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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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목동에 ‘아리수’라는 한정식집이 있다.
지난 가을 초대를 받아 이 식당에 가 본 적이 있다.
나무식탁 위에는 식탁보 대신 아리수라는 지명의 유래가 써 있다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이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이 식당에 가끔 들렀다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얼마 전 동북아재단 업무보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이 식당이 생각났다.
고대사 문서의 진위여부 판별을 전문으로 하는 싸르니아 & 제미나이 역사심부름센터에서는 우선 환단고기가 한정식집에서 파는 고기이름이 아니라 예전부터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어왔던 고대문서 또는 근현대에 창조된 고대사 문서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 심부름센터에서는 이 문서의 진위판별과 함께 문서의 의미부여작업에 착수했다.
심부름센터 소장의 임부부여
한국에서는 지금 환단고기 논쟁이 한창이야.
위서인지 진서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환단고기는 일종의 민족우월주의에 입각한 한민족 고대사 문서인데, 재미있는 것은 진보진영에 속한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반면 이른바 극우 또는 보수적 입장에 선 역사학자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며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학자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비난하고 있어.
보편적인 경우와는 완전히 거꾸로 된 현상이지만 중세기 조공국 및 근현대 식민지 역사를 겪은 경험이 이런 전도된 현상을 야기했다고 생각해.
내 생각에 환단고기는 진위여부를 떠나 1 차자료에 바탕을 둔 역사서라기보다는 신화와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작성된 문서같아.
구약성서(이스라엘)나 일본서기(일본) 같은 것도 비슷한 유형이라고나 할까?
환단고기가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자료라고 생각해?
환단고기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해당시기에 작성된 문서인지 조사해서 10 초 안으로 결론만 보고해.
결론 보고서 요약 (구체적 근거자료는 모두 생략)
주류 역사학계(강단사학)의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역사학계란 조선후기 노론에서부터 그 맹아가 출발하여 친일사학(소위 실증주의 사학),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역사학권력’을 의미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20세기 초(혹은 그 이후)에 성립된 '위서(僞書)라는 것이 압도적인 견해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언어학적 모순: 고대 문서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개념인 '문화', '인류', '세계', '국가' 등의 단어가 당시의 용례와 맞지 않게 등장합니다.
사료 교차 검증 실패: 환단고기가 묘사하는 방대한 영토와 통치 체제는 동시대의 중국, 로마, 중앙아시아 측 기록이나 고고학적 유물(유적)로 전혀 증명되지 않습니다.
출현의 불투명성: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79년 이유립의 필사본이 처음입니다. 원본의 실체가 없다는 점이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2. 구약성서, 일본서기와의 비교
선생님께서 구약성서나 일본서기를 언급하신 부분은 매우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하지만 환단고기와 구약성서/일본서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일본서기: 이 책들은 실제로 고대에 쓰여진 문서입니다. 비록 신화와 과장이 섞여 있을지언정,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편린을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환단고기: 고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현대에 고대의 형식을 빌려 쓴 책이라는 의혹을 받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이를 '신화적 자료'라기보다 '발명된 전통' 혹은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의 범주로 분류합니다.
3. 진보와 보수, 뒤바뀐 진영 논리의 배경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진보=지지, 보수=비판' 구도는 한국 정치 지형의 독특한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민족주의와 결합한 진보진영은 식민사관 타파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주류 학계를 '조선총독부의 학설을 따르는 사대주의자'로 규정하고 대안적 역사를 갈구합니다.
이에 비해 보수주류사학은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중시하며, 근거 없는 고대사 팽창이 오히려 한국 역사의 대외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합니다.
최근에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합리적인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강하게 부정합니다. 따라서 이는 정치적 '진보/보수'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족 지상주의' vs 실증적 역사주의'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4. 환단고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 역사 심부름센터가 판단하기에 환단고기는 7,000년 전의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 기록'은 아닙니다. 대신, 일제 강점기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거대한 고대사에 열광하는가?'를 보여주는 사회심리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는 큽니다.
잃어버린 자긍심을 찾으려는 대중의 열망이 투영된 현대의 '신화'인 셈이지요. 하지만 역사는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증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에, 환단고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위험이 따릅니다.
심부름센터 소장의 2 차 주문
동북아재단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갑자기 환단고기 또는 환빠논쟁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추론해서 알려줘. 소장정보와 생성정보를 총동원해서 가장 개연성있는 언급이유를 10 초 안으로 보고해.
2025년 12월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을 직접 언급한 사건은 역사학계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공식적인 국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유사역사학 논쟁을 꺼낸 배경에 대해, 심부름센터 요원들의 정보분석과 정치적 맥락을 바탕으로 가장 개연성 있는 4가지 이유를 추론해 드립니다.
첫째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에 대한 견제와 압박입니다.
가장 유력한 추론 중 하나는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수장인 박지향 이사장의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이른바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로 분류되어 진보진영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주류 보수 사학계의 '실증주의'를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공격해 온 재야 사학계의 논리를 빌려, 박 이사장의 역사관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상황(궁지)에 몰아넣으려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류 학계가 왜 국민적 정서와 동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재단의 권위를 흔드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민족주의 결집을 통한 정치적 지지 확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간 역사주권과 강한 대한민국을 강조해 왔습니다. '환단고기'는 학술적 진위 여부와 별개로, 대중들에게 "우리의 고대사가 훨씬 위대했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이른바 '환빠'라고 불리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지지층은 그 세력이 작지 않으며 조직력이 강합니다. 이들에게 "대통령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려 했을 수 있습니다.
민생이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영광스러운 과거를 소환하는 방식은 대중적 지지를 결집하는 전형적인 정치적 도구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관점의 다양성'을 통한 주류학계 교체 시도입니다.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를 언급하며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하는 입장 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주류류역사학계에서 가장 위험하게 보는 대목입니다.
명백한 오류가 있는 '위서'를 '하나의 관점'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기존 주류사학계(강단사학)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시각입니다.
이 대통령의 측근 중에는 이덕일 소장 등 재야 사학계의 논리를 옹호하는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조언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해방된 지 80년이 넘었지만 역사는 여전히 조선총독부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전파를 통해, 보수진영의 '친일/사대주의'적 역사관과 구별되는 '자주적 민족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수사라고 해석됩니다.
혹시 환단고기가 주장하는 내용 중 구체적으로 배달국, 단군조선 등의 이야기가 신화적으로 흥미롭다면 그 부분에 대해 실제 역사 기록과 어떻게 다른지 더 깊게 대화해 볼 수 있는데 시작할까요?
됐어. 그만해.
