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 씨가 어제 했어야 할 말을 대신 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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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타난 대한민국 vs 캐나다
엔비디아의 젠슨 웡이 한국에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히자, 한국사회는 일제히 환호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무조건 환영할 일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십만 장의 GPU를 확보한다면 한국이 세계적인 ‘AI 팩토리’로 도약할 물리적 기반이 마련되는 것은 사실이다.
AI라는 두뇌가 한국의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와 생산라인에 결합될 경우, 막대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이 여전히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즉 AI의 핵심 주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2023 년과 2024 년, AI 원천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골든타임은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독자적 모델 개발과 기초 수학·컴퓨터과학 연구를 떠받치던 연구 인프라는 구조적으로 훼손되었고, 인재의 해외 유출은 가속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드웨어만 대규모로 확충하는 전략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에 대한 경고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두뇌 없는 근육이 결국 어떤 한계에 봉착하는지는 이미 수차례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GPU 26만 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연산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위에서 구동되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외산이라면, 한국은 결국 최고급 서버를 관리하는 하청 국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글로벌 AI 시장은 오픈AI, 구글, 메타 등 빅테크가 구축한 거대언어모델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 모델들을 API 형태로 가져와 하드웨어에 결합하는 데 집중할 경우, 핵심 지식재산권은 해외에 남고 수익의 상당 부분 역시 외국으로 유출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다.
AI 밸류체인에서 GPU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지출 항목이지만, 플랫폼과 서비스는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이다. 2023년 R&D 예산 삭감으로 독자 모델 개발 역량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GPU만 늘리는 것은 설계도 없이 고가의 부품만 사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GPU 26만 장은 구매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지속적인 비용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 GPU를 사용한다는 것은 CUDA 생태계에 종속됨을 의미하며, 이는 국내 NPU 스타트업의 성장 기회를 제한하고, 세대 교체 때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를 만든다.
전력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 정도 규모의 GPU 클러스터는 중소 도시나 대형 산업단지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한다.
현재 한국의 전력구조와 탄소중립 목표를 감안하면, AI 하청기지로서 얻는 이익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은 오랫동안 ‘빠른 추격자’ 전략에 익숙했다. 좋은 설비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AI는 제조업과 차원이 다르다.
AI의 핵심은 설비가 아니라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인재다.
이 중 한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것은 한국어 데이터 정도에 불과하다. 원천기술과 글로벌 플랫폼 경쟁력에서는 아직 압도적 열세다.
2023 년의 R&D 예산 삭감이 뼈아픈 이유는, 대한민국이 단순한 ‘공장’을 넘어 ‘설계자’의 반열로 올라설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끊어진 연구의 맥락과 떠나간 인재는 돈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
한국이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에 머물지 않으려면, 확보한 GPU를 외산 AI를 돌리는 데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한국형 소버린 AI를 고도화하고, 제조 데이터와 결합된 독자적 ‘물리적 AI’ 알고리즘을 선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남이 만든 지능을 비싼 장비로 돌려주며 전기료만 부담하는 ‘AI 하청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캐나다는 어떨까?
캐나다는 이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캐나다는 AI의 ‘설계도’를 만드는 나라이고, 한국은 AI의 ‘심장과 근육’을 구현하는 데 강점이 있다.
캐나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천기술과 인재를 보유하고도 상용화 단계에서 미국에 밀리고 있고, 한국은 강력한 제조역량을 보유하고도 원천기술이 취약하다.
캐나다의 매리트는 AI의 성지이자 설계국이라는 점이다.
캐나다가 AI 강국으로서 가지는 절대적 유리함은 바로 지적자산에 있다.
즉 딥러닝과 강화학습 신경망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먼 훗날 만일 AI 종교가 창시된다면 전 세계 무슬림들이 일생에 한 번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와서 성지순례 예배의식을 가지듯이, 전 세계 AI 신도들은 일생에 한 번은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있는 토론토대학교에 와서 성지순례 예배의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캐나다는 여기서 긁어모은 헌금으로 대대손손 기본소득을 조금씩 나눠주면 국민들 반찬값은 나올 것이다.
캐나다는 지능을 설계하는 나라로서,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다시 주도권을 잡을 저력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미국의 그늘에 가려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현재 지능을 실현하는 공장의 역할에 충실한 정도다. 분명히 말하지만, 제조역량(GPU, HBM)은 돈과 자본이 있는 다른 나라(중국, 일본 등)가 언제든 추격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문제는 원천기술을 따라잡아 AI주권을 확보하는 것인데, 이게 지금으로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거듭말하지만, 2023년의 퇴행적 결정이 뼈아픈 이유는, 대한민국이 '공장'을 넘어 '설계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마지막 골든타임을 스스로 놓쳤기 때문이다.
제조역량은 자본이 있는 나라라면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러나 원천기술과 설계능력은 다르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3년의 퇴행적 정책 결정은 대한민국에 오래 남을 깊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26. 1.1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