 여행인데..
내스스로 더이상 살기싫어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행은 계속 이어지는 것인데 말이죠..
어제의 여행보다 오늘의 여행이
그리고 오늘의 여행보다 내일의 여행이
더 좋고 만족할수 있게 하는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여행이 아닌가 합니다
- 그냥 떠올려진 추억의 한조각 입니다
인생이 바로 여행인데
스스로 책임지는 인생이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더 따지고들면 그순간부터 아햏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