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여행04] 내일은 어디 갈까?-이현숙 지음
내일은 어디갈까?
이현숙 지음/시공사
사유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고
몸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은 후자다.
[내일은 어디갈까?]는 요술왕자와 고구마가 태국에 배낭여행을 간 이야기를 엮어 놓은 것이다.인도와 유럽여행기는 천지 볏가리지만 태국여행기는 좀 드물다.
남편 요술왕자가 태국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 고구마 부인과 신혼여행 겸 태국을 장기로 여행하게 되었다. 때로는 더 있고 싶어도 일정이 빡빡해서 못 있고 때로는 얼른 가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부인 고구마가 쓴 5개월 동안의 태국 신혼 여행기다. 태국을 북부지역부터 남부지역까지 안 간데 없이 골고루 가 보고 썼다.
누구나 신혼여행을 갈 때는 공항에서 예쁘게 보이게 입는 용도 밖에 안되는 예복스타일의 옷(BE ART라는 제품은 전부다 다 그 스타일) 을 입고 속눈썹을 겁나게 펄럭거리며 우아하게 손 흔들고 가서 픽업 나온 리무진 또는 하다 못해 에어컨 나오는 미니밴이라고 타고 호텔에 가는 법.
그런데 우리 필자는 돈무앙 공항에서 59번 버스를 기다리다 안 오니까 다시 돈무앙 공항에 돌아와서 잠깐 대기(노숙이라고 하지 뭐)하다가 새벽녘에 59번 에어컨도 없고 빈자리도 없는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입성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눈물이 삐질 나온다.
이 외에도 잠시 맡은 가게에서 땀 나게 음식만들고 서빙한 이야기, 소매치기 열심히 잡아서 경찰서에 데려다 놓으니 오히려 엄청스리 고생한 이야기, 한국에 전화한다고 전화비 300밧 빌려가서 떼먹힌 이야기등등 고생스런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김영사 헬로우 태국의 한줄 한줄이 그냥 나온 가이드북이 아님을 알겠다. 글에서 필자의 노고가 느껴진다.
책 내용 중에 벌레튀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메뚜기 튀김은 먹은 적 있어서 벌레튀김을 한 번 먹으니 이번에 고구마에게 캠코더를 들이대고 인터뷰를 하더란 얘기에 웃음이 피식나온다. 얼마전 태국에 갔을 때 나도 용감하게 사서 먹어볼까 했지만 벌레 크기가 너무 커서 이번에도 실패. ㅋㅋㅋ
태국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각종 사고와 질병, 부부싸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해외여행을 가보면 아무리 친한사이도 싸우는 법 어쩌다 던진 말 한마디도 서운한데 타국인지라 멀리 가지도 못하는 마음을 구구절절 생생하게 써 놨다.
이 책은 대화체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와 고구마님 기억력 짱 좋다'고 느꼈다. 그날의 상황과 싸움까지도 탁구 치듯 통통 튀기는 대화로 펼쳐나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봤다. 숨김없는 내용과 "꽤액~~", "으.......", "우이~" 이런 말도 써넣으니 어찌나 실감나던지 이야기가 금방 잡아올린 생선처럼 펄덕거린다. 읽다보니 필자가 정말 친근하게 다가왔다.
여행이 아니였다면 부부가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하기도 힘들것 같다. 요즘도 부부간 대화를 많이 하는지 궁금하다.
인상 깊은 부분은 어설픈 치약요법에 희생된 요술왕자 손이야기(131쪽)
비오는 날 어이없는 빡총의 게스트하우스 아줌마 이야기(148쪽)
싸무이 해변의 크리스티 쇼에서 서빙보는 화끈한 왕게이언니 이야기(163쪽),
같은 한국인끼리 눈도 안 마주친 풀문파티 이야기(182쪽),
돈아까워서 괴력을 발휘해 노 저은 이야기와 몸살에 시달리는 요술왕자 사진(191쪽)등 이다.
고구마가 잠시 요술왕자와 떨어져서 치앙마이에 있을 때 잇몸 염증 때문에 고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마시는 용도로 사용했던 5밧짜리 물을 필자는 양치질 할 때 꼭 썼다고 한다.
반투명 5밧짜리 물은 부부간의 정이 담긴 사랑의 정표가 아닌가싶다.
예전에 태국에서 흔히 사 먹던 물은 반 투명 플라스틱 병에 든 수돗물을 정수한 물이었다. 그 물을 꿀꺽꿀꺽 마시면서 '아! 태국에 왔구나' 하고 느꼈다. 별 생각없이 잘 사먹고 있었는데 홍익인간에서 만난 어떤 여행자때문에 맘 상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5밧 짜리 물 맛 없어서 어떻게 먹어요?" 라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밧 더 내서 6밧 짜리 생수 사 먹는게 훨씬 낫죠"라며 자기 입맛 까다롭다는 투로 말 했다.
'나 5밧 짜리 물도 태국의 맛이려니 하고 여기며 맛있게 마신다' 이렇게 속으로만 생각한 나.
나중에 한국 돌아갈 때 어떻게 갈꺼냐는 물음에 " 육로로 다시 중국 갈꺼예요. 중국 청도에서 배 타고 인천 갈려구요. 올 때도 그렇게 해서왔어요. "
물 맛에 무척이나 까다로운 그사람. 비행기 대신 중국-태국-중국 찍고 다시 배 타려는 이유는? 모르겠다. 모르겠다.
이 책은 태국 여행기로서 내용을 꽉 차게 실어 놓았다. 태국여행에 대한 Q&A와 루트 짜기 같은 부록도 보는 재미 쏠쏠하게 실어 놔서 태국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도 또 태국 여행 후 태국에 정이 가는 사람에게도 다 알맞다. 위에 쓴 것 처럼 글도 참 재미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장점은 평범함과 건전함이다. 요새 평범과 건전은 구닥다리라는 느낌을 줄 만큼 빠르게 변하는 사회지만 글을 읽는 내내 부담스럽지 않고 별나지 않은 평범한 점이 좋았다. 태국에 대해서 필자가 서술한 생각이 내 생각과 비슷해서 좋고 배낭을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쓴 꾸밈 없고 밝은 내용이 좋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시선이 온정적이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건전해서 좋다.
이 책은 나에게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심어 놓았다.
필자 고구마님과 요술왕자님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고 바란다.
이 책과 비슷한듯 대비되는 책이 있다.
LOVE&FREE
다카하시 아유무 글, 사진/동아시아
다카하시 아유무라는 일본의 젊은이가 결혼을 하면서 부인이랑 세계를 여행한다. 그는 1972년 생(이것은 요왕, 고구마님과 같다)으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괴짜 시인, 록가수, 사업가에서 이제는 LOVE&FREE 책이 엄청스리 팔려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다. 26살에 결혼을 해서(요왕&고구마님과 약 한달차이) 98년 11월에 출발 1년 8개월 동안 세계를 여행했다.
이들은 한 개의 도시에 값이 저렴한 집을 1주일 정도 빌려서 머문다. 자기 마음이 꽂히는 대상을 사진으로 찍었고 자기 느낌대로 글을 적었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몸으로 쓴 것 보다는 사유로 썼다.
원래 떠날 때도 돈 떨어지면 다시 돌아오자란 생각으로 갔고 여행 중간 중간에 그 나라 쓰레기 처리장에 들러 잡동사니를 모아 뭔가를 만들어 길에서 팔았다. 그 돈으로 다시 여행을 다녔다. 참 맘 편한 방법이다.
태국에 대한 것이 나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반갑다. 책의 첫 부분에 500밧 태국 공항세 영수증이 당당하게 나오고 카오산 로드에서란 제법 긴 글도 있다. 그 글 옆에는 실롬에서 월텟 방향으로 가는 77에어컨 버스의 뒷꽁무늬가 나온다. 익숙한 풍경이다.
이 둘도 부부인지라 그 느낌을 자주 긁적여 놨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영원한 여행'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진실로 마주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LOVE&FREE 동남아시아 편에서 )
물론 다투기도 했지만 숙소의 작은 방에 덜렁 남겨진 우리 둘
달리 도망갈 데도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가장 솔직한 토크쇼를 펼칠 수밖에 없다.
내 특기인 여자 꼬시는 작업이 일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영원히 빠져도 좋을 만한 남자'는
세상도 한 명도 없다는 식의 면목 없는 나날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데이트하던 시절에는 '멋있는 남자'로
남는 것이 간단했지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
자신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사랑하는 그녀와 긴 여행 떠나지 말도록.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니까.(LOVE&FREE 유럽편에서)
이 책은 크기가 작다. 내용도 적다. 책에 페이지 숫자도 없고 사진에 어떠한 설명도 없다.
도대체 왜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사진과 글에서 생각할 여지는 많이 주는 편이다.
하여간 어떤 방식으로든 결혼을 하고 여행을 하고 책을 펴낸 그대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