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에 냉담한 태국
얼마 전 태국을 다녀왔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韓流)가 이곳에서만 잠잠한 이유가 궁금해서다. 낮의 태국은 조용했다. 파타야에서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밤은 달랐다. 우리와는 달리 플로어가 없는 나이트 클럽은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구분이 없었다.
당연하게 세대를 구분하는 노래장르가 없었다. 앉은자리에서 일어서서 춤을 추고 뜨거운 애무와 함께 엑스터시와 같은 마약이 유혹했다. 늘씬한 몸매와 풍만한 젖가슴을 지닌 여자들이 대부분 여장남자였고, 단조로운 음악과 정교하지 못한 춤이 무대 위에 펼쳐지자 미성년소녀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태국의 곳곳에는 일본이나 중국의 대중음악이 흘러 나왔다. 마사지 홀의 최고 히트곡은 중국의 '아임 스틸 러빙 유'였고 일본의 록그룹 X 재팬은 태국소녀들의 우상이었다. 반면에 한국의 대중가요는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빙빙빙'을 제외하고는 한국 가요를 거의 몰랐다.
베트남, 싱가포르, 대만, 중국에서 쉽게 만나는 한국스타의 브로마이드가 여기서는 없었다. 방콕시내 극장가에 '조폭 마누라'가 상영되고 있었지만 관객들의 외면에 민망할 정도였다. 드라마 '가을동화'는 송승헌이 주목받는 데 그쳤다.
태국은 한류의 진원지인 동남아 화교권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나라.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왕을 신격화한다. 왕이 그려진 화폐로 장난칠 수 없다고 하여 도박을 하지 않는 나라다. 쌍꺼풀이 없는 눈과 하얀 피부를 가져야 미인이라며 한국스타가 최고라는 그들이다. 하지만 태국에서 한류는 차갑기만 하다.
이유는 많겠지만 우선 태국은 전 세계예술인들의 이민을 최대한 받아들인다. 그래서일까. 동일리듬의 반복성으로 태국민속음악정도로 여겼던 것이 1년 6개월이 지나 서울에서 테크노음악으로 소개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게다가 우리의 노랫말은 이국인이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들이 우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방콕 최대의 대중 사우나에는 '땀을 씻고 냉탕에 들어가시오'라는 한글 경고문이 붙여져 있다.
함께 다니던 가이드는 일본인 흉내를 내면 더 안전하다고 했다. 일본은 자국민이 피해를 입으면 끝까지 추적하지만 한국은 며칠만 떠들다가 잊어버리기 때문이란다. 터를 잡아야 집을 짓는다고 했던가. 태국의 한류는 정부와 우리 국민의 몫이다. 대중문화생산자는 그 다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