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330억달러 정도 됐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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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330억달러 정도 됐다고합니다.

봄길 8 302

저의 기억 속에 우리나라는 1960년도부터입니다. 경제적 의식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느낀게 그때 쯤이라는 말입니다.

아마 5살 때일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부산 영도에서 대청동에 있는 메리놀병원으로 제 몸의 정기검진을 받고자 가던 일이 기억납니다.
몸도 불편한 아버지께, 걷기가 힘들어 영도다리를 건너면서 업어달라고 하던 일이 기억나고 다리를 건너 다릿목에 좌판을 펴고 떡을 팔던 아주머니의 떡판에서 망개떡을 두개 사서 먹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그게 벌써 47년전 일입니다.

사라호 태풍이 부산을 강타하던 그 때가 5살 되던 해 가을 추석 전날입니다. 엄청난 바람과 비가 몰려왔습니다. 그 경황에도 어머님은 500미터 떨어진 곳 방앗간에 맡긴 떡 얼마를 찾으러 간다고 합니다. 떼를 쓰고 어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큰 길 건널목을 겨우 건너 떡을 찾아 어머니의 머리에 이고 나섰을 때, 바람은 두 시간 전과 달라보였습니다. 기왓장들이 이리 저리 날아다닙니다. 양철 지붕들은 칼날처럼 머리 위를 스치며 떨어져내리고 어머님은 두려운 안색으로 종종 걸음을 합니다. 이미 4차선 대로를 건널 때 빗물이 길을 넘쳐 저는 어머니의 손만 의지한 채 둥둥 떠서 건넜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찌 그리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초등학교 입학 전에 그러니까 7살때입니까? 쿠데타 후 화폐개혁으로 몸서리를 치던 궁핍을 또 기억합니다. 멋도 모른 채 월급이라고 보따리에 사서 오던 돈들을 만지며 깔깔대던 일, 어머니의 한숨소리...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저럴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일...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상전벽해입니다. 그때의 일들은 꿈만 같이 지나가고...이제는 박정희만 없는게 아니라 제 아버지며 어머니며 그리고 그이들이 꿈처럼 소망하던, 궁핍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랍니다.
저는 지금도 망개떡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떡을 찾아보기가 불가능합니다.

승용차로 날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것이 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뚜렷한 알람처럼...이와 같이 살면서 마음과 느낌은 오히려 진흙구덩이를 딩굴던 그때보다 빈곤한 세상을 산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특별히 어머니 없는 세상이 이렇게 크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인 줄을...불현듯 그 분이 세상에서는 제 인생의 오메가였구나 하는 느낌이 밀려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인구가 실제로 2000만명 정도라고 하면 지난 달 우리 국민 한 사람이 대략 150만원 어치를 판매하였습니다. 정말 상전벽해입니다.
옛날에 배웠던, 무역에 있어서의 협상가격차를 떠올렸습니다. 공산품과 농산품은 가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된다는...
1차 산물 특별히 농산물을 생산해서 150만원을 매출하려면 대체 얼마나 팔고 얼마나 수고해야할까...
제3세계에서 가령 태국같은 쌀생산국에서 농민들은 1톤에 쌀매출로 얼마를 벌 수 있을까? 매출가격기준으로 아마 10톤은 출하해야 150만원을 할 것 같은데...
쌀은 그나마 낫다 합니다. 사탕, 커피, 코코아, 다국적기업에 납품하는 가죽, 세공제품들...얼마나 해야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마음이 답답해져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우리 부모들이 바로 그렇게 노예처럼 자기들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오직 우리들을 바라보며...자기의 삶을 기꺼운 희생처럼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식들의 세대가 누리는 세상을 자기 삶의 성공처럼 여기며 우리보다 더 큰 만족감을 맛보고...이제 자기 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저는 저의 부모같은 이들이 또 어디서 수십억, 지금도 그와 같이 살고 있는 지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자주 우리는 부모들의 수고와 슬픔은 까마득히 잊은 채 단지 우리 삶의 여유만을 끝없이 추구하며 살고있는 것은 아닌 지 깊이 생각해봅니다.
분명히 저의 부모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저의 부모님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끝날까지 곳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세상은, 인생은 그리 쉽지 않은 것...

8 Comments
간큰초짜 2007.07.03 10:39  
  제가 태어나기 전이지만, 아직도 어머님과 삼촌들 어른신들은 사라호의 무서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기장어촌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아직도 그만한 태풍은 평생 본적이 없다고들 하십니다. 그때 유복자가 되신 당숙은 벌써 쉰이 훨씬 넘으셨습니다. 그래서 추석전날은 기장 일대에 제사가 아주 많습니다.
sFly 2007.07.03 11:28  
  사라호태풍때 전 1살배기.
집이 남포동의 해변가라 피해가 만만찮았다는 말씀들 듣고 자랐습니다.
청년기의 역동적인 나라 모습 찾기가 최근 10년간 어려워져 가슴이 아픕니다.
sFly 2007.07.03 11:29  
  조로한 모습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냥냥 2007.07.03 15:45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더 모르겠습니다.
다 같이 행복해 질 순 없다는 게 세상의 법칙일까요?
포맨 2007.07.03 18:18  
  지금 무비자로 해외여행 다닐수 있는것이 게 우리 형,아버지,할아버지들의 무한한 자기희생의 결과물인데...

남들은 앞서가려 노력하는데 우리는 쓸모없는 내분으로  주유구에 설탕이나 집어넣고 있으니 참으로 암울합니다.
덧니공주 2007.07.03 23:44  
  초등학교땐,500원이면,짜장면을 먹거나,택시를 탈수
있었어요.그리고,전,100원으로두 행복했어요.
50원짜리 뽑기(달고나?) 열심히,핀으로,쪼아서,내동생들
먹이고,난 또,뽑고,동생들은,또먹고~ㅋ
중학교땐,천원으로,떡볶이를 사먹고,깐돌이두 먹고~
고등학교땐,오천원으로,떡볶이먹고,버스타고 댕기고~
그리고,지금은,돈만원이,점심한끼먹고,교통비쓰면,후딱
아,,,,,100원으로도 행복했던,시절이 있었는데~
망개떡을 5대째,하고있는 집이 있긴 있더라구요~
TV에서,언젠가 망개떡이 나오길래,아,신기하다면서
봤거든요~
고구마 2007.07.03 23:55  
  앗, 매리놀 병원, 제가 태어난 곳인데....
그리고 사라호 이야기도 엄마가 자주 하던 이야기 중의 하나 였어요.

하여튼...생각을 하게끔 하는 글이네요.
경기랑 2007.07.04 00:32  
  오래전 기억을  한참 더듬어 보았습니다,,,,
좋으신 글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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