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안성기와의 추억
얼마 전에 돌아가신 영화배우 안성기 선생을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1993년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살림출판사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1992년 8월, 양귀자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살림에서 나왔다.
한 젊은 여성이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를 납치하는 내용을 담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어머 어마한 속도로 팔려나갔다.
하루에 3만부씩 주문이 오더니 한 달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덕분에 자본을 축적한 살림의 심만수 사장은 오랜 꿈이었던 문예지를 창간했다.
1993년 여름, 주인석을 편집주간으로 삼고 임재철, 서영채, 강헌, 김종엽을 편집위원으로 위촉한 계간문예지 『상상』 창간호가 나왔다.
그 무렵 박광수 감독이 만든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를 논하는 좌담이 「소설가 영화가 만나는 한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상상』 창간호에 실렸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임철우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박광수 감독과 임철우 소설가, 출연 배우인 안성기, 문성근, 안소영, 그리고 원작을 각색하고 조감독도 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한 소설가 이창동이 좌담에 참석했다.
소설가 주인석이 좌담의 사회를 보고, 나는 그를 돕기 위해 참여했다.
당시 안성기는 이미 최고의 배우였다.
(그래서 양귀자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안성기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내가 안성기에게 느낀 것은 겸손함과 조용함이었다.
특유의 성격 탓인지 문성근씨가 가장 활발하게 떠들었는데, 안성기씨는 먼저 나서는 법이 없이 누가 권해야 발언을 했고,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한 톤을 유지했다.
오전에 시작한 좌담이 오후까지 이어지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한 마디씩 하는데, 안성기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짜장면이나 한 그릇씩 시켜먹죠.”
나는 그 말이 농담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일행은 그 좁은 사무실에서 중국집 배달부가 양철통에 담아온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는 걸로 점심을 때웠다.
탕수육을 시키지 않은 건 확실하다.
꾼만두가 서비스로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성기 선생의 영면을 빈다.
*사족1
『상상』 창간호 표지에는 그날 좌담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이 실렸다.
김중만 선생의 사진도 파격적이었지만, 문예지 표지에 영화배우의 사진이 실린다는 게 더 파격이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사족2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장길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때, 양귀자 선생은 주연배우로 안성기를 캐스팅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안성기의 보다 강력한 거절로 불발되었고 임성민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최진실이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