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전의 세계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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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전의 세계를 다녀왔습니다.

봄길 1 307

이번에 사용한 타임머신은 나의 레죠승용차입니다.
부산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30년전의 세계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30년전 어느 초여름 나는 내가 늘 출입하던 교회의 마당 화단에 2센티 정도로 도드라져 나온 새순 하나를 보았습니다. 풀은 아닌데...이게 무슨 순일까 나는 궁금해하며 그것이 자라기를 기다렸습니다.
도심에서만 살아온 나는 결국 이 순이 잘 자라 무슨 열매를 맺을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그해 여름 거의 날마다 그 순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아무도 거기에 마음을 주지 않음을 오히려 기뻐하면서...오직 그 순이 잎을 피우고 그해 가을에 손가락 한 마디만큼이나 자란 것을 나는 사랑스럽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7년을 그렇게 지켜보는 중에 결국 나는 그것에 조그만 돌배가 달리는 것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그후 나는 부산을 떠나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아내와 아이들을 얻어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30년전 내가 처음 보았던 그 순이 이제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물론 얼마전에 본 전남의 어느 편백 숲과 달리 수령이 30년이나 되었는데도 모양도 크기도 볼품 없이 못생긴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이제 내 손아귀로는 쥘 수 없는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자주 생각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나무는 존재할까...아니 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을까...어쩌면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그렇게 생각해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는 나의 이 독백을 듣고 말합니다. 병든 나를 향해 선생님, 걱정마시고요. 가실 때되면 가세요. 웃으며 싫지 않게 말을 합니다.
양자역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분명 관찰자가 없으면 그 어떤 대상도 존재하지가 않는다는 말, 나는 자주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에 의미와 실제를 부여하는 관찰자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아니면 그냥 누군가 보아주고 찾아주고 만나주기를 기다리는 존재로 거기 있을 뿐인 그 무엇인지...
과연 부산의 그 교회 그 마당 한 구석의 그 나무는 내가 없어진 세계에서도 존재하는 것으로 거기에 있게될까요...아니면 내가 없는 세상에 그 나무는 이미 내가 없음으로 인해서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일까요...그렇게...
나는 이 시간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을 곰곰 생각해봅니다.

1 Comments
나마스테지 2008.04.25 14:42  
  봄길님. 반갑습니다.
'거기에 존재한다'-라는 실존의 화두를 들고 고민했던 젊은 날이 생각납니다.

과연, 미래는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요?
어떤 형태로?

영혼이나 사후세계에 대해, 실존하는 현시점에서 사유가 가능할까요.

20대 중반에, 저의 손금을 보고 40초반에 잘하면? 죽겠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그때는 참, 딱 죽기 좋은? 나이구나-라는 객기를 가졌었죠.

지금은, 봄길님께서 던지신 화두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그런 시간을 못가지고 현상에만 반응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술마시면서, '이 세상에 종말이 올지라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자'-농담들도 많이 한 젊은 날.

지금은 봄길님의 화두에 자신을 들여다 보는 중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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