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열대 과일을 좋아 하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바나나나 파인애플이 아주 귀한 과일이였습니다. 동네 과일점에서는 아예 취급하지도 않았고 어디서 파는지조차 몰랐었습니다. 바나나 한 번 먹어 본 게 자랑거리였던 시절이었지요.
후에 한국서는 들어 본 적도 없었던 여러 종류의 열대 과일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망했습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과일은 실패하기가 어렵지." 라는 생각으로 생김새와 색깔만 보고 과일이라고 혼자 짐작해서 덥석 집어 들었다가 못먹고 버린 적도 있었고 먹는 방법을 몰라서 허망하게 낭비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실망을 경험하면서 '과일은 제철에 현지에서 먹는 게 최고'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과일은 제가 태국을 싫어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음식으로만 판단하면 저는 태국이 싫습니다. 피쉬 소스를 극혐하는 저는 태국을 싫어하는 대신 태국 음식을 아예 거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피쉬 소스가 안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했겠지만 팟씨유처럼 원래는 피쉬 소스가 안들어가는 음식에도 피쉬소스를 넣어 만드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음식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여서 태국 음식은 먹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거지요.)
태국 음식에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게 태국 과일입니다. 그렇다고 많은 과일을 먹어 본 건 아닙니다. 과일도 아는 맛, 먹어 본 맛을 우선적으로 찾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은 망고가 맛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망고가 특별히 더 맛있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처음 잘랐을 때 향은 좋지만 하나를 다 먹을 때 쯤으면 오히려 그 향에 질리기도 하더군요. 정말 맛있는 망고를 못 먹어 봐서 그런 거겠지요.
두리안을 빼놓고 태국 과일을 말할 수는 없을텐데... 처음 먹었던 두리안이 무미무향으로 실망감을 크게 안겨줘서 그런지 두리안보다는 잘 익어 물렁물렁한 수밀도가 100배는 더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두리안보다는 잭푸릇이 약간 더 취향인 듯도 하고요. 하지만 실상은 둘 다 별로...)
람부탄은 아무래도 독특한 모양 때문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되는데 모양만 특이할 뿐 맛은 리치(lychee)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좀 부끄럽게도 저는 오랫동안 리치와 롱간을 같은 과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한약재 중에 롱간을 말린 용안육이 있는데 예전에 본초학 강사가 당나라 때 양귀비가 어쩌구 하며 용안육을 리치를 말린 거라고 해서 내내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용과도 독특한 모습인데 중식당에서 디저트로 가끔 나오기도 하더군요. 딱히 맛있다는 생각은 안들었습니다. 단맛이 약한 배를 씹는 느낌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돈 주고 사먹고 싶은 생각은 안들더군요. 그러면서도 또 묘하게 생각이 나긴 합니다.
"이거다.!" 싶은 과일은 망고스틴(망굿)입니다. 처음엔 마늘 같아 보여서 독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하는 망설임도 있었는데 먹어 보니 향도 맛도 좋았습니다. 마트에 계절 상품으로 망고스틴이 나올 때가 있는데 태국에 비해 10배 정도는 비싼 가격임에도 한두 번은 사 먹게 됩니다.
(이거 먹을 때는 위생장갑을 끼고 먹는 게 제일 깔끔하더군요.)
바나나... 바나나는 평소에도 자주 먹는 과일이여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태국에는 어떤 바나나를 고를지 선택장애가 올 정도로 종류가 많아서 각각의 맛이 궁금해지고 그래서 사먹게 됩니다. 제 선택은 레이디 핑거 바나나 (끌루아이 카이) 입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도 팔긴 하는데 맛이 좀... 덜 달고 더 퍽퍽한 식감이더군요. 태국산은 아닌 듯 싶었습니다. 레이디 핑거 바나나 맛은 태국이 최고인 듯 합니다.
(근데 열대 과일 중에는 후숙 과일이 은근히 많은 거 같습니다. 놔두았다가 먹어야 하는 걸 몰라서 덜 익은 과일을 먹으면서 "이런 걸 왜 먹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아는 거 몇 개만 빼면 모르는 건 여전합니다. )
제가 생각하는 열대 과일의 으뜸은 망고스틴, 2위는 리치. 3위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못먹어 본 과일이 많기도 하고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 줄도 몰라서 3순위부터는 다 그만그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