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친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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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친구의 기억

봄길 6 299
보국대가 무엇인지 아세요? 일제가 한국인을 강제징용하여 거의 노예노동을 시키던 제도입니다. 뭐 이런 것 흉내내서 전두환 때 학도호국단같은 것도 생겼다고 봅니다.
40년전에 제가 살던 집이 보국대관사라고 말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 때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대형아파트단지가 들어섰지만 우리집앞은 엄청 나게 큰 도기회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해방후 배분됐는데 그게 8평씩 되는 집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은 길가모퉁이에 있어 좀 가치가 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는 그게 늘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공동화장실이 맨 구석에 있었거든요. 밤중에 혼자 용변보러 거기까지 갈 때면 정말 전설의 고향 저리 가라였습니다.
근데 그나마 우리 집은 불하받은 집이었는데 길맞은 쪽 회사담벼락에는 회사용지에 무허가로 지어진 집들이 6~7평씩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거기 바로 맞은 편에 나와 동갑인 친구가 무려 9형제와 부모님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10형제 중에 그 당시까지 남은 형제가 6명뿐인데 그쪽은 다 생존해서 그야말로 사는게 말이 아니었습니다. 형제들 간에도 생존경쟁입니다. 제가 볼 때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육강식이구나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제 느낌에는 엄청 거칠게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굶어죽어도 체통을 잃어서는 안된다 하는 식인데 그 친구 가족들은 살아야 염치도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좀 똑똑하고 착하다 하는 얘기를 늘 들었습니다. 근데 그 친구는 말썽쟁이이고 공부를 못한다는 꼬리표가 늘 붙어다녔고요. 허긴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흉이 될 시절도 아니었고요. 그냥 그렇게 같이 어울려 산 것이지요. 그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진학했고 걔는 공장을 전전했지요. 고등학교 때인가 걔가 얼마 동안 배를 타고 다니다가 어느 명절엔가 들어와서는 술이 찡하게 돼서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더군요. 그 당시에 그런 모습은 인간 말종처럼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저도 다소 부담이 됐지만 걔를 다독였습니다. 좀, 정신도 차리고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그 당시만 해도 약간 애어른처럼 굴었습니다. 그랬더니 걔가 저랑 얘기 좀 하자더군요. 어디 갈곳이 있습니까? 골목길바닥에 앉아 얘기를 했습니다.
울면서 살 의욕이 없다고 하는군요. 죽고싶다고도 하고요. 자기는 살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도 하고요. 하여튼 측은한 마음이 들더군요. 뭐 기억은 잘 안나는데 공자 얘기처럼...달래기도 하고... 또 걔가 오래 된 교인 가정에서 자랐거든요. 신앙을 잃지말아야된다고 설득을 했죠.
그 시절만 해도 교인이면서 술마시고 담배피우면 정말 지옥갈 사람처럼 여기던 분위기인데...저는 잘 참았어요. 그런 시각으로 걔를 대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 후에는 늘 걔가 저를 만날 때면 스스로 그걸 조심하더군요.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뒤에 목사가 돼서도 그 친구를 잊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만나지는 않았지만...명절같은 때 간혹 만났습니다. 근데 제가 견딜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지고 지난 10여년을 힘들어할 때 저를 가장 크게 위로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친구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게 대한 알 수 없는 미움으로 상처를 지니고 살았던 사람들 몇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아니라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러기에 저의 약점을 참지 못하던 사람 몇입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 친구와 저 사이에는 서로를 품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친구가 전화를 했더군요. 그 친구가 지난 해 9월에 방글라데시에 6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다녀왔거든요. 저는 변변한 선교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데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평생 막노동만 하고 사는 친구인데 그 친구는 짧지않은 기간을 그랬습니다.
아내에게, 어쩌면 방글라데시같은 곳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자면 그 친구같은 이들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얘기했습니다. 막노동선교말입니다. 그 친구는 그렇게 6개월을 멋지게 선교하고 왔습니다. 아직 저는 그런 선교를 못해봤는데 말입니다.
거제도 변두리지만 집도 있고 땅도 조금 있고 애들 둘이 대학도 마쳤고 자기가 할 수 있는게 막노동이니 더 늦기전에 그와 같이 섬기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쩔까 고민 중이라 합니다. 자기를 원하는 곳으로 가야할까...
며칠 후에라도 저도 거제도를 한 번 가볼까 생각합니다.
6 Comments
시골길 2007.07.16 07:32  
  봄길님~ 목사님 이시네요^^ 이번에도 얼릉 거제도로 가셔서 좋은 친구 만나보시고 오셔야겠군요.. [[고양웃음]]
봄길 2007.07.16 08:07  
  지금은 아니어서 참 어려운 형편입니다. 단순히 교인으로 산다는게 꼭 사회에서 백수로 사는 것같아 힘들답니다. 좋은 훈련이라 생각하고 있죠.
미쾀쑥 2007.07.17 01:24  
  봄길님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봄길님의 따뜻한 세상에 대한 시선이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 같군요. 그냥 느끼고 글 읽을 때마다 훈훈합니다. 저는 가족이 모두 기독교인데 유감스럽게 저만 불교를 더 가깝게 느끼고 삽니다. 아마 어렸을 때 교회에서 목사로부터 성 추행을 당한 기억이 저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했나봅니다.  성격검사를 하면 신에 대한 신성성이 부족하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제 나름 자아가 우주로 확장되는 연장선상에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봄길님 글 보며 항상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봄길 2007.07.17 12:23  
  미쾀쑥님, 감사합니다. 자라보고 놀라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데...깊은 상처에도 고운 마음으로 저를 대해주시니...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종종 저는 고난이 복이 된다 하는 생각을 잊지않으려 애쓴답니다. 오히려 고난덩어리같은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분께 늘 기도하고요. 좋은 모습 늘 보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덧니공주 2007.07.17 20:49  
  참,멋진 친구분을 두셨네요~
봄길님 친구분과의 우정 이야기,넘 좋아요[[으힛]]
경기랑 2007.07.18 14:25  
  멋진 친구분과 함깨  건강하시고 행복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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